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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탁 주살 ===
직위는 점차 올라 [[중랑장]]에 도정후(都亭侯)가 되었으며 늘 동탁을 [[경호]]하였다. 동탁은 억세고 편협하며 화가 나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ref name=":1">{{서적 인용|url=|제목=[[삼국지]] 위서 여포전|성=[[진수 (서진)]]|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어느 날 사소한 마찰로 동탁이 여포를 향해 수극을 던졌다. 민첩하게 피하고 사죄했기에 망정이지 죽을 뻔한 여포는 이 일이 앙금으로 남았다. 거기다 동탁의 집에서 중합(中閤-중문)을 지킬때 시중드는 [[계집]][[노비|종]] (즉 삼국지연의에 기록된 바로 따르면 왕윤의 수양딸인 초선)과 몰래 정을 통했는데 이것이 동탁에게 발각될까 두려워했다. 어느날 여포는 같은 고향(병주)출신으로 친분이 있던 [[사도 (관직)|사도]]인 [[왕윤]]에게 수극 사건 등을 토로 했는데, 당시 왕윤은 [[상서복야]] [[사손서]]와 동탁 주살을 모의하고 있었고, 여포가 동탁에게 불만이 많은 것을 알게되자 여포에게 동탁 암살에 참여할 것을 회유한다. 왕윤의 회유에 여포는 처음에는 부자 사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펄쩍 뛰었지만, 왕윤의 ‘친부도 아닐 뿐더러 [[아버지]]가 [[아들]]에게 수극을 던지겠느냐’는 설득에 결국 동탁 암살에 동참하였다.<ref name=":1" />
 
초평 3년(192년) 음력 4월 23일<ref>{{서적 인용|url=|제목=후한서 효헌제기|성=범엽|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헌제|황제 유협]]의 병이 나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미앙전(未央殿)에서 모임이 열려 동탁도 입궐하게 되었는데 여포와 왕윤 등은 이날을 동탁 암살일로 잡는다. 여포는 기도위 [[이숙 (삼국지)|이숙]]과 공모해 진의(秦誼), 진위(陳衛), 이흑(李黑) 등<ref>《[[구주춘추]]》 ; [[이현 (당)|이현]] 주석, 《후한서》72권 열전 제62 동탁에서 인용</ref> 10여 명을 위사(衛士)로 위장시켜 북액문(北掖門)에 매복시켜둔 뒤 본인들은 동탁을 마중나간다. 동탁의 지시에 따라 동탁을 호위하던 여포와 이숙은 북액문에 도착한다. 동탁이 북액문을 통과하자 이숙이 먼저 동탁을 창으로 찔렀지만 동탁은 조복 속에 갑옷을 입고 있어서 팔에 부상만 입고 죽지 않았다. 창에 찔려 수레에서 낙마한 동탁은 급하게 여포를 찾았지만 여포는 동탁에게 “조서를 받들어 역적 동탁을 치노라”고 답하고, 이에 동탁은 “개 같은 놈,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庸狗敢如是邪)!”고 여포를 욕하자 여포는 동탁을 창으로 찔러 죽인다. 주부 전의(田儀)와 동탁의 창고지기 두전(頭前)이 동탁의 시신을 보고 통곡하자 이들도 죽였다<ref name=":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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