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버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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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시버라는 명칭에 대하여, 혹자는 [[몽골어]] 'Sibege'. 즉 생울타리(生籬)·난붕(欄棚)·보루(堡壘)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정확할 지도 모른다. 금대에[[금나라|금]]대에 일찍이 그 일대에 변장(邊墻)이 설치되어 이들 여진인들이 바로 그 변장을 지키기 위하여 이 지역으로 옮겨져서 몽골인들을 방어하였는데, 몽골인은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 변장을 진수하는 여진인들을 'Sibege'라고 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세월이 오래된오래 지난 뒤, 이들 여진인들도 자신 스스로 시버(錫白)이라고 일컫게 되었다.<ref>孫進己, 《東北民族源流》, 黑龍江人民出版社, 249쪽</ref> 반면에 시버가 만주족과 같은 [[퉁구스]]계이고 그 이름이 '수세미풀'을 의미하는 [[만주어]] 'Sibe'에서 유래했다는 이견도 있다.<ref>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6쪽</ref>
 
[[역사]]의 [[문헌]]상으로 시버에 대한 한자음역(漢字音譯)은 십여 가지나 되며, 현재는 석백(錫伯)이란 두 글자로 확정되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그 족원(族源)을 연구·토론해 보면, 선비(鮮卑)가 석백(錫伯)의 선세(先世)라는 믿을 만한 명확한 증거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도리어 석백(錫伯)이야 말로이야말로 명대 [[여진]]의 후예라는 믿을 만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ref>趙展, 《對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ref>
 
시버족은 원대에 [[몽골]]의 통치를 받았고, 원이 [[중국]]에서 축출되어 북방 초원으로 철수한 뒤인 15세기경부터는 [[몽골]]의몽골의 일파인 [[우랑카이]]의 지배를 받았었다. 당시 시버족의 거주지는 만주 지역 [[눈강]]의 최대 지류로 현재 [[길림성지린성]] 북부와 [[내몽고 자치구|내몽고]] 동부를 흐르는 타오르 강(Toor Bira, Tao'er He) 유역으로 추정된다. 이후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여 [[눈강]]과눈강과 [[송화강쑹화강]]의 합류지역에합류 지역에 거주했다. [[1547년]]경에 코르친 몽골의 일부가 [[몽골후룬베일시|후룬부이르]]의 일부가 후룬버이르 지역으로부터 눈강 유역으로 이동해 온 후 시버족은 점차 이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ref>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7쪽</ref>
 
여진을 [[만주]](滿洲)로 개칭한 뒤에 [[강희제]]도 시버를 몽골인으로[[몽골인]]으로 간주하였다. [[1691년]]에, 강희제는 호화호특(呼和浩特) 대소사(大召寺)의 내제타음(乃濟陀音) 2세 활불(活佛)에게 청하여 [[코르친부|코르친]]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 그는 활불에게 말하기를, "코르친 10기(旗)는 바로 그대의 단월(檀越)이기도 하지만 짐의 외가이기도 한데, 거기에는 우리 만주인인 시버·호륵심(呼勒沁) 부락이 있다. 그대가 시버·호륵심 사람들한테 가서 청해 오도록 하라. 짐은 그에게 낙안(諾顔)을 하사하고 싶으니, 그들을 받아 들이도록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ref>趙展, 《對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ref>
 
이때까지 시버는 코르친 [[몽골]]에몽골에 예속되어 있었는데, [[청 제국]]이 [[루스 차르국]]과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국경선을 확정지은 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부족민을 팔기로 편제하는 정책을 계속 진행시킴으로서진행시킴으로써, 시버족은 [[1692년]]부터 [[제국]]은제국은 코르친으로부터 시버족에 대한 지배권을 이양받아 시버인 장정 1,500명을 병사로 선발해서 30개의 좌령(Niru)로 편제한 후 구왈차(Gūwalca)의 장정 500명으로 이루어진 10개의 좌령과 함께 현재의 [[길림성지린성]] 부여현에푸위현에 위치했던 버두너 일대에 집결시켰다. 이후 시버족들은 버두너뿐만 아니라 [[치치하얼시|치치하르]]와 [[지린시|길림]]에도 병사로 배치되었다. [[1699년]]부터 [[1701년]]까지 시버족 다수는 팔기로 편제되어 [[베이징시|북경]]과 [[선양시|성경]] 등지로 이주되었다. 그리고 일부 시버족은 버두너 일대와 [[송화강쑹화강]] 하류역의하류 유역의 코르친 고를로스기의 영지내에영지 내에 거주하면서 팔기에 편제되지 않고, 주방팔기의 관할도 받지 않으면서 경사의 [[만주족]] 왕공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에게 물고기를 잡아 바치는 임무를 수행했다.<ref>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9~411쪽</ref>
 
[[1758년]]에 [[청 제국]]은 반세기가 넘는 오랜 시간 충돌해 온 [[중가르준가르]]를 마침내 멸망시켰다. 이 지역은 청의 새로운 영역인 [[신강]]이 되었고, 이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기 위해 신강 각지에 주둔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후 [[몽골]] [[차하르]], 솔론<ref>牛素嫻(2006), 清初的「索倫」諸部 ''솔론(索倫, Solon)은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솔론어]]를 사용하는 [[에벤키에벤크인|어웡키족]]의 한 갈래로 어웡키족, [[다우르족]], [[오로촌족]]의 총칭이기도 했다.''</ref>, [[다우르]]가 신강 북부를 제어하는 일리 일대 주둔군으로 영구 파병되었고, 심지어 한인 군대인 녹영에서도[[녹영군|녹영]]에서도 주둔군이 선발되었다. 그리고 시버족도 영구 파병군으로 선발되었는데, [[1764년]], [[만주]] 지역의 20세 이상 40세 미만의 용맹과용맹하고 활쏘기 실력이 뛰어난 시족시버족 병사 1,020명과 가족 3,275명이 일리의 주둔군으로 차출되었다. 이들은 [[심양선양시|성경]](盛京)에서 조상의 사당에 지사를 지내고 남아있을남아 있을 친인척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은 [[일리강]] 남안의 바투몽커 지역에 주둔지를 배정받았다. 시버족은 6개의 좌령으로 편성되어 일리강 남부에 설치된 수비대와 초소인 카룬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병역의 의무외에의무 외에 자신들이 먹고 살 농지를개간하고농지를 개간하고 경작해야 했다. 더욱이 시버족은 신강 남부의 호탄, 카쉬가르 등의 [[무슬림]] 지역에 있는 주둔지에 3년씩 파견 근무를 나가야 했다.<ref>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12~413쪽</ref>
 
많은 시버족은 만주[[팔기]]로 편입되었지만 시버 쿼와란(錫伯營, Sibe Kūwaran)으로서 독자적인 군대 조직을 유지했고, [[만주어]]와 [[만주 문자]]를 사용하였지만 완전히 만주족화되지 않고, 시버족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했다.<ref>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6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