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회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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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등 기독교 지도자들은 일제 강점기 강제적으로 행해지던 신사 참배, 창시 개명 등을 거부하며 일제의 모진 핍박을 당했고 성서조선사건으로 세계 최악의 고문이 자행되던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교신등김교신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일제 강점기 강제적으로 행해지던 신사 참배, 창시 개명 등을 거부하며 일제의 모진 핍박을 당했고 성서조선사건으로 세계 최악의 고문이 자행되던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후 김교신등 기독교 지도자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신사 참배등 성서에 위배되는 일제의 명령을 교인들을 선동해 지키게 한 행동을 비난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기독교 교계 관계자들은 김교신등을 무교회주의 이단자라고 맞비난하며 이단으로 몰고 갔다.
 
 
해방후 김교신등일제에 항거해 성서만을 지킨다는 김교신과 노선을 같이 했던 기독교 지도자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신사 참배등 성서에 위배되는 일제의 명령을 교인들을 선동해 지키게 한 행동을 비난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기독교 교계 관계자들은 김교신등을 무교회주의 이단자라고 맞비난하며 이단으로 몰고 갔다.
김교신, 유달영등은 평생 자신의 입으로 한번도 자신을 무교회주의자라고 밝힌 적이 없었다. 무교회주의자라는 이름은 이들에게 비난 받던 친일 기독교 지도자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무교회주의자를 선택한 적이 없지만 무교회주의자로 낙인 찍혔다.
 
 
 
 
김교신, 유달영등은 평생 자신의 입으로 한번도 자신을 무교회주의자라고 밝힌 적이 없었다. 무교회주의자라는 이름은 이들에게 비난 받던 친일 기독교 지도자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무교회주의자를무교회주의자라 선택한말한 적이 없지만 무교회주의자로 낙인 찍혔다. 김교신은 1945년 세상을 떠났고 사후에 무교회주의자라고 불리게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