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관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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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0일 (화) 09:44‎ 서술이 인용 조작임을 확인/86번 문서에 '친일파 숙청'이란 내용이 없음. 88번 문서에 '친일파 숙청'이란 내용없음. 73)자료에 '친일파 숙청'이란 내용없음. / 독자연구가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 인용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출처에 전혀 없는 인용조작임을 확인./위키백과 규정에 근거에 독자연구 모두 삭제하고 인용된 내용으로 구성함.
위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자료중 "친일파 숙청"이란 내용은 전혀 없다. 분명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서 날짜별 또는 종류별로 나열했을 뿐"이라고 했으나 이건 거짓말이었다. 절대 독자연구가 아닌 "인용"이라고 주장했던 해당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엔 "친일파 숙청"이란 내용이 전혀 없다. 본인의 독자연구를 자료인용이라고 자료조작을 하고 위키백과에 서술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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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애국단]]과의 합작하에 이루어졌던 이 사건이 한인제간단의 명의로만 발표됨으로써, 이후 [[김구]]측과 상해연맹의 관계가 틀어져 [[1933년]] [[11월]] [[김구]]에 의해 [[오면직]]이 소환당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ref name="inlgun00273" /><ref name="oklee94" />
 
[[1933년]] [[12월 18일]] 옥관빈의 친형 옥승빈도옥승도 밀정 혐의로 [[남화한인연맹]] 단원에 의해 암살당했다. 불조계 공부국에서 형사로 근무하던 옥관빈의 사촌 형 [[옥성빈]]은 독립운동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김해산(金海山, 金文熙)의 집 입구 노상에서 암살당했다.<ref name="inlgun00273" />
 
위의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중 "친일파 숙청"이란 내용은 전혀 없다. 또한 밀정이 아닌 "친일숙청"이 원인이란 가설은 어디에도 확인이 되지않는다. 구글학술검색에 의하면 옥관빈이 논란이 되는 건 밀정여부로만 나오며 밀정이 아닌 "친일숙청"원인설은 확인되지 않는다.<ref>검색결과 2020년 10월 18</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