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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나라 상국 ==
고조 5년(기원전 202년), 항우가 패망하고 고조가 황제가 되자, 제나라를 폐지해 군으로 삼고 제나라 왕이던 [[한신 (회음후)|한신]]은 초나라 왕으로 옮겼다. 이에 조참도 한나라로 돌아와서 재상의 인수를 반납했다. 고조 6년(기원전 201년), 제나라를 복국하고 [[유비 (제도혜왕)|제도혜왕]]을 봉하면서 조참은 제나라의 상국으로 부임했다. 또 이해에 공신들을 후작으로 봉하면서 평양에 1만 630호를 받아 새로 [[하동군 (중국)|하동군]]의 평양 땅(지금의 린펀시 남서쪽에 있음)을 영토로 삼는 평양후가 됐고, 이전의 봉읍은 제했다.<ref name="s54"/> 조참은 일흔 곳에 창상을 입었고, 그의 군공은 제장 중 제일이었기에 공신의 차례를 정할 적에 모두 조참을 제일로 하자고 했으나, 고조는 소하가 후방을 맡아 군자와 병력을 충실히 한 것을 으뜸으로 여겨 소하가 제일이 됐고,<ref name="s53"/> 조참은 제이위에 올랐다.<ref name="s18">위와 같음, 권18 고조공신후자연표제6 {{위키문헌언어-줄|zh|史記/卷018|사기 권18 고조공신후자연표제6}}</ref>
 
제나라 상국으로서 [[진희]]의 난 진압에 참여해 진희의 장수 장춘(張春)을 무찔렀다. 또 [[영포]]의 난에서는 제도혜왕을 따라서 보병·기병·전차병 12만 명을 지휘해 고조와 합류해서 영포를 무찌르고, 남쪽으로 기(蘄)까지 이르렀고, 돌아와서는 죽읍(竹邑)·상(相)·소(蕭)·유(留)를 평정했다.<ref name="s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