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도 (건주방어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링크 변경 (장시 성 → 장시성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링크 변경 (후난 성 → 후난성
21번째 줄:
이언도의 출신지와 출생 연도를 포함한 개인적인 출신 배경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912년]] 초, 전임 지배자였던 건주자사(虔州刺史) [[노연창]]을 암살하고 이후 후량 태조 주전충에 의해 건주방어사(虔州防禦使)에 임명되었던 [[여구]]가 사망하였다. 이언도는 당시 건주 [[군단]]의 아장(牙將)으로 있었는데, 자력으로 건주를 점거하여 지주사(知州事, 주의 업무를 알아서 처리하는 직책)를 대행하였고, 그 역시 표면상 건주방어사의 직책을 차지하였다. (현존하는 역사 기록들에서 그가 후량 조정이나 그 적수였던 [[오 (십국)|오나라]]에서 정식으로 인가를 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단, 오나라에서는 이전에 노연창을 건주자사로 임명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후량 조정에 의해 건주방어사로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ref name=ZZTJ268>《[[자치통감]]》 [[:zh:s:資治通鑑/卷268|제268권]]</ref>
 
이언도가 권력을 탈취한 이후, 노연창의 아버지 [[노광조]]를 위해 오랫동안 모사로 활약했던 노장 [[담전파]](이에 앞서 여구는 그를 살해하려고 했었다)는 병이 위독하다고 핑계대고, 자신은 군사 업무에서 은퇴했다고 주장하였다. 담전파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청해군 절도사(淸海軍節度使, 본거지는 현 [[광둥성]] [[광저우 시]]) [[유암]]은 명목상 후량의 영지에 속해 있던 소주(韶州, 현 [[광둥성]] [[사오관 시]])를 공격하였다. 소주는 노광조 이래 역대 건주 지배자의 세력 범위의 일부였다. 노연창이 임명했던 소주자사(韶州刺史) 요상(廖爽)은 소주를 버리고 [[초 (십국)|초나라]]로 달아났고, 이로써 건주 지배자에 의한 소주의 지배는 종막을 고하게 되었다. 그 후, 초왕 [[마은]]은 후량 조정에 표문을 올려 요상을 영주자사(永州刺史, 현 [[후난 성후난성]] [[융저우 시]])로 임명하였다.<ref name=ZZTJ268/>
 
이언도는 [[913년]] 초([[음력]]으로는 [[912년]] 말)에 사망하였다. 건주 사람들은 담전파를 지주사로 추대하여 그의 뒤를 잇게 하였다.<ref name=ZZTJ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