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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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 과정 ==
 
[[오스트리아]]의 [[카를 필리프 슈바츠첸베르크]]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동맹군은 [[독일]] [[드레스덴]] 점령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8월 23일 로랑 구비옹 생 시르가 이끄는 2만 명도 채 되지 않는 [[드레스덴]] 수비대가 위협을 받자 [[나폴레옹]]은 증원군을 보냈다. 이때 이 증원군의 [[장정]]은장정은 역사상 유명한 장정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이 행군에서 제국 수비대는 3일 동안 145km, 새로 징집된 두 군단은 4일 동안 190km를 행군했다. 전투 첫날에는 7만 명, 둘째 날에는 12만 명이 참전했으며, 그 동안 [[로랑 구비옹 생 시르]]는 많은 방어물을 구축했다. [[8월 26일]] 슈바츠첸베르크의 측면 부대가 독일 [[엘베 강]]에서 쉬고 있는 동안 나머지 부대가 커다란 반원형으로 도시를 포위 공격하기 시작해 구비옹 생 시르가 이끄는 수비군은 동맹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도착하자 오후에 동맹군을 다시 원위치로 후퇴시켰고 다음날 아침 [[8월 27일]]에 공격을 시작해 비가 와 땅이 질척거려 보병과 기병이 제대로 싸울 수 없어 기동성이 우수한 프랑스 포병대가 승리를 거두었다. 동맹군은 3만 8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고 이에 비해 프랑스군은 1만 명의 사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에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해 이 전투의 승리는 허사가 되고 말았다.
 
[[분류:프랑스의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