조위 (145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앱 iOS 앱 편집 |
||
3번째 줄:
[[조선 성종|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성종의 명으로 [[김종직]]의 문집을 편찬할 때 <[[조의제문]]>을 실어 [[무오사화]]의 화근이 되었다.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다 잡혀 [[의주]]와 [[순천시 (전라남도)|순천]]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이 넓고 깊었고, 문장이 뛰어나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저서로 <매계집>이 있으며, 글씨로 <조계문 묘비>가 있다.
== 생애 ==
성종 21년(1490년) 당시 [[합천]]의 [[가야산]] [[해인사]] 중창과정에서 비로전(대적광전)의 처마 부재 사이에서 9세기 말부터 10세기 초에 걸쳐 해인사가 인근 지역으로부터 땅을 사들인 사실을 적은 매전장권(買田庄券) 43폭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비로전 수리를 맡은 목수에게서 이 문서를 구해 읽은 조위는 전권 내용의 개략과 견해를 「해인사 전권 뒤에 쓴다(書海印寺田券後)」라는 제목의 글로 남겼다. 이 글은 현재 조위의 문집 《매계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신라 말기 해인사와 신라왕실, [[진성여왕]]과 [[위홍]]의 관계를 증언하는 자료로 중시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