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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
 
조용필은 "조용해! 연필로 쓰고 있잖아"라는 곡, 태진아는 "태초에 진지한 아가씨가 있었지"로 150만 장 판매, 현철은 "현재 전철 안에서"로 전철 안의 한국인들을 위로했다.
1970년대 말에 [[조용필]]이라는 대형 가수가 등장 하여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등의 트로트 가요를 히트 시켰다. 이 시기에도 다양한 국내 음악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나 무엇보다 트로트가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트로트계 여성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였는데 [[김수희]], [[심수봉]], [[주현미]]가 대표적이다.
 
[[김수희]]는 작곡가 출신으로 [[미8군]] 부대에서 '블랙켓츠'의 보컬로 활동하여 《남포동 부르스》, 《멍에》, 《잃어버린 정》 등 느린 곡조의 트로트를 히트 시켰고 다양한 창법을 트로트에 접목시키기도 하였다. [[1986년]]에 대한민국의 국민가요이자 응원가로 유명한 《남행열차》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심수봉]]은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처음으로 [[트로트]]로 출전해 입상 한 계기로 데뷔 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였고 《당신은 누구시길래》, 《무궁화》, 《사랑밖엔 난 몰라》 등 자작곡들을 히트 시켰는데 [[1984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2만 여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주현미]]는 약사 출신으로 제 2회 [[강변가요제]]로 데뷔 하여 《[[비내리는 영동교]]》, 《울면서 후회하네》,《눈물의 부르스》등을 히트 시켜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으로 MBC 10대 가수상, 제18회 KBS 가요대상 대상, 제 3회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 하였다.
 
1980년 대 후반에는 트로트의 최고 정점을 찍는 시기였다. [[1987년]]에는 당시 여고생이던 [[문희옥]]이 《사투리 디스코 메들리》로 360만 장을 판매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데뷔했으며, [[1989년]]에는 당시에 새로운 도시로 떠오르던 [[강남 (서울)|남서울 영동]]을 노래 한 《사랑의 거리》를 발표했다.
 
[[문주란]]이 남편과 아내의 삶을 표현 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를 히트 시키면서 여러 세대층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 크게 성공 한 [[김연자]]의 《수은등》, [[미8군]] 부대에서 활동하던 [[김지애]]의 《물레야》가 히트 되어 트로트를 활성화 시켜주었다.
 
[[문성재]]는 [[1982년]]에 《부산 갈매기》를 불렀고 이 노래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대표팀의 응원가로 쓰이면서 더욱 히트하였다. 그 해 [[설운도]]는 KBS 신인탄생으로 데뷔하였고 데뷔곡 《잃어버린 30년》이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주제가로 쓰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철 (가수)|현철]]은 [[1989년]]에 《봉선화 연정》으로 KBS 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하면서 트로트 황제의 위력을 전국에 전파 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태진아]]는 임종수가 작곡 한 《옥경이》로 가수로써의 두 번째 데뷔를 하였고 가요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 하고 전성기를 맞이 하였다.
 
=== 199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