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코 스포르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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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라노 공작 ===
1476년 루도비코의 형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갈레아초]]가 암살당하자 공작 자리는 그의 일곱 살 난 조카 [[잔 갈레아초 스포르차]]에게 넘어갔다.<ref> 크리스토퍼 히버트 <메디치 가 이야기> 165 페이지</ref> 미망인 사보이의 보나(Bona of Savoy)가 섭정을 하였으나 루도비코와 알력이 생기며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초반에는 추방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곧 반격을 가하여 형수를 축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실권을 잡은 루도비코는 밀라노 공작인 조카를 무시하고 자신이 실제 군주 헹세를 했으며 섭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권력찬탈을 시도했다. 그래서 조카 잔 갈레아초가 성년이 되었는데도 섭정에서 물러나지 않았다.<ref name="milano 231">크리스토퍼 히버트 <메디치 가 이야기> 생각의 나무,p231</ref>
 
1488년에 조카 잔 갈레아초를 나폴리 왕 페르디난도 1세의 손녀딸 이사벨라 공주와 결혼시키며 나폴리와 동맹관계를 확보하였다. 또한 아우인 [[아스카니오 마리아 스포르차|아스카니오]] 추기경을 통해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도 동맹을 맺었다.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지위를 굳건히 하려고 노력했다.
 
루도비코의 만행이 증가하자 조카 며느리 이사벨라(잔 갈레아초의 아내)가 루도비코의 월권행위에 대해 항의하며 할아버지인 페르디난도 1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발생하였다.<ref name="milano 231"/> 잔 갈레아초 역시 장인인 알폰소(이사벨라의 부친)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페르디난도 1세도 1492년 이 문제에 개입해 루도비코에게 공작령 통치권을 이사벨라와 잔 갈레아초에게 양보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루도비코는 거부했고, 나폴리 왕국과 루도비코간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루도비코는 나폴리를 견제하고 밀라노에 대한 자신의 통치권을 공고히 하려고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혼인동맹을 맺었다.<ref>World Book Encyclopedia, Field Enterprises Educational Corporation, 1976.</ref> 1494년 3월 16일에 루도비코는 여조카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비앙카]](잔 갈레아초의 누나)와 막시밀리안 1세의 결혼을 성공시킨것이다. 지참금으로 막대한 돈을 지불하며 그 대가로 막시밀리안 1세로 부터 밀라노 공작칭호를 받아냄으로써 권력 찬탈 행위를 합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