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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내굉이 이나리 이케우치 히로시(池内 宏, いけうち ひろし; 1878.9.28. - 1952.11.1)라고 부르는 일본 역사학자입니다. 조선왕조를 붕괴했지만 정작, 공화국을 세운 신해혁명으로 망한 청황실을 보존한 일본제국에서 유명한 만선사관 역사학자입니다. 식민사관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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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역사}}
'''숙신'''(肅愼, {{llang|en|Sushen}}, {{llang|zh|肃慎}}, [[병음]]: Sùshèn)은 [[주나라|주대(周代)]]에 [[중국]]의 [[둥베이|동북 지방]]에 살던 [[동이]]인 [[퉁구스]]계 민족을 일컫던 말이다. '''식신'''(息慎), '''직신'''(稷慎), '''주신'''(朱申)이라고도 불렸다.
 
'''숙신'''(肅愼, {{llang|en|Sushen}}, {{llang|zh|肃慎}}, [[병음]]: Sùshèn)은 [[주나라|주대(周代)]]에 [[중국]]의 [[둥베이|동북 지방]]에 살던 [[동이북적]]인 [[퉁구스]]계 민족을 일컫던 말이다. '''식신'''(息慎), '''직신'''(稷慎), '''주신'''(朱申)이라고도 불렸다. 여진어를 차음借音한 글자다. 여진어로 jušen 주션이라고 발음한다.
==역사==
북쪽에 살던 퉁구스족의 일부는 [[연해주]]나 [[만주]] 같은 지역으로 남하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주로 목축이나 농업 등에 종사했다. 부족국가의 형태를 하고 있었기에 문자나 도시가 없었고, 이에 따라 그 언어의 문자기록이나 도시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후 [[만주족]], [[여진족]] 등의 조상이 되었다고 추정된다.
 
==명칭==
숙신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에 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소공 9년조에 보면 ‘肅愼·燕·毫 吾北土也’라고 하여 숙신은 '''[[연(燕)]]'''·호(毫)과 아울러 중국의[[전국|춘추 전국 시대]]의 북방에동북방에 있다고 하였다. 『사기(史記)』「오제본기(五帝本紀)」의 제순조(帝舜條)에도 ‘南撫交阯·北發·西戎·析枝·渠廋·氐·羌·北山戎·發·息肅·東長·鳥夷’라고 하였는데, 후한 정현(後漢 鄭玄)의 주(註)를 보면 ‘息愼 或謂之肅愼 東北夷’라 하였다. 따라서 숙신(肅愼)·식신(息愼)은 고대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만주|만주 지방연燕]]'''의 살던동북방 동북경계에 오랑캐(東北夷)를위치한, 일컫던종자를 막연한기르고 호칭으로서가꾸기 힘든, 척박하고 추운 환경에 사는 부족들을 이렇게 불렀다. 그들이 살던 지역의 방향을 나타내는 ‘동(東)’ 또는 ‘동북(東北)’과 관계가 있었던 명칭이 아닌가 추측된다. [[주나라|주대(周代)]]에는 이처럼 막연한 개념으로 숙신이라고 통칭하였으나, [[삼국 시대|삼국시대]]에 [[위 (삼국)|위(魏)나라]]가 비로소 [[만주|만주 지방]]을 정벌하자, 구체적으로 이 지방의 사정을 알게 되었으며, 이때에는 만주 지방에 살던 동북이를 숙신이라고 부르지 않고 [[읍루]]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내굉(池內宏)은 「숙신고(肅愼考)」에서 중국 고전상에 유명한 고숙신씨의 정체를 역사적으로 고증할 방법은 없으며, [[삼국 시대|삼국시대]]에 [[중국인]]의 지리적 지식에 새로이 들어온 [[읍루]]가 마침 고시(楛矢)·석노(石砮)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숙신씨와 [[읍루]]를 동일하게 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주나라|주대(周代)]]의 숙신 이래 역사에 쓰이던 명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나라|주대(周代)]]의 숙신 이래 역사에 쓰이던 명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숙신(肅愼, Suk-chin)-[[주나라|주대(周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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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진(奴兒眞, Nyur-chin)-[[청나라|청대(淸代)]]
 
오늘날 [[퉁구스어족|퉁구스어]]에서 Sokze(n), Sokcen이나 [[몽골어|몽고어]]에서 Juksen은 ‘예(禮)’를 가리키는 말이다. 언어학적으로는 이러한 말들을 숙신의 대응어로 들 수 있으나, 그 직접적인 관계는 증명되지 않는다. 특히 [[만주동북]] 지역에는 일찍부터 중원이나 북방에서 여러 계통의 민족이 들어와 살다가 이동하였기 때문에 고대의 숙신 이래 [[여진|여진족]]이 출현하기까지 적어도 몇 차례의 민족이동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고숙신씨와 [[청나라|청왕조]]를 세운 [[만주족]]을 쉽게 동일한 종족으로혈통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ref> S. M. Shirokogoroff, 『Social Organization of the Northern Tungus』pp.147~169) </ref>
 
==진서 열전(晉書 列傳) 사이(四夷)의 숙신씨(肅愼氏)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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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갈]]
* [[읍루]]
* [[예맥]]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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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거 통제}}
{{토막글|역사}}
 
[[분류:만주의 역사]]
[[분류:숙신| ]]
[[분류:한국의 고대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