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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do P.jpg|섬네일|200px|17세기 에도의 정경]]
[[파일:Hiroshige le pont Nihonbashi à l'aube.jpg|섬네일|200px|니혼바시]]
'''에도'''({{llang|ja|江戸, えど}})는 [[일본]] [[도쿄]]의 옛 이름으로, [[
== 역사 ==
[[15세기]] 중엽 [[오타 도칸]](太田道灌)이 에도 성을 처음 축성한 이후 [[센고쿠 시대]]에 접어들어
[[에도 시대]]에 [[에도 막부]](江戶幕府)가 위치한 일본의 정치 중심지이자 사실상의 수도였다. [[교토]](京都)는 단지 예전의 수도로써 남았다.
에도는 여러 번 화재에 시달렸다.
1868년에 막부가 전복되면서 도시는 "동쪽의 수도"를 의미하는 '''도쿄(東京)'''로 개칭되었고 황제는 거처를 도쿄로 이동해 도시는 일본의 공식적인 수도가 되었다.
* [[1868년]] [[9월 3일]] : 에도는 "동쪽의 수도"를 의미하는 ''도쿄''로 개칭되었다.
* [[1868년]] [[10월 12일]] : [[메이지 천황]]이 교토에서 황위에 올랐다.
* [[1868년]] [[10월 23일]] : 연호를
* [[1868년]] [[12월 10일]] :
== 행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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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
에도는
중심부로부터 더 먼 지역은 평민과 조닌(상인)들의 거주지였다. 이 지역은 성 북동쪽의 [[시타마치]](下町)로 알려졌고 도시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고대 불교 사찰인 [[센소지]](淺草寺)가 전통적인 도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아사쿠사]](淺草)에 여전히 서있다. 절로 들어가기 전에 거리에 있는 상점들은 에도 시대 이래로 계속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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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동쪽 가장자리를 흐르는 [[스미다 강]](隅田川)을 따라 막부의 미곡 창고와 공공 건물, 유명한 식당들이 서있었다.
[[니혼바시|에도바시]](江戶橋)는 도시의 상업 중심지로써 구라마에(蔵前
도시의 북동쪽은 전통적인 [[음양사]]에서 위험한 방향으로 여겨졌고 도시를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센소지, 간에이지 등의 절이 세워졌다. 북동쪽 너머로는 [[부라쿠민]](部落民)과 하층민 지구가 있었고 이들은 불결한 직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평민 주거지로부터 분리되었다. 부라쿠민 지구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강둑을 따라 흙길이 서쪽으로 뻗어있었고 도시의 북쪽 가장자리인 [[요시와라]](吉原) 유흥가에 이르렀다. 예전에 이들은 아사쿠사와 가까운 도시 내에 위치했지만 1657년의 [[메이레키 대화재]] 이후 도시로부터 더 먼 곳에 재건되었다.
{{넓은 그림|Edo Panorama old Tokyo color photochrom.jpg|800px|산킨코타이 제도 하에 에도에 일정 기간 머물렀던 다이묘 및 그들의 식솔들을 위한 저택의 밀집지역 풍경. 1865년/1866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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