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용 땅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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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땅굴 ==
[[파일:제1땅굴.png|섬네일|272x272픽셀|제1땅굴 발견 당시 사진]]
[[1974년]] 11월 5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90cm, 높이 1.2m, 지하 2.5~4.5m, 길이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 땅굴은 서울에서 65km에 위치해 1시간에 1개 연대 이상의 무장병령과 중화기, 포신이 통과할 수 있는 땅굴이다.
 
발견 당시 육군 25사단 수색조가 수색임수를 수행 하던도중,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해당 지역을 파던 도중, 북한 초소로부터 사격을 받았다. 이에 우리 군도 대응사격을 하면서 해당지역을 조사한 결과 땅굴이 발견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demaclub.tistory.com/613|제목=국방홍보원|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 제2땅굴 ==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에서 발견되었다. 북한에서 군사분계선까지 2400m, 군사분계선에서 우리쪽까지 1100m이고 너비와 높이 2m, 길이 3.5km, 지하 50~160m이다. 국군 초병이 경계근무를 하던 도중 폭음을 듣고 땅굴의 존재를 의심하여 시추가 시작되었고 1975년 3월 19일에 발견되었다. <ref>{{웹 인용|url=https://www.dmz.go.kr/front/wantgo/tour_security/view/759#|제목=DMZIGI|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우리군과 주한미군의 공병대, 미국 민간기술진이 탐사에 참여하여 45개의 시추공을 뚫어 땅굴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화강암 특성 상 내부에 빈 공간이 생길 수가 없는데 채굴한 시추석이 일정하게 짧았고, 채굴 도중 검출된 모래가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나타나는 모래가 아니었다. 땅굴 내부에는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우리군의 탐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쌓아놓은 3개의 돌벽이 있었다. 이 돌벽을 철거하는 도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을 건드려 1975년 4월 8일 7명, 1975년 5월 28일 1명, 총 8명의 국군장병이 전사하였다.
 
== 제3땅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