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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김용은 홍콩에서 《명보》를 창간하였고 뒤이어 《명보만보》(석간), 《명보월간》, 《명보주간》을 창간하였다. 아울러 명보출간사 등의 출판사도 운영하였다. 1991년 1월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명보기업유한공사가 되었고 그해 3월 [[홍콩교역소|홍콩 증권시장]]에 상장하였다. 명보 그룹의 1991년 이익은 일억 위안에 달했다.<ref>[http://www.people.com.cn/GB/14677/22114/26470/26501/1751602.html 金庸和他的《明报》] {{Wayback|url=http://www.people.com.cn/GB/14677/22114/26470/26501/1751602.html |date=20100710140235 }}人民网>>传媒>传媒专题与特别策划>百年报人传奇历史>学者文人 2003年03月17日</ref>。
 
김용은 20여년간 《명보》의 사설도 집필하여 "왼손엔 사설 오른손엔 소설" 생활을 하였다. 1960년대 [[중소 분쟁]]이 일어나자 중국이 안전 보장을 위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보냈고 중국공산당의 핵무장 정책에 반대하는 《대공보》 등을 영국, 미국을 숭상하고 중국에 반한다고 몰아세웠다.<ref name=jyz /> 그러나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고 그 때문에 김용의 책들은 중국 본토 내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ref>{{cite web |url=http://book.ifeng.com/psl/dzsp/200810/1024_3553_845207.shtml |title=40年《明报月刊》:文革间的独立声音_读书_凤凰网 |publisher=Book.ifeng.com |date= |accessdate=2018-10-30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3612/http://book.ifeng.com/psl/dzsp/200810/1024_3553_845207.shtml |archive-date=2016-03-04 |dead-url=no }}</ref>
 
21세기의 《명보》는 [[민주파]] 지지 성향의 언론 매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2014년 [[우산혁명]] 당시 전 편집장이 괴한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다.<ref>[https://www.yna.co.kr/view/AKR20140312196200074 홍콩 명보 前편집장 피습사건 용의자 9명 체포돼], 연합뉴스, 2014년 3월 12일</ref>
 
=== 정치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