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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eligious syms.svg|섬네일|다양한 종교들의 상징]]
'''종교학'''(宗敎學)은 [[종교]]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일반적으로종교 현상을 연구하고 종교 일반의 본질 그리고 신앙체제와 방법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사용자:Bestgod1978에 대한 신상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종교학교수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종교학교수인 것에 대한 개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모대학교 종교학교수인데 원래 공부를 잘하고 공부욕심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대기업의 대주주로서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부모복이 좋아 영국유학하여 영어를 잘 하고 철학박사학위취득후 종교학교수가 될수 있었습니다.
만약 사용자:Bestgod1978에게 부모복이 적거나 없어서 아버지의 수입이 적었다면 사용자:Bestgod1978의 꿈이 이루지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부모복이 좋도록 해주신 하느님과 부유한 아버지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영국유학가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2010년 3월부터 모 대학교 종교학과교수로 재직하는 중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개인적으로는 부모복이 좋아서 神이 존재한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사용자:Bestgod1978의 전문부문 종교와 관련해서 특히 자연재해 및 질병과 연관하면 神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영국유학생출신자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한후 귀국하였습니다.
그 결과 귀국후 우리나라의 모 대학교에서 종교학교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학 전문가여서 정치와 함께 만인들에게 언행에 있어서 삼가의 대상이 되는 종교를 정치와 잘 비교하여 인류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유승민 국회의원과 같습니다====
유승민 국회의원은 1976년 대학교입학시험당시 차석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후 졸업해서 미국에서 경제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유승민 국회의원이 미국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후 귀국해서 경제연구소에서 10년이 넘게 재직하면서 경제학전문가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유승민 국회의원의 탁월한 경제학박사수준을 알아본 이회창 前 국회의원은 그분을 영입하여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게 합니다.
이후 유승민 국회의원은 해당 정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국회의원지역선거구에서 계속 출마하여 당선됩니다.
유승민 국회의원이 경제학전문가여서 해당 정당에 영입되어서 국회의원이 될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대학교입학시험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나 법과대학에 입학할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그분이 의사가 되거나 법조인이 되었으면 비례대표 영입되었을 가능성이 낮아서 평생 해당 직업만 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당시 최고의 인기전문의과이던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고 합니다.
40세 무렵 IMF사태로 소아과는 비인기전문의과가 되어 수입감소 및 국회의원선거 때 후보공천도 받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승민 국회의원의 20대 시절 비인기전문의과이던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아버지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사법시험까지 합격후 판사를 하시던 전직 국회의원이고 형님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후 판사를 하시던 변호사입니다.
유승민 국회의원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은 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와 형님이 법조인이어서 법과 관련하여 지겨워서 라고 합니다.
판사라는 권력을 가진 그분의 아버지로 인하여 유복한 미성년자시절을 보내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후 결혼과 함께 아들을 낳은 상태에서 미국유학을 가서 박사학위까지 따실수 있던 것입니다.
머리가 매우 좋은 그분이 가난한 집안에서 살아갔으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에 진학하셔서 얼른 돈 많이 벌 생각이나 했어야 하던 것입니다.
호황, 불황에 무관하게 이렇듯 최상위권 성적으로 대학진학시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공부를 하는 것은 자신의 집안이 부유할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복이 좋아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해서 사용자:Bestgod1978과 똑같은 유승민 국회의원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분이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경제학공부를 마음껏 하던 것과 사용자:Bestgod1978은 종교학공부를 마음껏 한게 차이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출생연월, 출생지, 국적, 성별입니다===
====사용자:Pride1978의 출생연월입니다====
'''1978년 6월'''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출생지입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국적입니다====
'''대한민국'''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입니다====
'''남자'''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학벌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학벌에 대한 개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모 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종교학과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철학사학위취득'''
 
1997년 3월 ~ 2003년 2월까지 모대학교 종교학과에 재학(군복무기간 포함)끝에 이학학사학위를 취득합니다.
 
 
'''*철학석사학위취득'''
 
2003년 3월 ~ 2005년 2월까지 同 대학교 대학원에 재학끝에 철학석사학위를 취득합니다.
 
 
'''*철학박사학위취득'''
 
2005년 10월 ~ 2009년 9월까지 영국 런던에 위치한 모대학교 대학원에 재학끝에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종교학은 교주, 교리, 교파 등 종교전반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및 천주교를 연구하는 신학, 불교를 연구하는 불교학 등과 전혀 다른 학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언어학도 문법, 어휘, 어족 등 언어전반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어를 연구하는 국어학, 영어를 연구하는 영어학과 전혀 다른 학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교가 없어서 국립대학에 신학과나 불교학과를 설치할수 없는 데 종교학과는 설치되어 종교학이 연구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사용자:Bestgod1978은 무교인데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神에 대한 공부가 하고 싶어서 종교학과에 진학하던 것입니다.
다행히 부모복이 좋아 종교학이라는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한 사용자:Bestgod1978에게는 神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사학위, 석사학위, 박사학위 모두 종교의 정치의 비교를 하여 취득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대학교학력입니다====
'''모 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정치와 종교에서 있어서도 사업자와 근로자의 관계가 존재하는 데 전자에서 있어서 권력자와 후자에 있어서 하느님도 국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자에 있어서 정당 및 후자에 있어서 교회에 채용된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하는 식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정치와 종교에 적용되는 법의 비교를 하는 철학학사학위논문을 작성해서 이학학사학위를 취득한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대학원(석사)학력입니다====
'''학사학위취득한 대학교의 同 대학원을 졸업하여 철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석사학위논문은 '''정치에 있어서의 멸망국과 종교에 있어서 신화의 비교'''로 작성하였습니다.
정치에 있어서 멸망국은 사실상 영원히 사라지고 종교에 있어서 더 이상 신봉의 대상이 아닌 종교는 신화로 남게 됩니다.
전자는 조선, 청나라와 같이 흘러간 역사속에서만 남게 되고 후자는 노르딕신화, 마야신화와 같이 소설처럼 전해 내려오게 됩니다.
대한민국이 멸망하거나 미국연방이 해체되면 그런 식으로 멸망국이 되어 역사속에서만 남게 됩니다.
또한 기독교가 사라지면 예수신화, 불교가 사라지면 부처신화로 소설처럼 전해 내려가게 됩니다.
이러한 정치에서의 멸망국과 종교에서의 신화에 대한 비교를 해서 철학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해서 철학석사학위를 취득한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대학원(박사)학력입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모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여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은 '''지구과학과 의학에 있어서 종교의 필요성'''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자연재해, 의학의 발달로 질병이 급감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자에 있어서 홍수의 발생은 미리 알아도 그 자체를 막을수 없고 후자에 있어서 코로나19라는 신종질병이 발병하면 고충을 겪는 식입니다.
따라서 인류가 초능력을 가지게 되어 자연재해와 질병을 모두 정복하지 않는 한 종교는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인류가 자연재해와 질병에서 안정을 받는 방안에 대한 종교의 역할을 분석해서 철학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해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병역의무, 선거권, 청소년보호연령, 빠른 생일, 세대 관련 사항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병역의무 관련 사항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병역의무 관련 사항에 대한 개관입니다====
원래 사용자:Bestgod1978은 체중미달 병역면제자가 되어서 병역의무를 저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997년 7월 말에 발생한 이회창아들의 병역비리의혹으로 1999년에 그럴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사용자:Bestgod1978은 징병검사를 너무 일찍 수검하는 바람에 그럴 기회조차 얻지못해서 억울합니다.
그러면서 사용자:Bestgod1978은 40세가 되자 체중관련 병역면제가 부활해서 더 억울한 것입니다.
참고로 사용자:Bestgod1978의 아버지는 대기업의 대주주이지만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신 육군병장 출신자이십니다.
2004년부터 병역명문가선정이 시작되었지만 사용자:Bestgod1978의 친할아버지는 병역의무가 없는 세대여서 병역을 이행하지 않으셔서 사용자:Bestgod1978의 가문은 병역명문가가 아닙니다.
사용자:Bestgod1978가 아직 결혼도 안하였는 데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이 현역복무를 마쳐야 사용자:Bestgod1978의 가문이 3대가 현역복무를 마쳐서 병역명문가에 선정되는 게 가능합니다.
만약 1997년 당시 사용자:Bestgod1978에게 기회가 와서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되었다면 병역명문가에 선정될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사용자:Bestgod1978에게 아들이 있게 된다면 그 시기에 우리나라가 징병제를 폐지하여 사용자:Bestgod1978의 아들도 병역의무가 없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Bestgod1978의 집안이 병역명문가가 될수 없어도 무방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징병검사수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징병검사(現 병역판정검사)를 수검하던 1997년 당시에는 주소지별로 하였습니다.
당시 서울특별시 동작구는 2월에 징병검사(現 병역판정검사)를 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생일이 지나지 않았는 데도 일찍 수검해야 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하기 하루전에 징병검사수검을 하여 불행중 다행으로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할 수는 있었습니다.
당시 신장 164cm, 체중 44kg으로 체중미달이어서 3급 현역판정을 받았습니다.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48970&ancYd=19960201&ancNo=00466&efYd=19960211&nwJoYnInfo=N&efGubun=Y&chrClsCd=010202&ancYnChk=0#0000
징병신체검사등검사규칙(국방부령 제466호)]를 통하여 해당 사실을 아실수 있습니다.
====원래 사용자:Bestgod1978은 체중미달 병역면제자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1997년 2월에 수검한 징병검사 당시 신장 164cm, 체중 44kg의 왜소한 체격을 지닌 사용자:Bestgod1978은 몇 Kg 더 감량하여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되어 병역의무 저버리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원래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4년 당시 그 꿈을 가졌는 데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해당 정보를 입수하는 게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입학시험이 완전하게 끝난 1997년 1월 당시 PC통신을 통하여 신장 164cm이면 체중이 38kg미만이어야 5급 제2국민역 판정이 나와 병역의무 저버릴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징병검사를 너무 일찍 수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징병검사 수검하던 1997년 2월 당시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생일에 무관하게 주소지에 따라 징병검사수검을 하였습니다.
문제는 당시 동작구에 거주하면 1997년 2월 10일 ~ 3월 3일 사이에 수검해야 되었습니다.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20200329120009&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2-02&officeId=00032&pageNo=20&printNo=16012&publishType=00010 1997년도 징병검사실시공고]을 보시면 자세히 아실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하던 사용자:Bestgod1978는 고등학교 졸업하기 하루 전인 1997년 2월 중순 당시 징병검사수검하는 것을 피할수 없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가 대학교 1학년 시절 늦게 징병검사 수검한 학과 동기생입니다====
그는 1978년 3월 초순에 출생하였는 데 당시 경기도 과천시에 주소지를 두었습니다.
그때 경기도 과천시에 거주하는 1978년에 출생한 남자들의 징병검사 기간은 1997년 10월 27일 ~ 28일이었습니다.
그는 생일이 빠른 편인데도 주소지로 인하여 그 시기에 징병검사를 수검하였습니다.
시력이 안좋아서 2급 현역판정을 받았는 데 그 직후 '''병역면제되어도 상관없지만 4급 보충역받아서 공익근무요원하는 것은 싫다.현역과 병역면제사이에 끼어 있는 애매모호한 존재여서이다.분명히 현역처럼 병역의무를 그것도 2달이나 길게하면서 군인취급 못받고 대우는 병역면제자와 똑같이 받아서 싫다.나는 병역의무와 관련해서 확실하게 병역면제되거나 아니면 확실하게 현역으로 가는 게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동기생의 생각은 사실이어서 2004년부터 시작된 병역명문가선정때 방위병, 사회복무요원 등 보충역 복무자가 있는 가문은 선정될수 없습니다.
해당 복무자들을 보면 차라리 병역면제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럴바에는 현역으로 복무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늦게 수검받을 수밖에 없던 징병검사여서 당시 19세 입대신청원을 제출하여 사용자:Bestgod1978와 같은 1998년 1월에 입대하였습니다.
마침 날짜까지 같았는 데 학과 동기 여학생들이 술과 닭튀김을 사줘서 포식한 후 두 갈래로 나누어서 저와 그 동기생이 입대하는 입대부대까지 배웅들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입대할 때 학과 동기 여학생들로부터 대접과 배웅을 실컷 받아서 행복하였습니다.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와 달리 절대로 부활하면 안되는 빠른 생일입니다====
1998년 이전에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는 빠른 생일들이 전년도 3 ~ 12월 출생자들보다 1년 늦게 징병검사를 수검해서 유리하였습니다.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는 사라졌다가 부활하였는 데 이와 달리 사라진 빠른 생일이 부활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의 부활'''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는 1997년 당시 이회창 아들 병역비리 의혹으로 1999년도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체중미달자 및 체중초과자는 병역의무를 하기가 어렵다고 하여 2018년도에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가 부활되었습니다.
1980 ~ 1998년 출생자들이 병역의무가 부과되는 연령일 때 해당 병역면제가 없었습니다.
마침 해당 병역면제가 사라지던 1999년도에 출생한 세대들이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 최초의 세대입니다.
이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는 병역의무적합자를 색출해서 하는 조치이므로 우리나라가 징병제를 폐지할때까지 지속하여도 무방합니다.
 
'''*빠른 생일의 부활'''
 
빠른 생일은 원래 2003년 1, 2월 출생자들이 초등학교 입학해야 하는 2009년도 아닌 2010년도에 입학하면서 사라졌습니다.
만약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처럼 부활하면 2022년 1, 2월 출생자들이 2028년에 초등학교 입학하도록 조치하면 부활되는 것입니다.
취학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계속 이어지는 데 빠른 생일이 사라진 것은 너무 잘된 일이고 절대로 부활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인이 된 후 빠른 생일들이 학교동창생 아닌 전년도 3 ~ 12월 출생자들을 만나면 같은 기간에 취학해서 동갑이라면서 이들과 맞먹으려고 합니다.
또한 동년도 1, 2월 출생자들을 만나면 이들보다 1년 일찍 취학해서 1살 위라면서 윽박질러서 이들로부터 언니대접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와 해당 사항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 나이나 출생연도를 이야기할때는 지 생일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안해서 어려보이려고 합니다.
이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영원히 1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이 함께 취학하도록 해야 합니다.
 
 
1978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만 하여도 주소지에 따라 다르게 1997년도에 징병검사를 수검하여 체중조절할 시간이 부족하여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되는 데 불리하였습니다.
반면 이들과 함께 취학하던 1979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 소위 빠른 79년생들은 체중조절할 시간이 1년이나 많아 넉넉하여 체중미달 병역면제 및 체중초과 병역면제되는 데 유리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에게는 병역면제의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되어 병역의무 저버리는 것을 계획한 시기는 1997년 1월 중순 무렵입니다.
그런데 당시 주소지가 서울특별시 동작구이던 사용자:Bestgod1978이 그 꿈을 꾼지 불과 사흘후 징병검사통지서를 받게 됩니다.
이에 사용자:Bestgod1978은 다이어트를 효율적으로 하려고 해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불가능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사용자:Bestgod1978은 너무 빠른 징병검사수검으로 인하여 다이어트할 시간이 없어서 계획하던 살빼서 군대안가서 시간버는 꿈을 버려야 했습니다.
체중미달로는 재검 즉 병역처분변경신체검사도 받을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그 꿈을 피기도 전에 접어야 했습니다.
만약 사용자:Bestgod1978의 주소지가 1997년 10월에 징병검사를 수검하여 늦게 수검하거나 사용자:Bestgod1978이 빠른 79년생이어서 12개월 ~ 20개월 가량 징병검사를 늦게 수검한다고 칩니다.
시간이 넉넉해서 살빼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사용자:Bestgod1978은 징병검사때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되어 神의 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군복무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육군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복무하였습니다. 군복무기간은 1998년 1월 ~ 2000년 3월까지였습니다.
군복무시절 복무하던 병과는 행정병이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육군행정병으로 군복무하던 시절은 PC시대가 개막하던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기에 행정병으로 병영내에서 PC로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한글 프로그램을 워낙 많이 다루어서 전역하던 2000년 3월 당시 PC를 정말 잘 할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PC개막시대에 행정병으로 복무하여 얻은 최대의 소득입니다.
하지만 당시 군용 PC에는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아서 인터넷은 전혀 못하였습니다.
지금은 병영에서 행정병들이 사용하는 PC에 인터넷이 깔려 있는 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민방위도 끝나자 해당 병역면제의 기회가 다시 왔습니다====
2018년에 40세가 된 사용자:Bestgod1978이 전역후 예비군은 물론 민방위도 마쳐서 병역의무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2018년 2월 1일부터 과도한 체중미달자나 체중초과자는 전시근로역에 편입되는 게 부활합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1113351 비만이나 저체중 심하면 1일부터 '병역 면제']를 통하여 아실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체중관련 병역면제가 사라진 1999년 당시 출생자들이 2018년이 되어 그럴수 있는 기회라도 얻은 것입니다.
민방위까지 마쳐 병역의무가 종료된 사용자:Bestgod1978로서는 억울하지 않을수도 없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선거권 관련 사항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선거권 관련 사항에 대한 나이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만나이에 대하여 알게 된 시기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고등학교 졸업하던 1997년 초순에 만나이의 계산을 할줄 할면서 그해 12월 18일에 치른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선거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나이가 합법나이'''
 
대한민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매년 양력 1월 1일에 한살씩 더 먹는 나이는 법적효력이 전혀 없는 나이입니다.
즉 대한민국에서도 법적으로는 세계 표준 나이이던 만나이가 통용되던 것입니다.
해당 사실을 알고 한국나이는 잘못된 나이여서 만나이를 통용해야 한다고 여기게 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선거연령이 만20세 이상'''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선거연령이 만20세 이상 연령자로 제한되는 데 제15대 대통령선거 당시 사용자:Bestgod1978은 만19세여서 선거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억울하고 속상했는 데 그해 6월 26일에 만20세 미만 연령자에 대한 선거권제한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알게 됩니다.
당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났으면 당시 사용자:Bestgod1978에게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선거권이 부여되어 투표할수도 있었는 데 이때 헌법재판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는 성년이 될 무렵에 만나이에 대하여 제대로 알게 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선거권과 관련해서 만나이가 합법나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불법나이로 20세와 21세 이던 시절 합법나이로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를 못하였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만나이를 합법적으로 통용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성년이 되던 1997년 초입니다.
이때 사용자:Bestgod1978은 만나이가 합법적인 나이여서 통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법나이와 달리 합법나이로 미달이어서 선거연령이 안되던 시기'''
사용자:Bestgod1978은 선거연령이 만20세 이상이던 1997년 12월 18일에 치른 제15대 대통령선거와 1998년 6월 4일에 치른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만19세여서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할수 없었습니다.
불법나이로 전자일때는 20세, 후자일때는 21세여서 관련 불법나이가 말도 안되는 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자일때도 그랬지만 후자일때는 정말 대한민국도 합법나이를 통용해야 하는 생각이 매우 커지게 됩니다.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연령미달로 투표불가'''
 
1997년 12월 18일에 제15대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당시 선거연령은 만20세 이상이었습니다.
따라서 1997년 12월 18일 당시 만19세이던 사용자:Bestgod1978은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를 할수 없었습니다.
이때 만나이가 합법적 나이인 것을 알고 만나이를 통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1977년생은 대부분(1977년 12월 19일 이전 출생자) 선거권이 있었는 데 학과 동기생중 재수생출신자들중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들이 "너희는 선거권도 없으니까 아직 어린애이다"고 놀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재수생출신자여서 1년 늦게 와서 별로 약오르지 않았습니다.
 
'''*1998년 지방선거당시에도 연령미달로 투표불가'''
 
1998년 6월 4일에는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고 당시에도 선거연령은 만20세 이상이었습니다.
따라서 1998년 6월 4일 당시에도 만19세이던 사용자:Bestgod1978은 선거권이 없어서 또 투표를 할수 없었습니다.
당시 동갑내기 학과 동기생들중 1978년 6월 5일 이전 출생자들은 선거권이 있어서 투표할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선거권이 없던 것보다 훨씬 서러웠습니다.
그런데 1978년 4월에 출생하여 선거권이 있던 학과 동기생이 있었습니다. 해당 지방선거가끝난지 며칠 안되어 "너도 일찍 태어났으면 선거권이 있잖아"하면서 약올렸습니다.
당시 너무 화가 나서 탁자를 엎을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그러다가 불법나이 23세, 연나이 22세, 만나이 21세이던 2000년 4월 13일에 치른 제16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처음으로 선거권이 부여되어 투표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한국 나이로 20세 및 21세 시절 억울하게 선거권행사를 못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선거권과 관련하여 억울한 사항들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무엇보다 선거권과 관련해서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과 차별점이 없는 게 억울합니다=====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보다 먼저 선거권이 부여되었으면 억울함이 덜하지만 그러지도 못하였습니다.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도 동일하게 선거연령이 안되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선거권이 있어서 투표하는 게 가능했는 데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은 그러지 못하였으면 보상받을수라도 있습니다.
특히 학교동창생이 아닌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이 동갑이라고 기어오를때 그 사실을 들먹이면서 반박할수 있어서입니다.
즉 '''너(빠른 79년생)는 선거권이 없을때 나는 선거권이 있어서 투표할수 있었다'''고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처음 유권자로서 투표한 선거(제16대 국회의원선거)가 같아서 이렇게 할수도 없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서 선거연령이 연나이가 적용된 적이 없어서 역대 대한민국에서의 모든 선거는 선거 당일 생일이 지나야 투표할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용자:Bestgod1978이 원하던 이 사항이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역사속에서 흘러간 적이 없습니다.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8년 6월 4일) 당시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과 함께 있어서 서러웠습니다.'''
 
당시 불법나이로는 21세이데 합법나이로는 19세여서 투표못한 게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투표못한 것보다 억울하고 속상하였습니다.
동갑내기 학과 동기생 중 1978년 4월 30일에 출생하여 투표한 년이 한년 있었는 데 해당 지방선거가끝난지 며칠 안되어 "너도 일찍 태어났으면 선거권이 있잖아"하면서 약올렸습니다.
당시 너무 화가 나서 탁자를 엎을까 하다가 참았는 데 바로 옆에 빠른 생일(빠른 79년생) 1놈과 2년이 있었는 데 그 놈과 년들도 나와 똑같이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못하였습니다.
나보다 한살 어린 그 놈과 년들처럼 똑같이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못한 것도 억울하고 속상한 데 그 놈과 년들 앞에서 약올림을 당하니까 정말 서러웠습니다
이때 선거연령도 제1국민역(現 병역준비역)처럼 연나이(연19세 혹은 연20세)가 적용되어 빠른 생일자들을 배제하는 게 좋다고 여겼습니다.
이 해는 청소년보호연령(술,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과 취업)이 아직 사문화법이던 시기여서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보다 해당 혜택을 1년 먼저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 선거때 선거권이 있어서 투표한 동갑내기들이 부러웠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용자:Bestgod1978은 정말 억울하기 그지 없었으며 생일이 지나서 투표한 또래들이 부러웠습니다.
대표적인 게 길에서 우연히 만난 투표한 중학교동창생이 부러웠습니다.
그에게 '''"6·4지방선거(1998년) 당시 투표했나?"'''고 묻자 '''"생월이 4월이어서 투표하였다.우리가 졸업한 중학교가 당시 투표소였다"'''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투표못해서 서러운데 그 이야기를 듣고 그의 정강이에다가 발길질을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습니다.
또 2008년 초순에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에게 '''"6·4지방선거(1998년) 당시 투표했나?"'''고 묻자 '''"생월이 3월이어서 투표하였다"'''고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동갑내기들에게 '''"6·4지방선거(1998년) 당시 투표했나?"'''고 묻지 않는 데 생일이 지나서 가능하던 이들을 알면 내가 당시 생일이 지나지 않아 투표못한 게 서러워서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선거에 있어서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과 동일한 시기에 선거권이 부여되던 불이익도 당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용자:Bestgod1978에게 선거권이 없던 막바지연령이후 23년이 지나 세계 대부분의 선거연령과 동일하게 인하됩니다=====
결국 합법나이로 19세 당시 억울하게 2번이나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를 못한 사용자:Bestgod1978이 선거권을 취득하여 투표한 5년 및 14년이 지나서 선거연령이 인하됩니다.
원래 선거연령의 18세로 인하계획은 내가 선거권이 없던 1997년 12월 18일에 치른 제15대 대통령선거 당시 추진되다가 19세로 인하되어 8년후 약간 실현되고 18세로 인하여 23년후 완전하게 실현되었습니다.
전자 사용자:Bestgod1978은 20대 후반, 후자의 사용자:Bestgod1978은 40대 초반 연령이 되어서야 실현되었는 데 사용자:Bestgod1978이 그 나이대는 실현되지 않던 혜택입니다.
19세에 누리지 못하던 법적 혜택이 42세에 실현되었지는 나는 해당 사항이 없는 연령이 된지 사반세기나 지나서였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제15대 대통령선거 당시 사용자:Bestgod1978에게 선거권이 있었다면 어느 후보를 지지해서 투표하였을지 아무도 알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27세(2005년) 당시 만19세 이상으로 인하된 선거연령'''
 
2005년 8월 4일 당시 법률 제7681호로 공직선거법이 일부개정되어 선거연령이 20세에서 19세로 인하되어 당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06년 5월 31일에 치른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원래 1986년 6월 1일 이전 출생자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어야 했는 데 선거연령인하로 1986년 6월 2일 ~ 1987년 6월 1일 출생자들도 투표하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41세(2019년) 당시 만18세 이상으로 인하된 선거연령'''
 
2020년 1월 14일 당시 법률 제16864호로 공직선거법이 일부개정되어 선거연령이 19세에서 18세로 인하되어 당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20년 4월 15일에 치른 제21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원래 2001년 4월 16일 이전 출생자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어야 했는 데 선거연령인하로 2001년 4월 17일 ~ 2002년 4월 16일 출생자들도 투표하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김대중이 당시 선거연령 18세로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하였으나 제15대 대통령 취임한지 100일이 지난 1998년 6월 4일에 치른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선거연령이 인하되지 않아 공약실천이 안된 것입니다.
그러자 어딘가에다가 '''“김대중이 약속안 지켰다”'''고 이야기하자 '''“IMF사태로 경제가 엉망인데 애들이 뭘 투표해야 하냐!”'''며 야단맞다시피해서 기분나빴다.
당시에는 몰랐는 데 그 애들인 사용자:Bestgod1978이 추후 취업 등 사회진출의 기회가 적은 첫 세대가 될 줄 몰랐는 데 누구도 당시 그 예측은 하지도 않았다.
설사 호황이라 해도 대통령 취임한지 100일도 안되어서 선거연령이 인하되지 않은 것은 이상할 게 전혀 없는 데 사용자:Bestgod1978의 이익이 안되어서 그런 생각을 하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는 데 선거권은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어서 국회에서 입법되어야 하므로 대통령에게는 입법권이 없고 국회에서 입법된 해당 법률의 공포권만 있습니다.
막상 사용자:Bestgod1978이 그 나이를 훨씬 지나자 선거연령이 인하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선거권 관련 사항과 관련되어 불이익을 당하던 또다른 세대들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선거권 관련 사항과 관련되어 불이익을 당하던 또다른 세대들은 1982년 12월 20일 ~ 31일생들이 대표적인 세대들입니다=====
2002년 12월 19일에 아무도 예상치 못하던 노무현이라는 무명인사가 신데렐라처럼 한국 반만년 역사상 진정한 서민출신 국가원수이자 세계최초의 인터넷대통령이 되는 기염을 토하며 한국정치사는 물론 세계정치사도 다시 썼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와 관련해서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던 분들도 있었는 데 '''2002년 12월 19일에 치른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연령미달로 투표를 못하던 1982년 12월 21일 ~ 31일생들이 이분들'''입니다.
 
'''*2002년 당시 12월 19일에 치른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연령미달로 투표를 못하던 1982년 12월 20일 ~ 31일생들'''
 
즉 이들은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 노무현 당선) 당시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못하는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선거권이 만20세 이상 연령자들에게만 부여되어 투표일인 2002년 12월 19일에 해당 연령이 미달되던 이분들은 투표할수 없었습니다.
이분들중 상당수는 당시 자신에게 선거권이 있는 줄 착각하고 자신들과 함께 취학한 1983 년 1월 1일 ~ 2월 28 일 출생자들에게 선거권이 없다고 약올리기도 하다가 자신도 이들과 같은 처지인 것을 알기도 하였습니다 .
자신에게 선거권이 있는 줄 착각하다고 대통령선거일이 다되어 주소지로 발송된 선거인명부에 자신이 누락된 것을 알고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
심지어 대통령이어서 누구에게 투표할까 고려해 둔 이들도 많았는 데 자신에게 선거권이 없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면서 속상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
이분들은 연말에 출생하여 한국나이로 며칠후 1살 더 먹는 것도 서러운 데 대통령선거 당시 며칠 차이로 연령미달이어서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못하는 불이익도 당하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인생은 길고 앞으로 세월은 많이 남았다. 일찍 투표한다고 국리민복시대가 열리지 않는다』반박하는 인간의 못된 심보가 있는 데 똑같이 당했으면서 그러한 반박을 하면 이해가 하지만 지들이 당하지 않았는 데 그러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2002년 당시 12월 19일에 치른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연령미달로 투표를 못하던 1982년 12월 21일 ~ 31일생들에 대한 반박'''
 
 
일찍 투표한다고 국리민복시대가 열리지 않는다고 반박하는 인간의 못된 심보가 있는 데  선거연령이 다른 세대인 만19세(1986년 이후 출생자)나 만20세(1985년 이전 출생자)를 며칠 앞두고 선거권이 없던 분들이 그러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러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은 인간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선거때마다 투표하지 말고 기권해야 합니다.
12월하순에 출생하여 한국나이로 1 ~ 12일만 지나면 1살 더 되는 것도 서러운 데 대통령선거때 투표못하던 불이익을 당하던 것입니다.
또한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13일에 치른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당시에도 선거권(당시 1982년 6월 13일 이전 출생자에게만 선거권 부여)이 없어서 투표못하던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불이익을 당하던 세대는 1982년 12월 21일 ~ 31일 출생자분들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1982년 3월 1일 ~ 12월 20일일 출생자분들은 해당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후자와 관련하여 1982년 12월 21일 ~ 31일, 1983년 1월 1일 ~ 12월 31일, 1984년 1월 1일 ~ 2월 29일 분들이 모두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2년 6월 13일)와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 당시 투표못하는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실제로 다음 카페에 올라온 당시 이와 관련된 1982년 12월 31일생의 2002년 12월 19일에 치른 대통령선거 당시 불만에 대한 게시물들을 통하여 자세히 이해하실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4Ever2Gether/7riS/402?q=%B0%ED%B1%A4%B4%F6%2084%B3%E2&re=1 선거권에 대한 짧은 생각!]'''
 
전, 올해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82년 12월 31일 생입니다.
그리고 같은 동기중엔 83년 1 2 월 생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이 아니더라두 저와 같은 또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년이 넘도록 선거를 못하는거죠.
지금 법이 그래요,
이번에 12월 19일날 선거를 했죠?
그럼 82년 12월 18일생들 까지는 선거를 하고 단 12일 때문에
저는 선거를 못했죠.
지금 법이 그래요
웃기지도 않는거죠.
고등학생들에게 선거권을 준다는건 저두 반대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아직까지 미성년자일 수 밖에 없는
만 20세 규정은 일부 많은 수의 대학 2학년생들과 21살 동기들
그리고 꽉찬 대학 1년생과 20살들에게 선거권이란건 없죠.
내 손으로 처음으로 3학년이 다되서야 선거를 한다고 좋아 했지만,
단 12일 때문에 선거를 못한다니, 이때만큼 내가 12월 31일에 태어
났다는게 싫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선거권이 연나이 만 19세로 바꿔진다면,
선거가 1월 2월에만 하지 않는다면(그런적은 잘없죠..)
고등학생들이 투표를 하는 일도 없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투표를 하지 못하는 일도 없어 질 것같습니다.
제생각을 적어 본것이구요,
아무리 생각해두 이번 선거에서 투표를 못했다는것에 너무 화가나서 말이죠...
=====사용자:Bestgod1978이 그러한 불이익을 당할 때 태어난 세대들도 유사한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박근혜 前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판결로 2017년 3월 10일에 사임하였습니다.
당시 이에 따라 원래 2017년 12월 20일이던 제19대 대통령선거일이 2017년 5월 9일로 앞당겨져서 실시되었습니다.
그때는 선거연령이 만19세 이상 연령자에게 부여되었습니다.
따라서 1998년 5월 11일 ~ 12월 21일 출생자들에게는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아 이분들이 투표못하는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2020년에는 코로나19여파에도 불구하고 2020년 4월 15일에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연기되지 않고 예정데로 치르어졌습니다.
해당 선거는 선거연령이 만18세 이상 연령자에게 부여되어 실시된 첫 선거입니다.
당시 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자에게만 선거권이 부여되었습니다.
하지만 선거가 연기되면 선거일에 따라 선거권이 부여되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가령 2020년 4월 15일에 치르던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2020년 6월 10일로 연기되면 2002년 6월 11일 이전 출생자에게 선거권이 부여되던 식입니다.
하지만 예정데로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2020년 4월 15일에 실시되어 2002년 4월 17일 ~ 12월 31일 출생자들은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할수 없었습니다.
해당 선거는 비례대표 공천 문제, 사전투표 조작 문제로 선거무효소송이 대거 제기되었습니다.
선거무효소송은 원칙상 6개월이내에 판결해야 하므로 2020년 10월 무렵 해당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때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 대한 무효판결이 나면 재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선거권자가 또 투표일에 맞게 변경되는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 관련 사항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 관련 사항에 대한 법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 관련 사항에 대한 미성년자시절 법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성년이 될 무렵까지 미성년자에 대한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의 금지는 미성년자보호법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 법이어서 미성년자들의 술과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성년자 그중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교사(학원강사 포함)가 학생에게 술과 담배를 사오게 하는 심부름이 성행하였습니다.
교복착용한 학생 특히 고등학생들이 등교전 하교후 선생님의 심부름한다고 둘러대어 학교 인근 가게에서 담배구매하여 피우는 일은 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용자:Bestgod1978은 미성년자시절 특히 고등학생 시절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을 실컷 할수 있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미성년자시절 사실상 사문화법이던 미성년자보호법'''
 
미성년자보호법은 1961년 12월 13일 당시 법률 제834호로 제정되어 당일부터 집행되었습니다.
해당 법률은 『단기 4271년 칙령 제145호 미성년자끽연금지법』 및 『미성년자음주금지법을 조선에 시행하는 건』이라는 일제시대 당시 입법되어 광복후 1961년까지 16년동안 집행되던 법률이 폐지후 입법되던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성년이 될 무렵 제정된 청소년보호법'''
 
1997년 3월 7일 당시 법률 제5297호로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어 선거연령이 1997년 7월 1일부터 집행되었다.
 
'''이 시기는 사용자:Bestgod1978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성년이 된 후 제대로 집행된 미성년자보호법 및 청소년보호법'''
 
1999년 2월 5일 당시 법률 제5817호로 미성년자보호법이 타법폐지되어 청소년보호법에 통합되서 1999년 7월 1일부터 집행됩니다.
 
'''이 시기는 사용자:Bestgod1978이 병역면제되는 것을 포기하고 입대해서 고생하던 시기였습니다.'''
 
 
일제시대 당시에도 미성년자의 음주 및 흡연을 금지하던 법률이 존재하였는 데 실제로 집행되던 법률이었는 지 당시 기록이 없으면 아무도 알수 없습니다.
만약에 일제시대 당시 실제로 그 법률이 집행되었으면 1945년 당시 1920년대 후반 출생자들이 그 적용대상자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시대에는 그 법률이 사문화라도 사용자:Bestgod1978이 성년이 된 1997년 7월 1일이 되어서야 제대로 집행되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용자:Bestgod1978은 고등학생시절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을 실컷 하는 혜택을 누릴수 있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술과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과 관련하여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과 차별점이 없는 게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고등학교 3학년때 같은 반에 빠른 생일(빠른 79년생)인 개날라리가 1명 있었는 데 미성년자보호법이 사문화이던 당시 매일 소주 5병을 마신다고 지가 먼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대학교 1학년과 2학년때는 같은 학과에 빠른 생일(빠른 79년생)인 주량 소주 4병에 담배피우는 여자동기생이 1명이 있었는 데 1997년 당시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1997년부터 청소년보호법이 연19세이상 연령자부터 배제되었으면 전자는 1997년에 술 못마시는 불이익 당하고 후자는 그해인 1997년에 해당 혜택을 못누리는 불이익을 당하였습다.
빠른 생일(빠른 79년생)인 이들이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하던 것을 보면 정말 분하기 그지없습니다.
 
1984 ~ 2002년도 출생한 1, 2월생들은 상상도 할수 없던 18세의 혜택을 이들은 누리던 것입니다.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과 같은 시기에 술, 담배의 구매 등이 가능'''
 
사용자:Bestgod1978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7년 당시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기 직전인데 이 해에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도 나처럼 술, 담배를 구매 등을 하는 게 가능하였습니다.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이 1년 늦게 그랬어야 덜 억울'''
 
이들이 원조 1984년 1월 1일 ~ 2월 29일 출생자여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인 1997년 1월 1일 ~ 12월 31일 아닌 1998년 1월 1일 ~ 12월 31일부터 술, 담배의 구매 등을 1년 늦게 했어야 사용자:Bestgod1978이 덜 억울합니다.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이 1년 늦게 그랬어야 1살 많다고 하는 게 가능'''
 
이렇게 해야 사용자:Bestgod1978이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에게 1살 많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어서 이들이 나에게 쩔쩔매면서 언니 대접하는 효과가 발생할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용자:Bestgod1978이 중고등학생시절이던 1990년대 당시 미성년자보호법이 사문화법일 때 20대 초반 연령자만 출입하는 게 가능하던 락카페라는 술집이 있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고등학생시절 락카페 출입을 한번도 안 해본게 후회스러운 데 당시 고등학생도 사실상 술집출입이 허용되는 데 안해서였습니다.
 
그러면 사용자:Bestgod1978이 20대 초반이던 2000년대가 되어 락카페가 사라져서 더욱 억울한 것입니다.
실제로 고등학교 3학년 당시 한 선생님이 2학년 담임을 맡으셨는 데 자기 반 학생 1명이 락카페에 갔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고등학생시절로 되돌아가면 락카페에 실컷 가는 것이 가장 하고 싶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동료인 빠른 생일인 분들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동료 교수님들중에 1982년 2월생과 1984년 1월생 등 빠른 생일인 분들이 한분씩 계십니다.
빠른 생일로서 불이익을 전자는 당하지 않은 세대인 반면 후자는 당한 세대입니다.
1984년 이후 출생자들은 잘 아실텐데 빠른 생일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에는 술, 담배 구입 및 술집 출입과 취업이 금지되는 불이익을 당합니다.
이러한 빠른 생일들의 불이익은 2002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었고 2001년 12월 31일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빠른 생일로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은 1982년 2월생'''
 
1982년 2월생인 사용자:Bestgod1978의 동료 교수님이 이러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분이 해당 연령이던 2000년 당시 고등학교졸업 후 술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의 혜택을 실컷 누릴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이에 따라 유흥업소에 취업(접대부 아닙니다)하여 아르바이트하면서 돈도 벌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담배는 몸에 해롭기만 하고 담배냄새맡는 게 역겨워서 아예 배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분은 여자인데 형제가 1984년 1월생 여동생이 1명 있습니다.
여동생분은 2002년 그것도 한일월드컵이 한창일 때 빠른 생일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여 미안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0년 국회의원선거 당시 이분은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를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선거권이 있어서 투표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분은 빠른 생일로서 혜택을 누린 사실상 마지막 세대여서 너무 행복하다고 합니다.
 
 
'''*빠른 생일로서 불이익을 당한 1982년 2월생'''
 
 
1984년 1월생인 사용자:Bestgod1978의 동료 교수님이 이러한 불이익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분이 2002년 1월 1일 ~ 12월 31일에 그러한 불이익을 당해서 빠른 생일로서 이러한 불이익을 당하신 첫 세대라고 합니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친구들과 술집가서 술마시면서 월드컵관전하지 못할 때 서러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2002년 1월 1일 ~ 12월 31일까지 그러한 불이익을 크게 당하다가 2003년 1월 1일에 난생 처음 술과 담배를 밤세워가면서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2002년 12월 19일에 치른 제16대 대통령선거(노무현 당선) 당시에도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하지 못하여 서러웠다고 합니다.
 
1983년 이전 빠른 생일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에는 술, 담배 구입 및 술집 출입과 취업이 가능해서 그러한 불이익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빠른 79년생들도 이러한 불이익을 당해서 이들보다 1살 위이면서 함께 취학하던 것을 보상받지 못한 게 안타깝습니다.
=====유승민은 빠른 58년생으로 그냥 57년생인 황교안 및 류성걸, 정종섭과 함께 취학하였습니다=====
황교안은 1957년 4월 15일생, 정종섭은 1957년 6월 16일생, 류성걸은 1957년 7월 12일생, 유승민은 1958년 1월 7일생입니다.
유승민은 1958년 출생자이지만 1월 7일생이어서 1957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와 함께 1964년 3월 ~ 1975년 2월까지 취학하였습니다.
유승민이 국민학교(現 초등학교) 입학하던 1964년 3월 당시에도 1, 2월 출생자들은 전년도 3 ~ 12월 출생자들과 함께 취학하던 빠른 생일이 존재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승민은 황교안, 정종섭, 류성걸과 같은 시기에 취학 및 재학하였습니다.
황교안은 유승민과 학교동창생이 아니지만 정종섭과 류성걸은 경북고등학교에서 1973년 3월 ~ 1976년 2월까지 함께 재학한 고등학교 동창생 사이들입니다.
 
'''*유승민과 황교안'''
 
학교동창생이 아닌 이들이 정치를 이유로 만나면 서로 동갑처럼 지낼지가 의문입니다.
 
'''*유승민과 류성걸, 정종섭'''
 
고등학교동창생인 이들은 당연히 서로 동갑처럼 지냅니다.
 
류성걸은 경북고등학교 재학시절 집이 가난해서 매점에서 군것질도 잘 하지 못하였는 데 집이 부유한 유승민은 매점에서 군것질을 자주 하였습니다.
당시 유승민이 류성걸에게 “너도 매점가자!”고 하면서 크림빵을 사주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류성걸이 유승민에게 고마웠겠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유승민이 자신보다 1살 적다는 것을 알고 기분나쁠지도 모릅니다.
유승민이 자신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것을 고등학생 시절 류성걸이 알았다면 어떻게 여겼을 것이며 고등학교 졸업 후 알았다면 어떻게 여길지가 궁금합니다.
유승민은 엄연한 빠른 58년생인데 옛날 사람들은 의외로 이러한 빠른 생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과 관련해서 불이익을 당하던 세대들에 대한 사항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에 대한해당 연령에서 23년이 지나 빠른 생일 불이익자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2001년 당시 청소년보호법이 개정되어 대한민국에서 술과 담배의 구매,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가능한 연령이 연19세로 확정됩니다.
이 법률이 실제로는 2002년 1월 1일부터 제대로 집행되어 이해에 1983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들에게 적용됩니다.
따라서 생일이 빨라서 1983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과 함께 취학 후 이 무렵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4년 1월 1일 ~ 2월 29일 출생자들은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당시 1984년 1월 1일 ~ 2월 29일 출생자들이 반발하였으나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어느 연령으로 제한하여도 억울함 연령자가 나오기는 마찬가지이므로 18세(연나이) 1, 2월 출생자에게 예외를 두는 법으로 개정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마지막 빠른 생일 세대인 2002년 출생자(1, 2월생)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2020년까지 해당 법은 존속되어 소위 빠른 생일은 그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24세(2002년) 당시 연19세 이상으로 확정된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의 허용연령'''
 
2001년 5월 24일 당시 법률 제6479호로 청소년보호법이 일부개정되어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의 허용연령이 만19세에서 연19세로 인하되어 2001년 8월 25일부터 시행되었다.
 
따라서 1982년 8월 26일 ~ 1983년 2월 28일 출생자들이 이에 해당하는 연령자들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42세(2020년) 당시 사라지게 된 해당 불이익을 당하는 빠른 생일'''
 
마지막 빠른 생일 세대인 2002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인 2020년 1월 1일 ~ 12월 31일 당시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취업이 불가능한 마지막 불이익을 당한 세대입니다.
마침 이들은 2002년 초순 당시 1984년 1월 1일 ~ 2월 29일 출생자들이 해당 불이익을 당한 첫세대일 때 출생한 세대들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이와 관련해서 사용자:Bestgod1978이 1983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과 같은 세대(1978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이고 빠른 79년생(1979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들이 1984년 1월 1일 ~ 2월 29일 출생자들과 같은 세대가 아닌 게 가장 분합니다.
즉 사용자:Bestgod1978은 빠른 79년생(1979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들보다 1년 먼저 술과 담배의 구매,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을 하지 못한 게 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였으면 빠른 79년생(1979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들이 건방지게 동갑이라고 기어오를 때(특히 20대 초반 시절) 이를 들먹이면서 반박하여 잘 먹힐수가 있는 데 말입니다.
물론 그들이 1년 번 여러 시간만큼 1년 먼저 성년자로서의 혜택을 보아서 이익인 것도 있습니다.
또 학교동창생으로서 빠른 79년생(1979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들을 만날 때 이들을 골려먹는 장난을 할때도 활용할수 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그러한 불이익을 당할 때 태어난 세대들도 유사한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2002년 6월에 대한민국이 개최국의 이점을 살려서 16강진출을 넘어 누구도 상상도 못하던 월드컵본선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여서 한국축구사는 물론 세계축구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와 관련해서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던 분들도 있었는 데 2002년 당시 연령미달로 술을 못마시던 1984 년 1,  2월생들이 이에 해당하는 분들입니다.
 
 
'''*2002년 당시 연령미달로 술을 못마시던 1984 년 1,  2월생'''
 
1984년 이후 출생자분들은 잘 아실텐데 빠른 생일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에는 술 , 담배 구입 및 술집 출입과 취업이 금지되는 불이익을 당합니다 .
이러한 빠른 생일들의 불이익은 2002 년 1 월 1 일부터 시작되었고 2001 년 12 월 31 일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
이 빠른 생일로서 불이익을 처음 당한 1984년 1월 1일 ~ 2월 29일 출생자분들은 1990년 3월 ~ 2002년 2월까지 1983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과 함께 초등학교 ~ 고등학교에 재학하였습니다. 
이분들이 2001 년 12 월 무렵 고등학교 3 학년 동창생들에게게 2002 년 1 월 1 일에 술집에서 만나서 난생 처음 술 마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
그런데 연락들이 없자 알아보니까 '''2002 년 1 월 1 일부터 1983 년 12 월 31 일이전 출생자는 수 술 , 담배 구입 및 술집 출입과 취업이 허용된다 . 그런데 1984 년 1 월 1 일 출생자는 그렇지 않고 너는 그렇잖아 !''' 하였는 데 할말을 잃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너무 억울들 하셨을 텐데 (무엇보다 해당 불이익의 첫 세대인 것이 말입니다 ) 최대의 불이익은 2002 년 6 월 월드컵 당시 술을 못 마시던 것입니다 .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2001년 12월 무렵 학교 1년 일찍 들어가서 좋고 2002년 6월에 자국에서 치른 월드컵때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니어서 좋아들 하셨을텐데 막상 빠른 생일로서 불이익을 당한 첫 세대가 되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인생은 길고 앞으로 세월은 많이 남았다.술을 1년 늦게 마신다고 인생이 나쁜 방향으로 가지않는다.』반박하는 인간의 못된 심보가 있는 데 똑같이 당했으면서 그러한 반박을 하면 이해가 하지만 지들이 당하지 않았는 데 그러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2002년 당시 연령미달로 술을 못마시던 1984 년 1,  2월생에 대한 반박'''
 
술을 1년 늦게 마신다고 인생이 나쁜 방향으로 가지않는다고 반박하는 인간의 못된 심보가 있는 데 1984 ~ 2019년에 출생한 1, 2월생들이 그러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러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은 1984 ~ 2019년에 출생한 3 ~ 12월생들이나 1983년 이전 출생자(연18세에 해당 불이익을 안당하던 1, 2월생 포함)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최소한 1년동안 금주해야 합니다. 
1월이나 2월에 출생하여  연18세가 되기까지 1년 시간을 벌어서 좋아하였으나 연18세가 되는 해에 술과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과 취업이 안되는 불이익을 당하던 것입니다.
특히 2002년 6월 당시 자국에서 개최하던 월드컵때 술마시면서 월드컵관전 못하는 불이익이 가장 컸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불이익을 당하던 세대는 1984년 1월 1일 ~ 2월 29일 출생자분들이었고 1983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분들은 해당 불이익을 당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다음 카페에 올라온 당시 이와 관련된 빠른 84년생들의 2002년 당시 불만에 대한 게시물들을 통하여 자세히 이해하실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4Ever2Gether/7riS/402?q=%B0%ED%B1%A4%B4%F6%2084%B3%E2&re=1
84년생예비대학생의 비애]'''
 
1984년생에게 닥치고 있는 대학생의 비애를 아시나요." 최근 인터넷에 84년생 예비 대학
생들이 "나이"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을 담은 "84년생의 비애"라는 글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84년생 예비 대학생들은 남들보다 1살 빠른 7세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 다가올 봄에 대학생이 된다.  84년 대학생들의 비애가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지난해 개정된 청소년보호법 연령기준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하면서 청소년보호 연령기준을 만 19세 미만으로 통일했다. 이는 2002년 1월1일을 기준으로 83년 12월31일생은 성인으로 인정하지만, 84년 1월1일생은 청소년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 때문에 84년생들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미성년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들은 당장 피부 속으로 비애를 절감하고 있다. 83년생은 2002년 1월1일부터 주류 및 담배 구입이 가능하고 청소년 유해업소의 출입과 취직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84년생은 이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이를 어겼을 경우 술 등을 판매한 업주와 처벌을 받는다. 나이를 속이고 술집 등에 취직했더라도 이후 사실이 들통나면 함께 술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까지 불이익을 받도록 돼 있다.  "고광덕"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법무부 자유게시판에 "친구들이 올해 1월1일 모인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서 연락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왜 나만 빼놓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1월1일부터 83년생은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곳의 출입이 가능하지만 넌 아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84년 1월생입니다.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자유게시판은 84년생의 비애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로 뒤덮이다시피한다. "황인종"이라는 네티즌은 "같은 날짜에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는 못 마신다면 불공평하다"면서 생일이 빠른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84년생에게도 술 마실 자유를 달라고 하소연했다.  "정재운"이라는 네티즌은 "얼마후 각 대학마다 신입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을 것인데 84년생들은 콜라 사이다 마시고, 83년생들은 소주 양주 맥주 먹으라는 얘기냐"면서 비애를 느낀다고 밝혔다. "아우"라는 네티즌은 "버스료로 미성년자 요금을 내야 하는지, 성인요금을 내야 하는지 분간이 안간다"고 말했다.
 
 
과연 어느 쪽이 훨씬 불이익인지가  의문사항이 있습니다.즉 2002년 당시 연령미달로 술을 못마시던 1984년 1,  2월생과 그해 12월 19일에 치른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연령미달로 투표를 못하던 1982년 12월 21일 ~ 31일생중에서 말입니다.
 
''' *2002년 당시 어느 분들이 당하던 불이익이 훨씬 컸을 것으로 보입니까?'''
''' *2002년 당시 어느 분들이 훨씬 속상하였을 것으로 보입니까?'''
''' *2002년 당시 1984년 1, 2월생들은 2가지 불이익중 어느 불이익 당하던 것을 얼마나 훨씬 속상해하였을 것으로 보입니까?
2002년 당시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술과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과 취업을 못하던 불이익을 당하던 것과 선거권이 없어서 그해 치른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투표못하던 불이익을 당하던 것중 말입니다.
즉 2002년 당시 1984년 1, 2월생은 술, 담배 구매금지뿐 아니라 선거권이 없어서 당시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당시에도 투표를 못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얼마나 속상하였을 것으로 보입니까?
''' *2002년 당시 이분들이 당하던 불이익과 관련해서 어느 분들의 부모님들이 훨씬 속상해 하셨을 것으로 보입니까?
2002년 당시 연령미달로 술을 못마시던 1984년 1, 2월생의 부모님들이 자녀를 그 시기에 낳아서 자녀가 불이익을 당한 것과 그해 12월 19일에 치른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연령미달로 투표를 못하던 1982년 12월 21일 ~ 31일생의 부모님들이 자녀를 그 시기에 낳아서 자녀가 불이익을 당한 것중에서 말입니다.'''
 
 
참고로 술과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과 취업가능 연령과 선거연령은 각각 별개의 법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전자는 기본틀이 바뀌지 않았으나 후자는 개정되어 기본틀이 바뀌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빠른 생일과 관련해서 억울하게 당한 사연===
====사용자:Bestgod1978의 빠른 생일과 관련해서 억울하게 당한 사연에 대한 개관입니다====
2003년 출생자부터 빠른 생일이 사라졌지만 2002년 이전 출생자까지는 존재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용자:Bestgod1978이 경험한 빠른 생일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12월말 출생자가 아쉬워하던 사항'''
 
사용자:Bestgod1978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4년에 사용자:Bestgod1978의 이웃집에 1968년 12월 26일생 남자가 한분 사셨는 데 그분은 6일만 늦게 태어나셨으면(1969년 1월 1일) 학교는 그대로 입학하고 나이는 한살 더 적어져서 이익이었다며 그러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분의 학창시절은 1975년 3월 ~ 1987년 2월이었습니다.
 
 
'''*3월초 출생자가 아쉬워하던 사항'''
 
사용자:Bestgod1978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1995년 3월 2일(그날 토요일이던 기억이 납니다)에 하교중 1학년 때 같은 반이다가 또 같은 반이 된 동급생 한명(그와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다)이 그날 생일(1978년 3월 2일생)이던 이야기를 들었는 데 누군가가 이틀만 일찍 태어났으면 학교 1년 일찍 입학하는 것이라면서 남의 일인데도 아쉬워하였습니다.
 
'''*빠른 생일인 사용자:Bestgod1978의 초등학교 동창생'''
 
2002년에 인터넷시대초창기였는 데 당시 유행하던 동창회사이트를 통해서 초등학교 6학년때 같은 반 동창의 결혼소식을 듣고 결혼식에 참석한적이 있습니다.당시 아이러브스쿨에는 각 동창회별로 가입자의 생일을 열람하는 기능이 있었는 데 1명이 그 기능에서 참석자들의 생일을 열람하고 왔는 지 결혼식참석을 마치고 뒷풀이자리에서 그 기능을 통해 참석자들의 생일을 열람하고 온 것으로 보이는 1명이 '''우리(다른 참석자들)는 모두 1978년생인데 또 다른 1명만 1979년생이라 우리보다 한살 적다'''고 하였습니다.참석자들 모두가 1978년 3월 ~ 12월 출생자인데 1명만 1979년 1월생이던 것입니다.뒷풀이에서 그 일이 화제가 되었는 데 재미있던 던게 1979년생 1월생이던 초등학교 동창생이 '''내 친구중에서 빠른 79(1979년 1, 2월생)가 많다'''고 하였습니다.당시 후회가 되는 게 그 초등학교 동창에게 '''그러면 친구사귈때 친구가 빠른 79(1979년 1, 2월생)인 것을 알고 사귀었는 가?'''하고 물었어야 하는 데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빠른 생일에 대하여 제3자가 불만을 나타내던 사항'''
 
3 ~ 12월 출생자가 전년도 3 ~ 12월생과 후년도 1, 2월생이 함께 취학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나타내던 사항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는 데 당시 1979년 3월생이 한명 있었습니다.
그가 전에 다른 사업장에서 아르바이트 한적이 있는 데 함께 일하던 동료중 1979년 2월생 여자가 1명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1979년 2월생 여자 동료는 자신과 1979년 3월생이 동갑이어도 학교 1년 일찍 들어갔으니 누나라고 부르라고 해서 갈등을 겪었다고 합니다.
자신과 동갑이고 생일이 며칠 차이 안나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며 '''1, 2월생 학교 1년 일찍 들어가는 제도 없애야 해!'''하고 강하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참고로 그는 1979년 3월생(1979년 3월 1일 ~ 1980년 2월 29일 출생자가 함께 1986년 3월 ~ 1998년 2월까지 취학하였습니다)이고 당시 여자 동료는 1979년 2월생(1978년 3월 1일 ~ 1979년 2월 29일 출생자가 함께 1985년 3월 ~ 1997년 2월까지 취학하였다)이어서 전자는 사용자:Bestgod1978보다 학교를 1년 늦게 취학하였고 후자는 사용자:Bestgod1978과 같은 기간이 취학하였습니다.
후자가 사용자:Bestgod1978과 모르는 사이인데 함께 아르바이트하다가 만났으면 사용자:Bestgod1978보다 한살 적지만 학교를 같이 다녀 동갑이나 갔다고 우겼을 것입니다.
 
 
'''*1, 2월생이 자신의 생일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안하던 일'''
 
사용자:Bestgod1978이 2005년 당시 우연히 우리나라의 취업박람회에 가본적이 있는 데 당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1명이 여자였는 데 나이를 묻자 23세이면서 대학 4학년이라고 하였습니다.여자는 군대안가니까 23세이면 재수, 휴학 안했으면 대학교 4학년(3월~12월생)이 맞은데 그녀의 이름을 알아서 싸이월드에서 1983년생(2005년이던 당시 한국나이로 23세)을 찾아보니까 1983년 1월생이던데 재수 안했는 데 어학연수다녀오느라 1년 늦어진 것이고 20대초반나이부터 벌써(?) 생일빠르다는 이야기를 안해서 어려보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빠른 생일과 관련하여 사용자:Bestgod1978이 억울하게 당한 사연들이 많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빠른 생일과 관련해서 억울하게 당한 사연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1978년생으로 1979년 1월 1일 ~ 2월 28일생 즉 빠른 79년생들과 함께 재학하였습니다.
이들과 관련해서 1978년생으로 대우받은 차별점이 없는 게 너무 분합니다. 크게 미성년자시절과 성년자가 된 이후로 나누어집니다.
 
'''*미성년자시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할 때 이들이 건방지게 맞먹었습니다.
 
 
'''*성년자가 된 이후'''
 
술과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 병역의무, 선거권과 관련해서 이들보다 혜택을 본 것이 1개도 없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연령과 관련해서 억울한 사항은 ''' 빠른 79년생(1979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과 차별점이 없다''' 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1985년 3월에 초등학교 입학을 시작해서 1997년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1978년 6월생인 사용자:Bestgod1978은 1979년 3월 1일 ~ 1979년 2월 28일생들과 함께 재학하였습니다.
 
출생연도에 따라 사용자:Bestgod1978과의 나이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갑내기 동급생'''
 
1978년 3월 1일 ~ 1978년 12월 31일생
 
 
 
'''*연하 동급생'''
 
1979년 1월 1일 ~ 1979년 2월 28일생
 
 
전자는 사용자:Bestgod1978과 동갑이고 후자는 사용자:Bestgod1978s보다 1살 어린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1살 어린 1979년 3월 1일 ~ 1979년 2월 28일생들보다 받은 대우가 전혀 없어서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미성년자시절 빠른 생일과 관련해서 억울하게 당한 사연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는 미성년자시절 빠른 생일들에게 당해서 너무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최초 빠른 생일과 관련되어 억울한 사항'''
 
사용자:Bestgod1978이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까지 살던 동네에 함께 살던 동네아이중 1979년 2월생이 있었는 데 생일이 빨라서 필자와 함께 학교 입학하였는 데 그 아이는 학교입학하기 전에도 사용자:Bestgod1978에게 형대우 해주지 않았습니다.그 아이와는 다투기도 하고 친하기도 하였는 데 어느 날 그 동네에 살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 아이의 이름이 생각이 나서 싸이월드에서 1979년 1 ~ 2월 출생자중에서 검색해서 찾아보니까 나오던 데 역시 1979년 2월 출생자로서 사용자:Bestgod1978보다 한살 적은 데 생일이 빨라 학교 1년 일찍 들어가던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에게 빠른 79년생들이 기어오른 사항'''
 
사용자:Bestgod1978이 미성년자시절 빠른 79년생들이 건방지게 기어올랐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학창시절 빠른 79년생들이 1살 위인 사용자:Bestgod1978에게 감히 기어올랐습니다.
특히 중학교 입학하던 초에 사용자:Bestgod1978의 옆자리와 앞자리 둘 등 3명이 모두 빠른 79년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건방지게 함께 1살 위인 사용자:Bestgod1978에게 대놓고 막먹으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사용자:Bestgod1978이 학창시절 빠른 79년생들이 기어오른 일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에게 빠른 79년생에게 배신 당한 사항'''
 
사용자:Bestgod1978이 중학교 3학년때 빠른 79년생 친구에게 배신당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국민학교(現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같은 반이어서 알게 되어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5학년이 되어 다른 반이 되면서 친하지 않게 됩니다.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였는 데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 우연히 한 놀이터를 지나가다가 서로 만나는 일이 많게 됩니다. 그러자 다시 친해지게 되는 데 또 같은반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그 친구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갑자기 사용자:Bestgod1978을 피하려던 것 같은 데 당시 4월말에 봄소풍을 갈 때 함께 갔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도 그렇게 소풍갈 때 마다 함께 갔는 데 그날은 사용자:Bestgod1978과 함께 있기 싫어서 죽을려는 내색을 참고 있었습니다.
일이 있어서 얼른 헤어지자고 하더니 돈이 떨어졌다면서 1천원만 달라고 해서 건넸습니다. 그 1천원은 사용자:Bestgod1978과 함께 있기 싫은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제서야 변심해서 사용자:Bestgod1978과 더 이상 친구하기 싫은 사실을 알고 그날부터 그 친구와 연락을 끊습니다.
이때 3번 다시는 친구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졸업할 무렵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났으나 안부(당시 지는 재수해서 대학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만 듣고 헤어졌는 데 그후 다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후 인터넷시대를 통하여 알게 된 사항입니다.
 
첫째 아이러브스쿨에서 알게 된 사항입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시대가 열리던 2000년 전후에 아이러브스쿨에 그 친구가 있나 찾아보았는 데 없었습니다.
제가 가입되어 있으면 피하거나 저를 볼 면목이 없어서 아이러브스쿨에 가입안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싸이월드에서 알게 된 사항입니다.
 
역시 혹시나 해서 싸이월드의 전성기이던 2000년대 후반에 싸이월드에 그 친구가 있나 찾아보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란 사실이 그 친구가 빠른 79년생으로 사용자:Bestgod1978보다 한 살 적던 것입니다.
 
셋째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사항입니다.
페이스북이 성행하던 2019년 당시 우연히 그 옛 친구의 페이스북을 발견하였는 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친구의 정치성향이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용자:Bestgod1978이 한 살 적은 놈을 친구로 사귀고 그한테 배신당했으니 정말 화가 났습니다.
학제가 제대로 되었으면 사용자:Bestgod1978보다 한 살 적던 그 친구에게 윗사람이던 사용자:Bestgod1978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사용자:Bestgod1978에게 기어오르던 빠른 79년생들'''
 
사용자:Bestgod1978이 학창시절 빠른 79년생들이 1살 위인 사용자:Bestgod1978에게 감히 기어올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용자:Bestgod1978와 같은 반 아이 1명이 빠른 79년생이었습니다.
그 빠른 79년생은 1979년 2월 27일생으로 이틀 차이로 1살 위인 사용자:Bestgod1978 함께 취학하였습니다.
그 빠른 79년생은 체격이 좋고 힘이 세서 싸움도 잘했는 데 “이틀만 늦게 태어났으면 사용자:Bestgod1978에게 언니대접할뻔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게 건방지게 1살 위인 사용자:Bestgod1978에게 대놓고 막먹으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사용자:Bestgod1978이 학창시절 빠른 79년생이 기어오른 일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재수없던 빠른 생일'''
 
고등학교 3학년때 같은 반에 빠른 79년생이 1명 있었는 데 정말 재수없게 굴었습니다.
 
첫째 빠른 79년생이 조기졸업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같은 반에 그 빠른 79년생과 대화하다가 조기졸업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가 조기입학해서 1년 시간을 일찍 번 주제에 “대학교 입학해서 조기졸업하면 인생의 폭이 넓어져서 좋다”고 건방지게 이야기했습니다.
참고로 1996년이던 당시 불과 1년 후 IMF사태가 올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후 대학교를 조기졸업하여도 취업난으로 인하여 취업이 잘 안되어 그렇게 해서 넓어진 인생이 폭이 사실상 쓸모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빠른 79년생이 안면이 있는 사람 1명이 사정상 국민학교(現 초등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하고 학교다니다가 사정상 1년 휴학을 하여 남들보다 2년 늦게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며칠 안되어 입대통지서가 발부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징병검사를 수검하였을텐데 빠른 생일인지는 이야기 안해서 모릅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가 빠른 생일인 사실을 끝내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빠른 79년생이 1살위에게 건방지게 맞먹었습니다.
 
그 빠른 79년생과 이 이야기를 할 무렵 저와는 고등학교 2학년, 그와는 고등학교 1학년 당시에 같은 반이 었지만 고등학교 3학년때는 아닌 한 급우의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습니다.
그 급우의 이름은 오**으로 숫자가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좀 독특한 이름입니다.
빠른 79년생과 우연히 그 급우이야기가 나왔는 데 사용자:Bestgod1978은 얼떨결에 “이름이 오**이 뭐냐!”면서 놀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름이 오**인 급우가 그 일로 저에게 화를 냈는 데 빠른 79년생이 고자질을 하던 것입니다.
이름이 오**인 급우는 빠른 79년생이 아니었는 데 고자질을 한 빠른 79년생이 “사용자:Bestgod1978가 너보다 이름이 오**이 뭐냬”하던 것입니다.
건방지게 빠른 79년생이 한 살 위인 오**인 급우에게 너라고 했는 데 그 사실이 화가 나야하는 데 억울한 것입니다.
 
회고회 보면 그 빠른 79년생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97년 당시 사용자:Bestgod1978처럼 술, 담배의 구매와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이 허용되고 1997년 12월 18일에 치른 대통령선거 및 1998년 6월 4일에 치른 지방선거 당시 똑같이 선거권이 없어서 함께 투표못한 게 억울하고 분합니다.
 
 
'''*병역의무 및 빠른 생일과 관련해서 사용자:Bestgod1978이 정말 억울한 사연'''
 
사용자:Bestgod1978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빠른 생일이 약올렸습니다.
1978년생인 사용자:Bestgod1978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6년 8월 당시 제1국민역(現 병역준비역)에 편입되었다는 국가의 통보가 주소지로 왔습니다.
알고 보니까 1978년생인 같은반 남자 급우들에게 모두 그러한 국가의 통보가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같은반에 빠른 79년생인 남자 급우가 있었는 데 당시 그에게는 그러한 국가의 통보가 안 왔습니다.
제1국민역(現 병역준비역)은 연18세가 되면 편입되는 데 1978년생이 그 나이이던 1996년에 그 대상자이던 것입니다.
반면 빠른 79년생들은 1997년에 편입되어 고등학교 졸업한 지 반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당시 해당 국가의 통보가 안온 빠른 79년생인 급우인 사용자:Bestgod1978를 비롯한 1978년생들에게 '"너희들 얼른 군대갈 준비들 해라"'''고 건방지게 한 살 위인 형님들에게 약올리다시피 하였습니다.
 
 
이만큼 사용자:Bestgod1978은 1978년 출생자로서 미성년자시절 빠른 79년생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한 세대입니다.
 
1990년대 출생자 빠른 생일들은 전년도 3월 ~ 12월생들에게 형, 누나, 언니, 오빠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02600329112003&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5-10-26&officeId=00032&pageNo=12&printNo=15578&publishType=00010 "엄마,애들이 나보고 동생이래"]의 경우를 보시듯 사용자:Bestgod1978과 띠동갑인 1990년 3월 ~ 12월생들은 유치원다닐때부터 빠른 91년생들을 동생취급하였고 빠른 91년생들은 이에 호응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용자:Bestgod1978은 빠른 79년생들에게 이렇게 하지 못한 게 억울하기만 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미성년자시절 빠른 79년생들과의 차별성이 없어서 억울한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성년이 되어 빠른 생일과 관련해서 억울하게 당한 사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002년 1, 2월생까지는 빠른 생일이라고 해서 전년도 3 ~ 12월생과 함께 재학하였습니다.
1978년 6월 생인 사용자:Bestgod1978는 1979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와 함께 재학하였습니다.
먼저 이와 관련해서 이들이 한 살위인 제가 한살 적은 동생인 이들에게 너, 야 등 반말을 들었으니 정말 화가 납니다.
19세이던 1997년 대학교 2학년 2학기 당시 빠른 79년생 2명과 함께 대학도서관에서 교내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 여자였는 데 지들이 나와 동갑이라고 맞먹으면서 대놓고 기어 올랐습니다.
대학교에서도 전년도 3 ~ 12월 출생자와 후년도 1, 2월 출생자들이 함께 배치되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데 그러한 배려가 전혀 없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당시 이들과 같은 나이의 남자 빠른 79년생들은 징병적령이 아니어서 징병검사를 수검하지도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면서 1997년 12월 18일에 치른 대통령선거 당시 이들과 함께 선거권이 없는 게 분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선거권취득 및 술, 담배의 구매와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에 있어서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보다 혜택을 누린게 없어서 분한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20세 전후 시절 빠른 생일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똑같은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한국나이로 20세(만19세)일 때 치른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와 21세(만19세)이던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8년 6월 4일) 당시(당시 선거연령은 만20세이상 연령미달로 선거권이 없어서 투표못하였습니다.
전자는 1977년 12월 19일 이전 출생자, 후자는 1978년 6월 5일 이전 출생자에게 선거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빠른 79년생들도 사용자:Bestgod1978과 동일하게 선거권이 없어서 이들을 선거권이 없을 때 사용자:Bestgod1978은 선거권이 없던 적이 없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1살 어린 이들과 같은 불이익을 당한 것이 매우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20세 전후 시절 빠른 생일들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1, 2월생 즉 빠른 생일자들은 고등학교 졸업후 즉 12월 31일까지 불이익을 당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술과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은 연19세이후에 가능합니다.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연18세인 1, 2월생 즉 빠른 생일자들은 그해 12월 31일까지 해당 혜택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1, 2월생 즉 빠른 생일자들의 불이익은 1984년 1, 2월생들이 2002년 1월 1일 ~ 12월 31일까지 겪은 것으로 시작합니다.
1983년 1, 2월생들은 이러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해당 연령이던 1997년 당시 1979년 1, 2월생들은 이러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 술과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을 마음껏 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이것을 억울해하는 이유는 빠른 79년생과의 차별점이 없어서입니다.
이 사항이 1997년 당시에도 있었으면 빠른 79년생들보다 1년 먼저 성년자로서 대접받은 사항이 있어서 분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빠른 79년생들이 감히 동갑이라고 기어오를 때 “너희는 1978년생보다 술과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을 1년 늦게 해서 동생이다”고 반박할수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사용자:Bestgod1978이 당시에는 이 사항이 없어서 그러지를 못하여서 분한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동갑내기들중에는 2002년 월드컵 출전선수가 없는 데 빠른 79년생들중에는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월드컵에 열광하던 2002년 당시 월드컵에 출전하던 우리나라 국가대표축구선수들중 1978년생이 없었습니다.
1978년 3월 1일 ~ 12월 31일생들과 함께 학교에 재학하던 빠른 79년생인 설기현(1979년 1월 8일생)과 송종국(1979년 2월 20일생)은 있었습니다.
송종국은 실제로는 1978년 3월 5일생인데 출생신고가 늦어져서 주민등록상 1979년 2월 20일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민등록생 나이가 1978년 3월 5일생 아닌 1979년 2월 20일생이어서 1978년생이라고 하기가 애매모호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선수들중에 1978년생이 없는 게 유감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그나마 군복무 시절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에게 보복(?)할수 있었습니다=====
1978년 6월생으로 1997년 2월에 징병검사수검(매우 부당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후 1998년 1월에 육군이등병으로 입대한 사용자:Bestgod1978는 1999년 1월에 육군상등병이 됩니다.
이 시기에는 1998년 당시 징병검사수검한 빠른 79년생들이 대거 입대하던 시기입니다.
군대를 일찍 간 사용자:Bestgod1978은 이 빠른 79년생들에게 선임병으로 군림할수 있었습니다.
한 빠른 79년생 후임병이 “저는 빠른 79년생입니다”하고 우렁차게 답변하자 사용자:Bestgod1978는 “그러면 빠르겠구나.연병장을 한바퀴 돈다 실시!”하고 지시하여 약간이 보복(?)이라도 하였습니다.
만약 사용자:Bestgod1978가 2학년 마치고 그 시기에 입대하였으면 그들과 동기가 되고 더 늦게 입대하였으면 그들의 후임병이 되어 그렇게 할수도 없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친구가 빠른 생일(빠른 79년생)들과 관련해서 억울하게 당한 사연입니다=====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은 현역병과 달리 계급이 없어서 선임과 후임사이에 말터놓고 지내는 게 일반적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 친구가 해당 복무할때도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용자:Bestgod1978의 선임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이나 후임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이나 동갑내기 1978년생(빠른 78년생 포함)은 없었다고 합니다.
후임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중 빠른 생일은 3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너는 우리와 함께 학교 다녔으니 동갑이다”면서 대놓고 기어올랐다고 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친구가 일찍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을 시작하였으니 현역이었으면 이들이 빠른 생일이라고 우기면 정말 굴렸을 텐데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친구가 더 화가 나는 것은 이중 1명은 1998년 징병검사(現 병역판정검사) 당시 주소지가 늦게 배정되는 것이어서 가을에 수검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사용자:Bestgod1978의 친구는 일등병 호봉일때이고 이 네가지 없는 빠른 79년생이 왔을 때 현역으로 치면 병장 사용자:Bestgod1978의 친구가 이등병 빠른 79년생을 맞이하던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친구는 당시 현역으로 병역의무를 못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스러웠다고 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친구가 소집해제후 반년이 지난 2002년 1월 1일 무렵 청소년보호법이 개정되어 술, 담배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에 있어서 연19세가 적용됩니다.
따라서 1983년생은 생일에 무관하게 해당 사항이 가능하던 반면 한국 나이로 7살에 취학하던 1984년 1, 2월생들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이것이 1997년부터 적용되었으면 1978년생은 생일에 무관하게 해당 사항이 가능하던 반면 한국 나이로 7살에 취학하던 1979년 1, 2월생들은 불가능할수 있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 및 친구 때 이랬으면 빠른 79년생들이 기어오를 때 이 사실을 들먹일수 있었을 텐데 그럴수 없던 게 너무 아쉽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1,2월생 연18세 불이익과 관련해서 억울한 사항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 2월 출생자들이 전년도 3 ~ 12월 출생자들과 함께 취학하던 세대는 1955 ~ 2002년 출생자들입니다.
1961년 당시 3월 학기가 실시되면서 그해에 1954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과 1955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이 함께 취학하던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한국전쟁 휴전 전후에 출생한 베이비부머 1호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1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이 함께 취학하도록 하면서 2001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과 2002년 1월 1일 ~ 2월 28일 출생자들이 함께 취학하던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들은 한일월드컵 전후에 출생한 세대이자 본격적인 저출산시대에 출생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연18세에 술,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과 관련된 불이익여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18세에 술,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과 관련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은 빠른 생일 세대'''
 
1955 ~ 1983년 출생자들이 이 세대입니다.
이들이 18세이던 1973 ~ 2001년까지는 연19세 이상 연령자만 술,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이 허용되던 법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그 연령일 때 해당 혜택을 마음껏 누리면서 보냈습니다.
 
'''*연18세에 술,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과 관련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은 빠른 생일 세대'''
 
1984 ~ 2002년 출생자들이 이 세대입니다.
이들이 18세이던 2002 ~ 2020년까지는 연19세 이상 연령자만 술,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 및 취업이 허용되던 법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그 연령일 때 해당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면서 보냈습니다
 
 
1978년 출생자들은 1, 2월생으로 빠른 생일이 존재하는 1955 ~ 2002년 출생자들의 한 가운데 있는 중간 세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빠른 생일이어서 연18세에 불이익을 당한 세대들은 1984년 출생자들이 최초의 세대들입니다.
2002년부터 해당 법이 집행되었는 데 1997년부터 그러한 법이 입법되어 집행되었어야 되었습니다.
그 결과 빠른 79년생부터 그러한 불이익을 당한 세대가 되어서 1978년 3월 1일 ~ 12월 31일 출생자들이 이들과 함께 취학하던 것을 보상받아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되면 1, 2월생으로 빠른 생일의 중간부터 그렇게 되어서 보기에 좋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1978년 출생자로서 빠른 79년생들에 비하여 이러한 이익을 누리지 못한 게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세대===
====사용자:Bestgod1978의 세대에 대한 개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1978년생으로 미성년자시절과 성년이 된 이후 모두 저주받은 세대입니다.
한마디로 1978년생들은 성년이 되어서는 미성년자시절 못받던 혜택을 후세대들은 받게 되고 성년자들만 받고 미성년자시절 받을수 없는 혜택을 못받게 된 연령대별 저주받은 세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미성년자로서 억울한 세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미성년자로서 억울한 세대에 대한 개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어린이이던 1980년대 당시 길거리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사복과 긴머리로 통학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세대들은 교복자율화와 두발자유화의 혜택을 누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용자:Bestgod1978이 1991년 3월에 교복부활과 두발제한이 시작된 가운데 중학교에 입학하여 고등학교 졸업하던 1997년 2월까지 그러한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983년에 교복자율화가 되어서 1990년 전후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교복자율화의 혜택을 누린 세대는 1970 ~ 1971년생들입니다.
이들의 중학생과 고등학생시절 사복착용으로 탈선증가, 지도의 어려움, 가계부담 증대로 1990년 전후에 교복이 부활된 것입니다.
반드시 아셔야 할 사항이 교복자율화시대에 여중생과 여고생들은 대부분 치마 아닌 바지를 착용하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여성의 치마착용율이 바지착용율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따라서 작업복, 청소복, 환자복, 죄수복을 제외한 여자제복은 거의 다 치마였습니다.
지금은 바지가 대부분인 여자제복으로서 간호복, 경찰복, 간수복도 모두 치마였습니다.
여중생과 여고생들이 다시 치마착용하는 불편함을 겪게 한 1970 ~ 1971년생들들을 원망해야 합니다.
이들은 지들한테 부여된 교복자율화의 혜택을 방종으로 남용하여 교복부활이 되게 한 원흉들입니다.
그러므로 1970 ~ 1971년생 여자들은 치마 아닌 바지 착용하고 편하게 학교다녔으나 교복부활로 여학생들이 불편한 치마를 입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싫어하는 데 저와 동갑인 1978년생 동료 교수님께서도 교복부활세대로서 1991년 당시 중학교 입학과 함께 교복착용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본인은 물론 급우들도 교복부활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였다고 하는 데 저처럼 남자인데도 그렇습니다.
이분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남학교만 나와서 당시 여학생들의 교복부활에 대한 불만은 모른다고 하십니다.
참고로 이분이 중학교 3학년때 한 선생님께서 “1970 ~ 1971년생들의 교복자율화의 혜택을 방종으로 남용하여 교복부활이 되게 하여 너희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여 주셔서 이 사실을 아셨다고 합니다.
그때 여자들은 불편한 치마착용하고 학교다녀야 되어서 불만이 훨씬 컸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중학교 입학할때는 교복부활과 두발제한의 재개로 저주받은 것입니다.
또 학창시절내내 학교급식, 학교체육관, 학교도서관, 교원평가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항들은 1978년생들이 성년이 된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교복부활로 저주받은 세대여서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교복부활이 되어 교복착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사용자:Bestgod1978은 교복부활세대입니다.
이에 대하여 보상받기 위하여 제복착용하고 근무하는 직업은 하지 않습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제복착용하고 근무하면 신분이 드러나 활동의 제한이 많습니다.
 
환경미화원, 경비원 및 간호사, 경찰관을 예로 듭니다.
 
'''*환경미화원'''
 
환경미화원들은 청소복착용하고 근무하는 데 근무지에 출근해서 사복을 청소복으로 환복합니다.
대부분의 환경미화원들 근무지는 규모에 무관하게 외부인출입이 많습니다.
따라서 외부인출입이 없는 외진 곳에 탈의실이 위치합니다.
그 먼 곳까지 가려면 귀찮습니다.
 
 
'''*경비원'''
 
경비원들은 경비복착용하고 근무합니다.
경비복착용하면 활동의 제한이 많아서 목감기가 심한 데 출근한후 사복착용과 경비복착용중 망설여집니다.
병원에 가야하는 데 경비복착용하고 가기는 불편해서입니다.
병원다녀와서 근무지에서 휴식할때도 경비복착용하기가 불편합니다. 그곳 출입자들로부터 경비원이 농땡이부리는 것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어서입니다.
 
 
 
'''*간호사'''
 
간호사들은 전원 간호복착용하고 근무하는 데 병원에 출근해서 사복을 간호복으로 환복합니다.
대부분의 종합병원은 규모가 크면서 외부인출입이 많습니다. 따라서 외부인출입이 없는 외진 곳에 탈의실이 위치합니다.
그 먼 곳까지 가려면 귀찮기 그지 없습니다.
 
 
'''*경찰관'''
 
경찰관들은 파출소, 교통과 등 일부 부서에 재직하는 경찰관들만 경찰복착용하고 근무합니다.
경찰복착용하면 활동의 제한이 많아서 38도의 고열속에서 출근한후 사복착용과 경찰복착용중 망설여집니다.
병원에 가야하는 데 경찰복착용하고 가기는 불편해서입니다.
병원다녀와서 파출소나 경찰서에서 휴식할때도 경찰복착용하기가 불편합니다.
그곳 출입자들이 경찰관이 농땡이부리는 것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어서입니다.
 
 
이에 대한 사용자:Bestgod1978의 경험담들입니다.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의 경험담'''
 
실제로 사용자:Bestgod1978이 대학생시절 할인점에서 아르바이트 한적이 있습니다.
이때 해당 할인점의 점원들이 사복과 판매복을 환복하는 탈의실이 외부인출입이 없는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먼곳까지 가기 귀찮았습니다.
당시 추후 환경미화원, 경비원, 간호사, 경찰관 등 제복착용하고 하는 직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제복착용하면 활동의 제한이 많아서입니다.
 
 
 
'''*교수로서의 경험담'''
 
사용자:Bestgod1978의 중학교입학후 불평불만이 여자선생님들은 모두 치마착용하던 데 상당수 남자선생님들은 양복착용안했다입니다.
고등학교 입학하니까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사용자:Bestgod1978은 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하여 교수가 된 지금도 졸업앨범촬영 등 행사가 있을때를 제외하고는 양복착용을 안합니다(사용자:Bestgod1978의 중학생과 고등학생시 양복착용안하던 남자선생님들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복부활의 서러움과 중학생과 고등학생시절 선생님들에 대하여 못마땅해 하던 사항을 보상받게 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두발제한으로 저주받은 세대여서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두발제한은 지금과 달리 남학생들은 군인머리였습니다.
이렇게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군인머리를 하는 두발제한을 당했습니다.
중학교 입학후 고등학교졸업하고 나서 군대를 되도록 일찍 갈 생각도 하였는 데 어차피 군대가면 그 머리를 할것이어서 군대 일찍 가서 전역후 실컷 머리 길러야지해서 였습니다.
자유를 제한받는 것이 사람은 물론 짐승도 싫어 합니다.
따라서 사용자:Bestgod1978은 두발제한되니까 자유가 제한되어서 너무 싫었습니다.
당시 군대가면 어차피 그때와 똑같은 머리길이로 두발제한당할텐데 군대를 최대한 일찍 갔다와서 실컷 머리기르는 게 좋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사회복무요원과 고급장교 및 고급부사관을 예로 듭니다.
 
''' *사회복무요원'''
 
사회복무요원들은 훈련소입소시만 군인머리하고 사회복무요원복무중에는 일반인과 같은 머리모양이 허용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회복무요원은 머리들이 일반인과 같아서 앞머리가 이마를 가리는 일도 허다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20대 그것고 20대 초반연령의 저령자여서 앞머리가 길어져서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군인머리가 좋다면 많은 사회복무요원들이 너도나도 훈련소퇴소후에 복무기간에도 군인머리를 할 것입니다.
 
 
''' *고급장교 및 고급부사관'''
 
장교와 부사관들도 군인머리하지만 대위계급이하 장교와 중사계급이하 부사관에게만 두발제한이 있습니다.
소령이상계급 장교와 상사계급이상 부사관에게는 일반인과 같은 머리모양이 허용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복무요원과 달리 앞머리가 이마를 가리는 일이 드문게 고령이어서입니다.
이들은 모두 30대 이상 고령자여서 앞머리가 길어지지 않아 어쩔수 없이 못 기르는 것입니다.
만약 군인머리가 좋다면 많은 고급장교 및 고급부사관들이 해당 계급 진급후에도 전역할때까지 군인머리를 할 것입니다.
 
 
고급장교 및 고급부사관과 사회복무요원의 예만 들어도 중학생과 고등학생에 대한 두발제한은 매우 부당한 자유의 제한입니다.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은 먹이 충족을 비롯한 생존걱정이 없지만 그렇다고 자유를 자유를 제한받는 것을 좋아들 하지 않습니다.
드물지만 만약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이 탈출하고 나서 동물원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동물들에게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죽더라도 자유가 훨씬 소중해서입니다.
 
사슴과 사자를 예로 듭니다.
 
'''*사슴'''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사슴은 천적에게 잡혀 먹힐 걱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동물원에서 탈출한 사슴이 천적에게 잡혀 먹힐지 언정 자유가 없는 동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사자 '''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사자는 힘들게 사냥하는 고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동물원에서 탈출한 사자가 고생해가면서 먹이사냥할지 언정 자유가 없는 동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동물원에서 사슴과 사자의 예만 들어도 중학생과 고등학생에 대한 두발제한은 매우 부당한 자유의 제한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성년자로서 억울한 세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성년자로서 억울한 세대에 대한 개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성년이 된 직후이던 1990년대 후반에는 교복과 관련된 해당 법 및 문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교복과 관련하여 해당 혜택을 누리지 못하여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성년이 된 직후 교복착용하고 술마시지 못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성년이 된 직후이던 1997년 2월에는 지금처럼 연19세 이상 술, 담배의 구매 및 유흥업소 출입과 취업이 가능하던 법률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해당 세대들처럼 고등학교 졸업하던 날 교복착용하고 술마시지 못하여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성년이 된 직후 만우절에 고등학생행세를 못하였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성년이 된 직후이던 1997년 4월 1일에는 20대 초반 연령자들이 만우절에 교복착용하고 고등학생행세하던 문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해당 세대들처럼 고등학교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1997년 4월 1일에 교복착용하고 고등학생행세를 못하여 억울합니다.
 
 
또한 사용자:Bestgod1978은 성년이 되어 IMF사태 및 학교급식으로 저주받은 세대입니다.
즉 성년이 되자마자 IMF사태가 와서 취업문이 좁아져서 캥거루족과 비혼, 무자녀가 많은 실질적인 첫 세대입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호황이자 축복은 1978년생들이 성년이 되자마자 끝나서 해당 혜택을 못 누렸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한강의 기적에 대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 세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하여 성년이 된 1997년 12월 3일에 IMF사태라는 불황이 왔습니다.
따라서 사용자:Bestgod1978은 성년이 되자마자 취업 등 사회진출의 문이 좁아진 저주받은 세대입니다.
IMF사라는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이 시기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하여 저출산 지속으로 이전에는 의학도들 사이에 최대 인기 전문의과이던 소아과와 산부인과가 비인기 전문의과로 전락하던 시기입니다.
IMF사태 직전인 1997년까지 대기업에 재직하는 것보다 수익이 적은 교사는 구직자들사이에 비인기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불어닥친 IMF사태로 불황이 시작되면서 정년보장이 되는 교사는 공무원과 함께 구직자들사이에 최고의 인기직업이 됩니다.
따라서 당시부터 교사임용시험경쟁률이 이때 공무원임용시험경쟁률과 함께 급증하게 됩니다.
이후 취업난이 지속되어 힘들게 공부해서 공무원, 교사 등이 되거나 되려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1996년까지 한강의 기적일때는 대학생들이 안정적이어서 수입이 적은 공무원과 교사가 되는 것은 꺼렸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는 대학생시절 열나게 놀다가 대기업을 골라서 취업하는 일이 매우 흔했다고 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이러한 혜택에서 소외된 세대인 게 억울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학교급식의 혜택을 못누린 세대여서 억울합니다=====
학교급식은 학교급식법에 의하여 집행되는 데 이 법률은 1981년에 제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화고 학교급식은 1998년부터 시작되어 학교급식법 제정후 17년이 지나서야 집행되던 것입니다. 모든 행정은 예외없이 법에서 규정한 사항에 의하여 집행됩니다.
따라서 학교급식은 1981년부터 학교급식법에 의하여 행정으로 집행되어야 했는 데 17년간 그러지 않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용자:Bestgod1978은 학창시절에 학교급식법이라는 법에서 규정한 복지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1985년 3월 ~ 1997년까지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이 기간동안 1끼의 학교급식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학교급식은 사용자:Bestgod1978이 고등학교졸업한지 1년이 지난 199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학교급식은 학교급식법에 의하여 집행됩니다.
학교급식법은 1981년에 제정되었는 데도 불구하고 학교급식은 1998년부터 시작되어 학교급식법 제정후 17년이 동안 집행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교육부서의 17년동안 직무유기를 하던 것입니다.
따라서 학교급식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피해자 사용자:Bestgod1978은 교육장관들을 상대로 민사소송 및 형사소송을 진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소멸시효(불법행위) 10년 및 공소시효(직무유기죄) 3년이 지나서 불가능합니다.
만약 사용자:Bestgod1978이 이 사실을 알기 전에 법공부를 해서 법을 알았다면 당장 소송진행하였을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안타깝습니다.
==사용자:Bestgod의 철학입니다==
===사용자:Bestgod의 철학에 대한 개관입니다===
사용자:Bestgod는 종교학자로서 자연재해 및 질병의 종교의 연관성을 분석하여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이 자연재해의 발생률 및 질병의 발병률과 관련해서 사용자:Bestgod는 종교학자로서 神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왜 종교학자 사용자:Bestgod가 취득한 철학박사학위를 통하여 해당 사항들을 살펴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종교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종교관에 대한 개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는 종교학을 전공한 종교학자이지만 막상 종교는 없고 불가지론자입니다.
그렇다고 사용자:Bestgod1978는 무신론자가 아니고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어서 믿지 않는 불가지론자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사용자:Bestgod1978의 종교관과 관련해서 과학관도 확실하게 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과학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믿는 과학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과학에 의하여 증명되는 사실만 믿습니다.
 
 
''' *지구학'''
 
고기압와 저기압이 충돌하면 장마전선이 발생하여 비가 내립니다.
 
 
'''*의학'''
 
남극과 같이 기온이 지극히 낮은 지역에서는 감기균이 번식하지 못하여 감기가 발병하지 않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만 믿는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믿지 않는 과학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과학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은 사실은 믿지 않습니다.
 
'''*외계인'''
 
'''실제로 존재하는 지 증명할수 없습니다.
 
'''*사후세계'''
 
사람이 죽은 후 어느 세계로 가는 지 증명할수 없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외계인, 사후세계와 같이 현재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도 않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불가지론자입니다====
=====따라서 사용자:Bestgod1978은 神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여 불가지론자입니다=====
神의 존재도 외계인, 사후세계와 마찬가지로 증명이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神'''
 
神이 인간을 창조하였는 지 인간이 神을 만들어냈는 지 증명할수 없습니다.
 
 
종교는 이러한 神을 숭배하는 데 증명이 불가능한 神을 믿지 않아 불가지론자인 것입니다.
=====배우의 직업생존여부는 연출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은 영화나 드라마 등의 출연을 해야 일이 있는 직업이어서 해당 출연이 없으면 그게 실직이고 정년입니다.
따라서 배우는 호황과 불황에 무관하게 영화, 드라마, 광고에 출연하지 못하면 그게 실직이고 정년인 것이다.
연출자 = 神, 연기자 = 사람으로 비유되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출자보다 연기자의 인지도가 훨씬 크지만 영화사의 영화감독, 방송사의 PD등 소속이 확실하고 해당 업무인 연출을 계속할수 있는 연출자의 직업적 안정성이 훨씬 좋습니다.
반면 연기자는 영화나 드라마의 배역으로 캐스팅이 안되면 실업자로 계속 지내야 합니다.
이 캐스팅은 영화감독, PD 등 연출자들이 하므로 연기자들의 생계유지는 연출자들의 결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연출자들은 존재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神과 같은 데 신화속의 神들처럼 총감독, 조명, 분장 등 여러 역할들이 있는 것입니다.
연기자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중요도에 따라 주연, 조연, 단역, 보조출연 및 우정출연, 특별출연으로 배역이 분류되는 데 인간세계에서 각 부문별 인간들의 비중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1970년대 당시 한 하이틴스타는 방송사 PD와 결혼하였는 데 배우자의 배경이 좋아서 인지 결혼 후 배우자가 PD로 재직하는 방송사의 드라마 출연작이 유달리 많은 편입니다.
종교학자 사용자:Bestgod1978은 이처럼 神(연출자)과 사람(연기자)의 관계를 연구하여 과학화하고자 합니다.
===자연재해 및 질병에 대한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입니다===
====자연재해와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입니다====
=====자연재해와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에 대한 개관입니다=====
자연재해는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큰 재앙중 하나입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배수시설의 확충으로 빗물이 빠져나가게 하는 식으로 홍수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 가능한 등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를 줄일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진의 예측이 가능해도 지진의 발생을 막을수는 없는 등 아직 상당수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재해가 악행을 자행한 적이 많은 나라에 대거 발생하게 하면 그 나라에게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일수 있지만 이 나라들에게 대거 발생하지 않고 악행을 자행적이 없는 나라에 발생하는 일이 많아 神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은 것입니다.
영국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과 약탈을 하여 선진국이 된 나라인데도 영국에서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적이 없는 반면 아이티는 외국을 침략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온 나라인데도 지진과 허리케인에 시달리는 일이 많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영국과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많은 나라에 자연재해가 대거 발생하게 해서 벌을 주고 아이티와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없는 나라에는 자연재해발생하지 않게 해서 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자연재해가 대거 발생해야 할 지역입니다=====
서유럽에는 열대저기압이 없고 지진도 잦지 않은 등 다른 지역보다 자연재해의 발생률이 낮은 편입니다.
서유럽국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를 상대로 약탈(특히 노예무역)을 하여 악행으로서 선진국이 된 국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서유럽국가들에 대규모 열대저기압이나 지진 등이 일어나게 해서 해당 죄값을 치르도록 해야 神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입니다.
영국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과 약탈을 하여 선진국이 된 나라인데도 영국에서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적이 없습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국가들과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많은 나라에 자연재해가 대거 발생하게 해서 벌을 주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아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것입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자연재해가 대거 발생하지 말아야 할 지역입니다=====
서인도제도에는 지진과 허리케인이 잦은 등 다른 지역보다 자연재해의 발생률이 낮은 편입니다.
서인도제도의 국가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로 구성된 국가들이 대부분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아이티입니다.
아이티는 인구의 대부분이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노예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아이티는 노예무역으로 팔려온 노예들이 건설한 피해자들로 구성된 나라인데도 2010년에 대지진의 피해를 당한 것을 보면 神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은 것입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아이티와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없는 나라에는 지진발생하지 않게 해서 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자연재해 및 아이티의 자연재해와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입니다====
=====영국의 자연재해 및 아이티의 자연재해와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에 대한 개관입니다=====
영국은 세계 각지를 상대로 약탈을 해서 부유해진 죄악의 나라이고 아이티는 서아프리카 각지에서 팔려온 흑인노예들로 구성된 순수한 피해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본토에서는 자연재해의 피해가 적고 후자의 본토에서는 자연재해(특히 지진과 허리케인)의 피해가 큰 것은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의 국민들만 하여도 자연재해의 피해에서 살아난 빈도가 정 반대여서 해당 사실이 입증됩니다.
=====쓰나미 및 지진에서 모두 살아남은 영국 여성과 관련해서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이유입니다=====
쓰나미([[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와 지진([[2015년 네팔 지진]]) 당시 이 지역들을 여행하다가 변을 당할뻔 하였으나([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464257 네팔 대지진·태국 쓰나미에서 모두 살아남은 여성]) 모두 살아남은 조 나쉬라는 영국인이 있습니다.
神의 존재가 증명이 된다면 이 영국인은 큰 고통속에서 죽어서 자국의 죄값을 치르어야 되었습니다.
영국은 세계 각지를 침략하여 노예무역 등으로 부강해진 죄악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이러한 쓰나미나 지진이 발생해서 영국이 큰 피해를 보아야 영국이 저질러온 죄악에 대한 죄값을 치르는 데 그런 적이 없어서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것입니다.
죄악이 많은 나라 영국의 국민이 쓰나미([[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와 지진([[2015년 네팔 지진]])에서 모두 살아남은 것은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이 자연재해가 발생하던 지역은 과거에 영국이 침략하고 괴롭히던 것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아이티 대통령궁 붕괴와 관련해서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이유입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아이티 대통령궁도 지진으로 붕괴되어서 개발도상국 아이티는 초토화되었습니다.
대통령궁도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앞에서는 어쩔수 없이 붕괴되던 것입니다.
神의 존재가 증명이 된다면 아이티에는 그러한 대지진이 발생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아이티는 아프리카 각지에서 팔려온 흑인노예들의 자손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역사상 최대 범죄피해국 아이티가 대지진으로 까지 이러한 대지진이 발생하여 대피해를 본 것은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것입니다.
===질병 및 코로나 19와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입니다===
====질병과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입니다====
=====질병과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에 대한 개관입니다=====
질병은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큰 재앙중 하나입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내장을 드러내는 수술을 하여 암세포를 도려내는 식 암치료를 하는 것이 가능한 등 질병에 대한 피해를 줄일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암은 완전하게 정복된 질병이 아니고 코로나19와 같은 신종질병이 계속 발병하는 등 아직 상당수 질병은 불가항력입니다.
그런데 이 질병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많은 나라에 대거 발병하게 하면 그 나라에게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일수 있지만 이 나라들에게 대거 발병하지 않고 악행을 자행적이 없는 나라에 발병하는 일이 많아 神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은 것입니다.
프랑스는 주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과 약탈을 하여 선진국이 된 나라인데도 그 시대 이후 프랑스에서 대규모 질병이 발병한 적이 없는 반면 시에라리온은 외국을 침략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온 나라인데도 질병에 시달리는 일이 많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프랑스와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많은 나라에 질병이 대거 발병하게 해서 벌을 주고 시에라리온과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없는 나라에는 질병이 대거 발병하지 않게 해서 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질병이 대거 발생해야 할 지역입니다=====
서유럽에는 다른 지역보다 질병의 발병률이 낮은 편입니다.
서유럽국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를 상대로 약탈(특히 노예무역)을 하여 악행으로서 선진국이 된 국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서유럽국가들에 대규모 질병이 발병하게 해서 해당 죄값을 치르도록 해야 神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주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과 약탈을 하여 선진국이 된 나라인데도 이후에 프랑스에서 대규모 질병이 발병한 적이 없습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국가들과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많은 나라에 그 이후 질병이 대거 발병하게 해서 벌을 주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아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것입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질병이 대거 발생하지 말아야 할 지역입니다=====
서아프리카에는 각종 열대병발병률이 높은 등 다른 지역보다 질병의 발병률이 높은 편입니다.
서아프리카는 아메리카에 노예로 팔려간 사람이 많아 인구감소로 살기 힘든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시에라리온인데 과거에 상당수 인구가 노예무역으로 팔려간 노예무역의 피해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12월 ~ 2016년 1월 14일까지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의 최대 피해를 당한 것을 보면 神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은 것입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시에라리온과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없는 나라에는 그러한 질병이 대발병하지 않게 해서 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입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질병과 관련해서 神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Bestgod1978의 철학에 대한 개관입니다=====
코로나19는 2019년 12월에 중국 허베이성 우한시에서 발병하여 2020년 1월에 세계 각지로 전파된 신종질병입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수천년동안 세계 각지에서 유행하던 천연두, 흑사병 등 각종 질병이 정복되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병균이 진화하면서 1981년에 에이즈, 2003년 사스, 2009년에 신종플루, 2015년에 메르스, 2020년에 코로나19 등 신종질병이 계속 발병하는 추세입니다.
역시 神이 존재한다면 프랑스와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많은 나라에 코로나 19와 같은 신종질병이 대거 발병하게 해서 벌을 주고 시에라리온과 같이 악행을 자행한 적이 없는 나라에는 신종질병이 대거 발병하지 않게 해서 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19유행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가 프랑스에서는 많이 발생하고 시에라리온에서는 적게 발생하였습니다.
노예무역이라는 악행과 관련하여 神이 존재하는 지 중국, 우리나라, 서유럽, 흑아프리카와 관련하여 살펴봅니다.
=====神이 존재해서 코로나19가 대거 발병하는 지역에 대한 의문입니다=====
'''중국'''은 神이 존재해서 코로나19가 대거 발병하는지 의문인 지역입니다.
중국이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노예무역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신종질병으로 발병하여 대유행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神의 존재를 믿을수가 없습니다.
=====神이 존재해서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가 대거 발병하는 지 의문입니다=====
'''우리나라'''는 神이 존재해서 코로나19가 대거 발병하는 지 의문인 지역입니다.
우리나라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노예무역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神의 존재를 믿을수가 없습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코로나19가 대거 발병해야 할 지역에 대한 의문입니다=====
'''서유럽'''은 神이 존재한다면 코로나19가 대거 발병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서유럽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과 약탈을 하여 선진국이 된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에 따른 神의 징벌이 따르듯 영국, 스페인 등 노예무역을 대거 하던 해당 국가들에서 코로나19 발병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러한 악행을 안한 국가인데도 코로나19 발병률이 높습니다.
이것을 보면 神의 존재를 믿을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영국 선적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코로나19확진자들이 많이 발병하였지만 상당수는 영국국적자가 아닙니다.
神이 존재한다면 영국 선적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발병한 코로나19확진자들 대부분이 영국국적자 그것도 대대로 영국에서 살아온 앵글로색슨계 백인이어야 합니다.
=====神이 존재해서 코로나19가 발병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의문입니다=====
'''흑아프리카'''는 神이 존재해서 코로나19가 발병하지 않아야 의문인 지역입니다.
흑아프리카는 대부분 지역들이 중동과 유럽이 노예무역과 약탈을 하여 후진국이 된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공료곱게도 흑아프리카에서는 코로나19확진자가 있지만 적고 대부분 이탈리아 등 코로나19확진지역여행자들입니다.
이것을 보면 神의 존재를 믿을수가 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결혼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결혼에 대한 견해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결혼계획이 없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결혼과 관련해서 첫 세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대한민국에서 비혼 및 비출산의 첫 세대인 1978년생으로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결혼계획이 없지만 결혼에 대한 결혼관은 있습니다.
따라서 원하는 배우자의 유형과 원하지 않는 배우자의 유형은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결혼하는 것은 물론 사랑에 빠질 계획조차 없다'''가 사용자:Bestgod1978의 결혼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추후 사랑에 빠질 계획조차 없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7포세대의 원조세대이지만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원하는 공부하기 바빠서 그동안 제대로 연애조차 못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굳이 결혼하는 것은 물론 사랑에 빠질 필요성조차 못 느낍니다.
이유는 간단해서 '''사랑에 못 빠지거나 장가못간다고 살기 어렵지 않아서'''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자녀 2명이상 낳으면 양육비 문제로 기르기 어려운 시대에 굳이 자녀낳아서 고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이 반대였다면 결혼관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이 반대였어도 결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시 그때도 결혼은커녕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을 텐데 출세여부와 무관합니다.
특히 사용자:Bestgod1978이 성별이 바뀌어 잘 나간다면'''전문직 여자가 사랑에 빠져서 시집가면 자녀양육에 시달려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해서''' 입니다.
결혼 후에도 전문직은 계속 하고 싶은 데 자녀를 낳으면 자녀양육에 시달려서 전문직을 못하할지 모르는 데 굳이 자녀낳아서 고생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이 반대였다면 이해불능이었을 유부녀들입니다=====
결혼 후 여고동창회에 다녀와서 여고동창생 누구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60평 짜리 집에 산다”, “벤츠몰고 다닌다”, “남편 1년치 연봉이 10억원이란다”고 푸념하는 식입니다.
해당자들과 실제로 성별이 반대인 입장에서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게 그렇게 수입이 적은 남자를 자신과 함께 살 남자로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결혼후에 남편한데 그러한 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오히려 그러한 불만은 여고생 시절 아버지에게 우리반 누구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60평 짜리 집에 산다”, “벤츠몰고 다닌다”, “아버지 1년치 연봉이 10억원이란다”고 푸념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선택사항이 아니지만 남편은 선택사항이어서입니다.
따라서 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이 바뀌었다면 많은 재산은 물론 권력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원하고 성별이 반대이면 원하는 배우자의 유형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원하는 배우자의 유형입니다====
=====원래 사용자::Bestgod1978은 돈많은 부모를 둔 여자가 이상형은 아니었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돈이 많거나 그러한 부모를 둔 여자가 이상형이 아니라 내가 돈많이 버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이익이 되므로 나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사용자:Bestgod1978은 교수라는 직접 이재(理財)를 창출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므로 돈많이 버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1944년생 고려대학교를 졸업 후 통역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사용자:Bestgod1978의 아버지 친구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영어실력이 매우 탁월한데도 불구하고 그 경력을 살려서 돈많이 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돈많은 여자와 결혼하여 처가 덕을 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녀는 1970년대 중반 출생자인 아들만 셋인데 모두들 학벌이 아버지보다 훨씬 못하고 병역도 아버지와 달리 평범하게 마쳤습니다.
이들은 먼저 특별한 능력이 없고 20대 시절 IMF사태로 불황이 시작되고 갑부인 부모를 두지 못하였습니다.
모두들 결혼하였는 데 배우자, 장인, 장모들이 모두 갑부가 아니어서 결혼 후 호강하지도 못합니다.
결혼 후 신혼살림도 동탄시에 두었는 데 직장문제 등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 동네로 밀려가서 사는 것입니다.
돈많은 배우자, 장인, 장모라도 있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마지막 필수 있는 팔자는 자녀덕을 보는 것인데 미지수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돈많은 부모를 둔 여자가 이상형입니다=====
특히 사용자:Bestgod1978은 최소한 중견기업의 대주주 장인이나 장모를 둔 여자와 결혼하는 게 이익이다.
장인이나 장모가 최소한 중견기업의 대주주여서 수입이 많은 장인이나 장모를 둔 여자와 결혼하는 게 최대의 이익입니다.
이러한 여자들과 결혼 후 장인이나 장모가 대주주인 회사에 입사 및 그 회사의 주주가 되어 사장이 되어 팔자가 필수 있습니다.
장인이나 장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분들의 지분도 상속받아서 대주주가 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러한 여자와 결혼하여 대주주가 되는 게 이익입니다.
실제로 사용자:Bestgod1978의 대학생시절 조교와 군복무시절 선임병의 아버지가 돈많은 부모를 둔 여자와 결혼해서 팔자가 피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배우자복이 좋은 데 그러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였습니다.
전자는 식품업을 하고 후자는 제약업을 하는 데서 차이가 있는 데 모두 유통기한이 있는 상품을 제조 및 판매하는 데서 같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능력이 없는 데 결혼을 잘 하여 사장님이 돼서 잘살게 된 것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아는 돈많은 부모를 둔 여자와 결혼해서 팔자가 핀 남자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아는 돈많은 부모를 둔 여자와 결혼해서 팔자가 핀 대학생시절 조교입니다=====
1964년 출생자로서 1988년 당시 결혼하였는 데 처가가 갑부여서 처가에서 대준 비용으로 규모가 큰 한정식갈비집사장님이 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이 아는 돈많은 부모를 둔 여자와 결혼해서 팔자가 핀 군복무시절 선임병의 아버지입니다=====
1944년 출생자로서 1974년 당시 결혼하였는 데 장인이 인수한 제약회사의 사장이자 주주가 됩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이 반대이면 원하는 배우자의 유형입니다====
=====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이 반대여도 돈많은 부모를 둔 남자가 이상형입니다 =====
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이 반대일때 돈많은 부모를 둔 남자가 이상형이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도 역시 아버지나 어머니가 부나 권력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게 이익입니다.
특히 아버지나 어머니가 대주주 겸 국회의원 등 부와 권력을 함께 가진 남자와 결혼하면 더욱 이익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 결혼 후 맞벌이안하고 편하게 육아하면서 돈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한 것은 실컷 즐기면서 잘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때는 시아버지가 갑부인 게 최고입니다=====
이때는 시아버지나 시아버지가 대기업 주주만 되어도 이익인데 물론 국회의원도 겸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렇게 되면 억만장자의 며느리이자 세습억만장자의 아내로서 행복한 삶을 하게 됩니다.
대다수 처녀들이 결혼과 동시에 원하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아나운서가 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사용자:Bestgod1978은 성별에 무관하게 아나운서는 얼굴 팔리면서 연예인만큼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직업이어서 되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여자라면 재벌가 집안의 아들이나 손자와 결혼하기 쉬우면서 정계진출하는 데도 유리한 직업이어서 해볼만 합니다.
만약사용자:Bestgod1978의 성별이 반대인데 미스코리아에 당선되어 여성으로서 미(美)가 돋보이는 가운데 아나운서가 되어 재벌가 집안의 아들이나 손자와 결혼하여 부를 쌓고 해당 아나운서경력을 살려서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권력도 가집니다.
 
== 종교학의 종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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