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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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litical slogan by Red Guards on the campus of Fudan University 1976.jpg|프레임|1976년 베이징. “(윗줄) 신선한 피와 생명으로 당중앙을 보위하자! (아랫줄) 신선한 피와 생명으로 마오(마오쩌둥) 주석을 보위하자!]]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 {{llang|en|Cultural Revolution, Great Proletarian Cultural Revolution}})은 [[1966년]] [[5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벌어졌던 사회·문화·정치상의 대변혁 또는 소란으로, 공식 명칭은 '''무산계급문화대혁명'''({{zh|s=无产阶级文化大革命|t=無産階級文化大革命|p=Wúchǎn Jiējí Wénhuà Dàgémìng|h=우찬제지 원화다거밍}})이고 약칭은 '''문혁'''({{zh|c=文革|p=wéngé|h=원거}})이다. 문화 대혁명의 형식상 표면에 내세운 구실은 '회생하려는 전근대성 문화와 시장 정책 문화를 비판하고 더욱 새로운 공산주의 문화를 창출하자!"라는 정치·사회·사상·문화 개혁 운동이었지만, 실질로는 [[대약진 운동]]이 크게 실패한 탓에 정권 중추에서 잠시 물러난 [[마오쩌둥]]이 자신의 재부상을 획책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민중과 학생 폭력 운동을 동원해 시장 회생파를 공격하고 죽이려고 몰아간 [[마오쩌둥]]파와 [[덩샤오핑]]파 간의 권력 투쟁을 겸하였다.
 
이 운동은 [[1966년]] [[5월 16일]]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회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의 제창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관료주의 요소가 공산당과 중국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중국의 청년 학생들과 민중들이 사상과 행동을 규합해 [[인민민주독재]]를 더욱 확고히 실현키 위해 "혁명 후의 영구적 계급 투쟁"을 통해 이런 것들을 분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홍위병]]의 움직임으로 구체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