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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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해석이 아닌 정화암의 밀정론을 말그대로 인용만 하였다. 사실관계로 사용하지않고 소개만 하였다. 특히 김구가 관여됐다는 정화암의 증언을 전문가의 견해가 없으니 소개만 하고 사실긍정하는 서술 삭제함.
옥관빈을 밀정이라 주장하는 일부 역사학자의 견해를 인용하였다. 개인 위키백과 이용자의 사료해석은 '공개 발표된 자료를 근거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무조건 독자연구라 금지이다.[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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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구는 이때 [[주애보]]와의 관계를 회고하면서 ]두고두고 후회되는 것은 그때 그녀에게 여비로 겨우 100위안을 준 일이다. 그녀는 근 5년 동안 나를 광저우 사람인 줄 알고 섬겨왔고 나를 보살핀 공로가 적지 않았다. 당시 나는 다시 만날 기약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노자 외에 돈을 넉넉하게 주지 못한 것을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920995363&cp=nv{{깨진 링크|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920995363&cp=nv }} <nowiki>[</nowiki>백범과 망명지의 세 여인<nowiki>]</nowiki> ③처녀 뱃사공 주아이빠오(朱愛寶) 국민일보 2008년 08월 13일자]</ref>'라고 하였다. 이후 김구의 후손들은 주애보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ref>[http://www.namdonews.com/?xmode=contents&uid=269836&section=%EA%B8%B0%ED%9A%8D <nowiki>[</nowiki>레저<nowiki>]</nowiki> 일제에 맞서 韓·中 애국지사들 사랑과 우정 꽃피웠다] 남도일보 2009년 10월 16일자</ref>
 
===== 옥관빈 암살(1933) =====
[[파일:옥관빈.JPG|썸네일|왼쪽|120px|[[옥관빈]]]]
옥관빈이 암살당한 사건.
 
정화암은 이 사건이 옥관빈이라 밀정이라 암살했다 주장한다. 다음은 전문가의 검증을 받지 않은 증언록을 인용한 내용이다.
 
{{인용문2|[[인성학교]]에 돈을 준 [[옥관빈]]은 우리나라 신문을 이용하여 자기를 과대선전하고 독립운동가를 비방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한다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 먹고 살 길도 없고 무식하여 내가 쌀가마나 나눠<ref name="hoi404">김학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민음사, 2005) 404페이지</ref> 주고 돈 몇푼 던져주면 모두 내 밑에 와서 아부나 할 사람들이라고 멸시를 했다.<ref name="hoi405">김학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민음사, 2005) 405페이지</ref>}}
 
정화암의 견해에 의하면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자랑과 허영을 못마땅하게 봤던 그는 독립운동한다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 먹고 살 길도 없고 무식하여 내가 쌀가마나 나눠<ref name="hoi404"/> 주고 돈 몇푼 던져주면 모두 내 밑에 와서 아부나 할 사람들이라고 멸시했고,<ref name="hoi405"/> [[옥관빈]]은 상하이에서 유명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 더욱이 수백 명의 [[제약]]회사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고, 많은 돈을 써서 신문사를 포섭하여 상하이의 고급 관리는 물론 재계와 종교단체까지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ref name="hoi405"/> 호화스러운 저택과 고급 승용차에 거만한 언동 등 그의 위세는 너무나 당당했다고 증언한다.<ref name="hoi405"/>
 
어느 날 이를 보다못한 김구가 [[정화암]]을 찾아갔다고 주장한다.<ref name="hoi405"/> 김구는 즉석에서 [[정화암]]에게 [[옥관빈]]을 죽이자고 제의하였으며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한 그 언동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다거 주장했다.<ref name="hoi405"/> [[정화암]]은 동의하였고, 백범하고 [[정화암]]과 [[안공근]] 셋이서 이야기를 하며<ref name="hoi405"/> 이어 [[옥관빈]] 암살을 지원하였다고 주장한다. [[옥관빈]]은 그해 [[8월 1일]] 불조계에 살던 다른 [[흥사단]]원 이모의 처를 만나 몰래 간통하고 나오던 길에 남화한인동맹원 [[엄형순]] 등의 총격을 받고 절명했다고 주장한다.<ref>김학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민음사, 2005) 408페이지</ref>
 
하지만 김구가 관여했다는 주장을 교차검증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백범일지에는 옥관빈 친일파설이나 밀정설이 주장되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ref>김구,도진순, 《백범일지》,돌베개,2002</ref> 대한민국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선 옥관빈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ref>《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ⅱ, 200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ⅲ-1, 2009;《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ⅲ-2, 2009;《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ⅲ-3, 2009;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ⅲ-4, 2009</ref>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연구자 150여 명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하고, 180여 명의 집필위원, 문헌자료 담당 연구자 80여 명이 관여하여 총 3천여종의 일제강점기 원사료와 데이터베이스 450여 종 등 기초자료를 활용하여 인물 정보를 구축한 친일인명사전<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9420</ref>에는 옥관빈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ref>《친일인명사전 1》;《친일인명사전 2》;《친일인명사전 3》, 민족문제연구소, 2009</ref>
 
대한민국 정부의 보고서와 전문연구자 150여명이 참여한 조사와 진상규명결과에 의해 옥관빈 친일파설이나 밀정설은 근거가 없다고 결론이 나왔다.
 
또한 밀정이 아닌 "친일숙청"이란 가설은 어디에도 확인이 되지않는다. 구글학술검색에 의하면 옥관빈이 논란이 되는 건 밀정여부로만 나오며 밀정이 아닌 "친일숙청"원인설은 확인되지 않는다.<ref>검색결과 2020년 10월 18</ref>
 
그에 비해 사학계 외부인인 언론인 겸 국회의원인 손세일은 옥관빈을 밀정이라 주장했다.<ref>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609100025</ref>
 
===== 광복군 조직 노력 (1933~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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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외대]] [[반병률]]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김립 (1880년)|김립]]의 ‘횡령 행위’가 사실이라기보다는 정적이 유포한 뜬소문이었다. [[레닌]] [[정부]]의 바람대로 [[김립 (1880년)|김립]]과 그 동지들이 세 차례에 걸쳐 수만[[루블]]의 자금을 한인사회당에 어렵게 운반해주어 한·중·일 [[좌파]] [[혁명가]]들의 사업비로 쓰게 했지만, 그 자금이 김구 등 [[임시정부]]의 [[우파]]적 지도자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 됐다.<ref name="han21515"/> [[박노자]]는 이를 두고 '동족 테러'라고 비판했다.<ref name="han21515"/> 그에 의하면 자금 문제를 놓고 그 뒤에도 우파 민족주의자들에게 '동족 테러' 가 빈번히 이용됐다는 사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무장 독립운동의 비극적인 이면<ref name="han21515"/> 이라는 것이다. 김구는 자신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김립 (1880년)|김립]]이 사치, 향락을 하고 광동인 첩을 사서 즐겼다고 하였으나, [[김립 (1880년)|김립]]이 축첩을 했다는 근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 옥관빈 암살(1933)의 직접관여논란 =====
[[파일:옥관빈.JPG|썸네일|왼쪽|120px|[[옥관빈]]]]
옥관빈이 암살당한 사건.
 
정화암은 이 사건이 옥관빈이라 밀정이라 암살했다 주장한다. 다음은 전문가의 검증을 받지 않은 증언록을 인용한 내용이다.
 
{{인용문2|[[인성학교]]에 돈을 준 [[옥관빈]]은 우리나라 신문을 이용하여 자기를 과대선전하고 독립운동가를 비방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한다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 먹고 살 길도 없고 무식하여 내가 쌀가마나 나눠<ref name="hoi404">김학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민음사, 2005) 404페이지</ref> 주고 돈 몇푼 던져주면 모두 내 밑에 와서 아부나 할 사람들이라고 멸시를 했다.<ref name="hoi405">김학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민음사, 2005) 405페이지</ref>}}
 
정화암의 견해에 의하면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자랑과 허영을 못마땅하게 봤던 그는 독립운동한다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 먹고 살 길도 없고 무식하여 내가 쌀가마나 나눠<ref name="hoi404"/> 주고 돈 몇푼 던져주면 모두 내 밑에 와서 아부나 할 사람들이라고 멸시했고,<ref name="hoi405"/> [[옥관빈]]은 상하이에서 유명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 더욱이 수백 명의 [[제약]]회사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고, 많은 돈을 써서 신문사를 포섭하여 상하이의 고급 관리는 물론 재계와 종교단체까지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ref name="hoi405"/> 호화스러운 저택과 고급 승용차에 거만한 언동 등 그의 위세는 너무나 당당했다고 증언한다.<ref name="hoi405"/>
 
어느 날 이를 보다못한 김구가 [[정화암]]을 찾아갔다고 주장한다.<ref name="hoi405"/> 김구는 즉석에서 [[정화암]]에게 [[옥관빈]]을 죽이자고 제의하였으며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한 그 언동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다거 주장했다.<ref name="hoi405"/> [[정화암]]은 동의하였고, 백범하고 [[정화암]]과 [[안공근]] 셋이서 이야기를 하며<ref name="hoi405"/> 이어 [[옥관빈]] 암살을 지원하였다고 주장한다. [[옥관빈]]은 그해 [[8월 1일]] 불조계에 살던 다른 [[흥사단]]원 이모의 처를 만나 몰래 간통하고 나오던 길에 남화한인동맹원 [[엄형순]] 등의 총격을 받고 절명했다고 주장한다.<ref>김학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민음사, 2005) 408페이지</ref>
 
하지만 김구가 관여했다는직접관여했다는 주장을 교차검증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백범일지에는 옥관빈 친일파설이나 밀정설이 주장되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ref>김구,도진순, 《백범일지》,돌베개,2002</ref> 대한민국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선 옥관빈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ref>《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ⅱ, 200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ⅲ-1, 2009;《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ⅲ-2, 2009;《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ⅲ-3, 2009;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ⅲ-4, 2009</ref>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연구자 150여 명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하고, 180여 명의 집필위원, 문헌자료 담당 연구자 80여 명이 관여하여 총 3천여종의 일제강점기 원사료와 데이터베이스 450여 종 등 기초자료를 활용하여 인물 정보를 구축한 친일인명사전<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9420</ref>에는 옥관빈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ref>《친일인명사전 1》;《친일인명사전 2》;《친일인명사전 3》, 민족문제연구소, 2009</ref>
 
대한민국 정부의 보고서와 전문연구자 150여명이 참여한 조사와 진상규명결과에 의해 옥관빈 친일파설이나 밀정설은 근거가 없다고 결론이 나왔다.
 
또한 밀정이 아닌 "친일숙청"이란 가설은 어디에도 확인이 되지않는다. 구글학술검색에 의하면 옥관빈이 논란이 되는 건 밀정여부로만 나오며 밀정이 아닌 "친일숙청"원인설은 확인되지 않는다.<ref>검색결과 2020년 10월 18</ref>
 
이에 비해 소수설에 의하면 옥관빈은 밀정이라고 한다. 이호룡은 옥관빈을 밀정이라 주장했다. <ref>이호룡, 한국독립운동의역사45 아나키스트들의 민족해방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https://search.i815.or.kr/data2/ebook/history/045/index.html?startpage=169</ref> 사학계 외부인인 언론인 겸 국회의원인 손세일은 옥관빈을 밀정이라 주장했다.<ref>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609100025</ref>
 
=== 장덕수 암살 의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