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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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먼저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북아프리카 전역]]을 취재하였다. 또, 연합군이 이탈리아로 전선을 확대하자, 이탈리아에서도 취재하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취재는 바로 [[1944년]] [[6월 6일]]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의 [[오마하 해변]]에서의 취재인데, 카파는 두 대의 콘탁스 카메라를 들고 106여장의 사진을 촬영하였으나, 필름을 받은 라이프(Life)지의 암실 담당자가 흥분한 나머지 건조도중 필름의 감광유제가 녹아버려11장의녹아버려 11장의 사진 (The Magnificent Eleven)만이 남았다고 주장하였다.
 
스페인 내전 당시의 "쓰러지는 병사"와 더불어 카파의 명성을 대표하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사진들 (The Magnificent Eleven) 역시 논란에 사로잡힌다. 카파는 당초 D-Day에 오전 6시 30분에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하여 90분간 촬영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가 탑승하였던 상륙정은 오전 8시15분에 해변에 도착하였으며 카파는 오전 9시에 떠나는 배를 타고 돌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카파가 실제로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여 머무른 시간은 15분에서 30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카파가 도착한 해변은 당시 노르망디 해변에 주둔한 독일군 중 방어력이 가장 약한 부대로 치열한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으며, 이미 카파가 도착하기 전에 전투는 종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카파의 필름 건조에 사용되던 기계 역시 카파가 주장하듯이 필름을 녹아내릴 정도로 뜨겁게 가열되지 않는 다는 것이 밝혀졌다.[https://medium.com/exposure-magazine/alternate-history-robert-capa-on-d-day-2657f9af914] 이와 같은 사실들은 카파의 노르망디의 사진이 왜 11점 뿐이며, 사진들에 포탄, 총탄이나 물위에 떠다니는 시체 등과 같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없는 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