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발녹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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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발녹단은 [[선비족]] [[독발부]] 출신으로 아버지는 [[독발사복건]](禿髮思復鞬)이며 [[독발오고]](禿髮烏孤), [[독발리록고]](禿髮利鹿孤)의 동생이다. 독발사복건은 독발녹단의 재능을 높이 사서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였고, 독발오고와 독발리록고는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형제 상속을 하여 독발녹단에게 왕위가 돌아가게 하였다. 독발오고 치세에는 거기대장군·광무공(車騎大將軍·廣武公)에 임명되었고, 독발리록고 때에는 도독중외제군사·양주목·녹상서사(都督中外諸軍事·涼州牧·録尚書事)를 역임하였으며 군사와 나라의 모든 대사를 통괄하였다.
 
[[402년]]에 독발리록고가 병으로 죽자 독발녹단이 왕위에 올라 양왕(凉王)을 자칭하고 낙도(樂都 : [[칭하이 성칭하이성]] [[러두 현]])로 천도하였다. 독발녹단은 독발리록고의 정책을 이어받아 [[후량 (오호십육국)|후량]](後凉)을 지속적으로 공격하였는데, [[403년]]에 후량이 [[후진 (오호십육국)|후진]](後秦)에 나라를 넘기게 되자 독발녹단도 후진에 명목상으로 복속하였다. 후진의 [[요흥]]은 독발녹단을 광무공(廣武公)에 봉하였고 독발녹단은 [[402년]]에 연호를 폐하였다.
 
독발녹단은 [[북량]]과 지속적으로 대립하였는데, [[406년]]에는 북량을 공격하여 약탈한 말과 양을 후진에 바쳤다. 요흥은 이러한 독발녹단의 공물을 치하하고 그를 고장(姑臧)에 진수하도록 하였다. 독발녹단은 고장을 강제로 점령하여 후진의 양주 경영을 종식시켰으며, 뒤이어 고장으로 수도를 옮겼다. [[408년]]에는 양왕(凉王)을 자칭하고 연호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