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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년]]에 위구르가 망하고 당이 쇠퇴한 틈을 이용하여 대외 팽창을 시작해 북방의 오고(烏古), [[실위]] 등의 부족을 복속시켰고, 중원 지역을 공격해 한족을 포로로 데려와 노예로 삼기도 했다. 10세기 초에 질랄부(迭刺部)의 야율아보기는 많은 한족 출신 부하들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권위를 창출했고, [[906년]]에 연맹장인 카간(可汗)이 되었다. 그는 다른 부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카간의 선거제를 폐지해 세습제를 확립했다. [[916년]]에는 황제를 칭하며 거란을 세웠고, [[상경임황부]]를 수도로 하였다.
 
거란족을 통합한 태조 [[야율아보기]]는 [[924년]]에 [[서역]] 정벌에 나서 [[탕구트]]와 [[토욕혼]]을 굴복시키고, [[925년]]에 발해를 공격해 [[926년]]에 멸망시켰다. [[요 태종|태종]]은 [[화베이]] 지역을 엿보다가 [[936년]]에 [[연운십육주]]를 탈취하고, 국호를 대요로 고쳤다. 태종이 죽은 뒤에 내분이 이어졌지만 [[요 성종|성종]]이 즉위해 정치 안정을 꾀하고 대외 확장을 시도했다. 성종은 화베이로 들어가 [[북송]]과 대치하다가 [[1004년]]에 '[[전연의 맹]]'이라는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요는 북송에서 해마다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의 세폐를 받아 재정이 넉넉해졌다. 이 시기에 요는 정치·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법전도 공포해 강력한 중앙집권 전제체제를 확립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성종은 국가의 안정을 바탕으로 [[고려]]와 [[여진|여진족]]을 압박하고 [[서하]]를 굴복시켜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까지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성종 이후 중국식 체제를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보수파와 혁신파로 나누어져 정국이 혼미해졌다. [[요 흥종|흥종]]과 [[요 도종|도종]] 때 두 파는 번갈아 집권했고 종실 내부에서도 세력 투쟁을 되풀이했다. 이 와중에 몇 차례 반란이 일어났다. 한편, 여진족을 통일한 [[금 태조|아구다온얀 아쿠타]]는 북송과 동맹을 맺고 요를 공격해 [[1125년]]에 요를 멸망시켰다. 그 무렵 요의 일족인 [[야율대석]]이 서쪽으로 도망가서 중앙아시아에 요를 다시 세웠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서요]]라고 한다.
 
==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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