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트 인 바이에른 여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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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대공과 황태자 출산 ====
[[파일:Empress Elisabeth of Austria with diamond stars on her hair.jpg|190px|섬네일|[[1865년]]에 그려진 시시의 초상화, [[프란츠 빈터할터]]]]
그러나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시시는 [[임신]]했고 첫째딸을 낳았지만 조피 대공비는 손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따서 조피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시시가 너무 어리고 교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이 기르겠다고 하였다. 시시는 조피 대공비의 허락 없이는 딸을 보러갈 수도 없었기에 둘의 사이는 점점 나빠져갔다. 시시는 다시 임신을 했고, 또 딸을 낳았다. 이번에도 조피 대공비는 손녀에게 [[기젤라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기젤라 루이즈 마리아]]라고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으며, 이 딸 역시 조피가 키우게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부탁으로 잠시 시시가 두 아이를 키우게 되었지만, 여행중여행 중 큰딸 조피가 사망하면서, 둘째딸 기젤라의 양육은 다시 조피 대공비가 맡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시시가 아들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루돌프 황태자]]를 출산하자 대공비는 기젤라를 돌려주고, 루돌프를 자신이 키우기 시작했다.
 
==== 남편의 외도와 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