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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 [[조선로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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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李英, [[1889년]] [[4월 1일]] ~ [[1960년]] [[8월 13일]])은 [[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사회운동가]] 겸 친일 공산주의 운동가이며독립운동가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가]]이다. [[본관]]은 [[수안 이씨|수안]](遂安)이다.
 
== 이력 ==
 
=== 조선 광복과 그 이후 ===
광복 후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기획부(부장: [[정백]]) 차장을 지내다가 그만두고 1946년 12월에 월북을 한 그는 1948년 4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측 정당 관련 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에 근로인민당 대표최고위원 직위로 참가하였다. 이후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될 때 북조선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직위에 선출되었다. 3년간의 [[한국 전쟁|한국전]]이 끝난 후 1953년 12월 1일을 기하여 북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직을 맡았으며, 1957년 9월 9일을 기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단 대표최고위원 직위로 활동하였다. 사후 북조선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이후 1933년에서 1937년까지 [[고려공산당]] 행정직무위원 직위하였으며 1938년에서 1945년까지 [[조선공산당]] 상임위원 직위하였고 [[야마토주쿠|대화숙]]에서도 자문역을 하던 중 1945년 일제 강점기 경성부에서 조선 광복을 목도하였다.
 
그 후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기획부(부장: [[정백]]) 차장을 지내다가 그만두고 1946년 12월에 월북을 한 그는 1948년 4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측 정당 관련 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에 근로인민당 대표최고위원 직위로 참가하였다. 이후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될 때 북조선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직위에 선출되었다. 3년간의 [[한국 전쟁|한국전]]이 끝난 후 1953년 12월 1일을 기하여 북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직을 맡았으며, 1957년 9월 9일을 기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단 대표최고위원 직위로 활동하였다. 사후 북조선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 외부 링크 ==
[[분류:한국독립당의 당원]]
[[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
[[분류:친일파]]
[[분류:조선로동당 당원]]
[[분류:월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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