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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기원전 37년]] 추모성왕 [[고주몽]](高朱蒙)은 [[졸본]](卒本, [[환런 만족 자치현|환런현]])을 도읍으로 새 나라의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였다.<ref>[http://db.history.go.kr/id/sg_013r_0020_0010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하다 ( 기원전 37년 ) - 한국사데이터베이스]</ref> 이후 [[고담덕]](高談德, [[광개토태왕]])에 이르기까지 최소 450년간 고구려(高句麗)라 불리게 되었다. [[고담덕]]에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장수왕]]은 수도를 [[국내성]]([[지안시 (퉁화시)|집안시]])에서 [[한반도]] 북부의 [[평양]]([[평양직할시]])으로 천도하고, 동시에 국명을 고구려(高句麗)에서 그를 축약한 이름인 '''[[고구려|고려]]'''(高麗)로 개칭하였다. 이후 [[충주 고구려비]], [[구당서]], [[신당서]]등에는 고구려왕이 아니라 고려대왕(高麗大王), 고려왕등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3885 충주고구려비 "비문의 서두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문자가 보이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고구려는 [[5세기]] [[장수왕]]대에 '높고 빼어나다'는 뜻으로 국호를 고려로 고쳤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342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3885 중원고구려비 "비문의 서두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문자가 보이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ref>[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656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ref>{{웹 인용|title=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 문화콘텐츠 닷컴 |url=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2340&content_id=rp070309330002&print=|publisher=Korea Creative Content Agency|accessdate=6 February 2017|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1119100108/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2340&content_id=rp070309330002&print=Y|archive-date=19 November 2018|url-status=dead}}</ref> 바뀐 국호는 멸망할 때까지 유지되어 [[고구려 부흥운동]]의 [[보덕국]]<ref>[http://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jsessionid=BA7CCC26682D1162DEE4C771AA17FB4B?levelId=jm_001_0240_0650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 > 日本書紀 > 卷第廿七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 高麗 可婁 등의 貢調]</ref>·[[소고구려]]·[[대조영]]의 [[발해]]등에서도 계승되었다.<ref>[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03101478178 한국경제 : 발해 '고려' 국호 왜 사용했나]</ref> [[901년]] [[궁예]]가 고구려계가 많은 [[송악]]을 중심지로 삼고 민심을 얻기위해 국호를 [[후고구려|고려]]라 계승하였으며,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의 중세 왕조 [[고려]]가 다시 맥을 이었다.
 
[[파일:Chungju Goguryeo Stele.JPG|섬네일|오른쪽|150px|[[충주 고구려비]]]]
이름 '고려'는 [[7세기]] [[고구려|주몽고려]]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먼저 전해졌고<ref>[http://contents.history.go.kr/front/ti/view.do?treeId=02005&levelId=ti_005_0420 우리역사넷]</ref> 이후 [[12세기]] [[고려|왕건고려]]를 통해 [[아라비아]]와 [[유럽]]에 재확산되면서 [[프랑스어]]로 Corée, [[스페인어]]로 Corea, [[영어]]로 Korea라고 불리게 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민종원 기자|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1944483| 제목=Corea 대 Korea, 누가 이긴 거야?| 출판사=오마이뉴스| 날짜=2008-07-28| 확인날짜=}}</ref><ref>[https://news.joins.com/article/7587809 중앙일보,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15> 국가 이름의 유래]</ref><ref>[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89987?no=89987#0DKU 프레시안, Corea의 C가 K가 되기까지 [화제의 책] <꼬레아, 코리아-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ref>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ref>[https://ko.wiktionary.org/wiki/Republic_of_Korea Republic of Korea]</ref>. 약칭은 ROK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Democratic People's of Korea<ref>[https://ko.wiktionary.org/wiki/Democratic_People%27s_Republic_of_Korea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ref>, 약칭은 DPRK이다.
 
[[668년]] [[고구려|주몽고려]]([[고구려]])가 망하고 뒤를 이어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674년]] [[익산]]에서 부흥운동을 전개한 [[고안승]]은 [[신라]]로부터 [[보덕국]]이란 이름을 하사받았으나 [[일본]]과의 외교등 대외적으로는 고려라 하였다.<ref>[http://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jsessionid=BA7CCC26682D1162DEE4C771AA17FB4B?levelId=jm_001_0240_0650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 > 日本書紀 > 卷第廿七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 高麗 可婁 등의 貢調]</ref> 비슷한 시기에 [[요동]]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킨 [[고보원]] 역시 나라이름을 [[소고구려|고려]]라 하였다. [[698년]]에 일어난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규합해 진국(震國)을 건국하였다. 그러나 역시 [[일본]]과의 대외 관계에서는 그 국호를 [[발해|고려]]라 하여 계승을 천명하였다.<ref>[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20103&tabId=01&levelId=hm_030_0040 일본이 발해에 보낸 외교 문서 - 우리역사넷]</ref>
일제강점기
 
[[901년]] [[김궁예]](金弓裔, [[궁예]])는 서북 지방의 인심을 얻고 나라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 [[고구려|주몽고려]]를 계승하여 나라이름을 [[후고구려|고려]](高麗)라 하였다. 이후 [[904년]]에 마진(摩震)으로 고쳤으나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나라이름을 [[고려]](高麗)로 환원해 [[고구려|주몽고려]]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였다. 474년동안 존속된 [[고려]]는 [[벽란도]]를 거점으로 하는 무역활동을 전개하여 자신들의 국호를 [[아라비아]]와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에 퍼뜨렸다.<ref>[http://contents.history.go.kr/front/kh/view.do?levelId=kh_001_0040_0020_0050 마. ‘코리아’로 세계에 알려지다 - 우리역사넷]</ref> [[유럽인]]과 [[아라비아]]인 사이에서 고려는 코레(Kore/Core)·코리(Kori)등으로 그들이 발음하기 쉽게 불려졌다. 이후에 '고려'를 뜻하는 '코리, 코레'에 (~ 의 땅)을 뜻하는 ' -a'가 붙게 되어 '고려인의 땅'이라는 뜻의 코리아·코레아(Korea·Corea·Koria)로 부르기 시작했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7587809 중앙일보,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15> 국가 이름의 유래]</ref><ref>{{뉴스 인용| 저자=민종원 기자|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1944483| 제목=Corea 대 Korea, 누가 이긴 거야?| 출판사=오마이뉴스| 날짜=2008-07-28| 확인날짜=}}</ref>
일제강점기 당시,일본인들이 "J"apan의 j자가
 
"C"orea 의 c자가 먼저 온다고해서 j자뒤에있는 알파벳 k로바꿔 현재 우리가 부르는 korea로 바뀐것이다.
[[1882년]] 미 해군에서 출판한 해양국가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서도 한국을 코리아(Korea)로 칭하였다.<ref>[http://segyelocalnews.com/news/newsview.php?ncode=1065625174657615 현존 최초 태극기 원형 실린 ‘해양국가의 깃발’ 번역본 발간 - 세계로컬타임즈]</ref> [[1897년]] [[광무개혁]]을 선포한 [[고종]]은 영문국호를 'Dai-han Empire'(대한제국)으로 하러 했으나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Korean Empire'(고려제국)으로 불렀다.<ref>[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2928/5 동서양 史料로 본 Corea, Korea 연원 - 동아]</ref>
 
[[1919년]] [[5월 2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영국]] 정부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the Delega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로 소개했다.<ref>[https://www.yna.co.kr/view/AKR20190226098600009 Republic of Korea' 처음으로 쓰인 외교문서 英서 발굴 - 연합뉴스]</ref> 결국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외교명칭도 'Republic of Korea'가 되었다.
 
=== 국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