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페로 콜론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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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군사 지휘관으로서 첫 주목할만 행위는 1484년에 경쟁 가문인 [[오르시니가|오르시니]]와 [[리아리오 가]]의 공격으로부터 [[팔리아노]]에 있는 그들 가문의 성을 방어해낸 것이였다. 몇몇 다른 전투의 공적을 얻은 후, 추기경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의 세력에 가담했던 프로스페로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에 의해 [[산탄젤로성]]에 투옥되었다. 한 차례 풀려난 그는 프랑스의 국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 기간에 그에게 충성을 맹세를 했다는 이유로 다시 투옥되었다. 결국에는 1495년에 프로스페로와 파브리치오 콜론나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의 왕은 교황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로마에 입성했다.
 
[[나폴리 왕국]]에 프랑스가 잠깐의 통치을통치를 하던 동안에 프로스페로는 [[트라에토]] 공작령과 [[포를리]] 백작령을 획득했다. 하지만 샤를이 알프스 너머로 돌아가자, 프로스페로는 나폴리에서 프랑스 부왕을 쫒아내는데 [[페르디난도 2세 디 나폴리|나폴리의 페르디난도 2세]]를 도왔다.
 
상황은 새롭게 왕위에 오른 [[루이 12세]]의 침공으로 다시 바뀌었다. 나폴리왕 [[페데리코 1세 디 나폴리|나폴리의 페데리코 1세]]가 [[이스키아 섬]]으로 달아나는 동안에 프로스페로와 파브리치오는 왕국을 지키려했다. 그들은 패배를 했고 나폴리의 [[누오보성]]에 투옥되었다. 그들은 또한 라치오에 있는 그들의 성들을 차지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에게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마침내 보석금이 지불되어, 두 친척 형제는 나폴리 부왕인 스페인의 장군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의 휘하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