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북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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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태후는 효명제를 독살하고 후계자를 세우지만 [[육진의 난]]의 진압 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산서성 삭현지방의 흉노족 이주영(爾朱榮)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와 효장제(孝莊帝)를 옹립했다.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이하 대신 1,000명을 처형했다.(하음의 변(河陰의 變)
 
이주영은 6진의 난을 평정하고 진양(晋陽)에서 조정을 움직였으나 이주씨 휘하의 장군 [[고환]](高歡)이 그 폭정을 비판하여 이주씨와 대립하고 [[532년]] 낙양에 들어와 이주씨에 의해 세워진 절민제(節閔帝)을 폐위하고 효무제을 세웠다. 고환은 이주씨 일당을 각지에서 격파하여 정권은 그에게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