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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chutz.jpg|섬네일|오른쪽|하인리히 쉬츠]]
'''하인리히 쉬츠'''({{llang|de|Heinrich Schütz}}, [[1585년]] [[8월 8일]] ~ [[1672년]] [[11월 6일]])는 [[바흐]] 이전의 [[독일]]이 낳은 최대의 작곡가이다. 폭넓은 인문주의적 교양을 기초로 독일의 전통적인 [[폴리포니]](多聲音樂)에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극적이며 표출적인 양식을 채택하여 많은 감동적인 교회음악을 작곡하였다. 바흐로부터 1백년 전인 1585년에 중부 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카셀]]의 [[헤센]] 변경의 영주에게 재능을 인정받았다. 1609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유학하여 대작곡가인 [[조반니 가브리엘리]]를 사사, 새로운 바로크 양식을 습득하였다. 귀국 후에는 카셀의 궁정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1617년에는 [[작센 선거후(選擧候)선제후]]의 궁정악장으로서 [[드레스덴]]에 초빙되어, 일생의 대부분을 이 지방에서 보냈다. <부활제 오라토리오>, 종교합창곡집 <칸초네스 사크레>(1624) 등으로 점차 명성을 떨쳤으며, 1628년에는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몬테베르디]]에게서 극음악의 양식을 배웠다. <심포니 사크레>(1629)나 <크라이네 가이스트리헤 콘체르테>(1636-1639)는 그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 후 <종교합창곡집>(1648)으로부터 만년의 <마태 수난곡>(1666)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작품을 계속 작곡하여 독일교회음악의 아버지가 되었고, 1672년 87세의 고령으로 드레스덴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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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독일의 클래식 오르간 연주자]]
[[분류:바로크 시대 작곡가]]
[[분류:교회 음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