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6세 드 라 로슈푸코 공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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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4세라로슈푸코라 로슈푸코 공작'''({{llang|fr|François VI, Duc de La Rochefoucauld}}, {{문화어|프랑쑤아 드 라 라쉬푸꼬}}, [[1613년]] [[9월 15일]] ~ [[1680년]] [[3월 17일]])는 [[프랑스 왕국|프랑스]]의 귀족 출신 작가이자 [[모랄리스트]]이다. 대귀족의 장남으로 [[파리 (도시)|파리]]에서 출생하였다. 16세에 [[이탈리아 전쟁]]에 참가한 후부터 사랑과 야심에 찬 모험의 시대를 보낸다. 루이 13세의 궁정에 들어갔으나 왕비 [[안 도트리슈]]의 심복인 미모의 [[마리 드 로앙|슈브뢰즈 공작 부인]]과 정을 통하고, 왕비의 반(反) [[리슐리외]] 음모에 가담, 발각되어서 1637년 8일간 바스티유 감옥에 갇혔었다. 그 후 왕비의 냉대와 [[롱게빌 공작 부인]]의 선동도 있어 [[프롱드의 난]]에 가담, 1652년 상 앙투안의 결전에서 실명(失明)에 가까운 중상을 입었다. 이때 롱게빌 부인은 이미 그에게서 떠난 뒤였다. 그는 그때부터 일체의 정치적 야심을 포기하고, 고향 베르트유로 돌아가 <[[회상록]]>을 집필했다. 이와 같은 음모·배신, 그리고 절망이 그의 인간을 완성시켜 '막심(箴言)'의 하나하나를 생기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1658년 다시 파리의 사교계에 돌아와서 오네트 옴(良識人)으로서 [[사블레 부인]] 등의 살롱에서 사색을 계속했다. 또한 이 무렵 <[[클레브 공작 부인]]>의 저자 [[라파예트 부인]]과 교제를 시작하여 만년까지 계속되었다. 1665년 익명으로 <[[막심]]>을 간행하여, 특유의 예리한 통찰력과 농후한 페시미즘에 의해서 인간 심리의 심층에 담긴 '자기애(自己愛)'를 예리하게 그려내어 이 장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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