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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년]](세조 11) 이조판서(吏曹判書)에 발탁되었고, [[1467년]](세조 13) 중추부사(中樞府事)로 옮겼다.
 
구성군(龜城君) [[구성군귀성군|이준]](李浚)이 도총관(都摠管), [[남이]]가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을 때, 왕에게 은밀히 "이준은 종실이니 금병(禁兵)을 맡은 것은 마땅치 않고, 남이는 성질이 추악스럽고 사나우니 병권(兵權)을 맡겨서는 안됩니다."라고 하여, 두 사람은 모두 그 날로 파직되었다.
 
이후 [[조선 예종|예종]]이 즉위한 후 남이가 복주되자,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翼戴功臣)에 책록되고 서평군(西平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