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친일파 언급이 없으니 친일파 아니다(X), 친일파 분류에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았으니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는다(O) 전혀 다릅니다. 2.위키백과에선 사실뿐 아니라 "개념"에 대한 독자연구도 금지. 그러나 현재 문서엔 "친일"개념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 표준국어대사전이란 역사학계와 국어학계를 대표하는 자료가 증거로 제시되어있습니다. 즉 "개념"에 대한 학계설을 인용하였습니다. "개념"에 대한 서술을 삭제하려면 개념의 다수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3. 옥관빈이 중국에서 한간(매국노)이 아닌 애국자로 평가받는다는 증거가 인용되어 있음. 중국학계 평가는 독자연구가 아닙니다. 중국측 평가를 지워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4.현재 문서는 옥관빈의 친일여부가 '존재하지않음'(X) '증거없음', '분류되지 않음'이 다수학계를 증거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증거없음'과 '분류되지 않음'을 서술했으니 '존재하지 않음'을 서술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Argument from ignorance)
태그: 되돌려진 기여 시각 편집
태그: 되돌려진 기여 시각 편집: 전환됨
389번째 줄:
 
 
옥관빈의 암살범을 찾으려는 옥성빈도 암살됐다. 역사학자가 아닌 언론인인 손세일은 옥성빈도 친일파라 주장하였다. <ref>{{웹 인용|url=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609100025|제목=蔣介石과 面談하고 洛陽軍官학교에 韓人특별반 설치|성=손세일|이름=|날짜=|웹사이트=조선일보|출판사=|확인날짜=2020년 11월 24일}}</ref> 그러나 백범일지에는 옥성빈 친일파설이나 밀정설이 주장되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ref name=":442" /> 대한민국 대통령에 의해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대통령 소속으로서 위원장 1명, 상임위원 1명, 위원 9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되었는데<ref name=":452"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규명결과에서 옥성빈이 예비에서 제외되었다.<ref name=":462" />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연구자 150여 명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하고, 180여 명의 집필위원, 문헌자료 담당 연구자 80여 명이 관여하여 총 3천여종의 일제강점기 원사료와 데이터베이스 450여 종 등 기초자료를 활용하여 인물 정보를 구축한 친일인명사전<ref name=":472" />은 2001년 7월 20일에 1차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2009년 9월 2일까지 8년동안 회의를 하였다.<ref name=":48" /> 편찬결과물에 옥성빈이 제외되었다.<ref name=":49" /> 친일파란 증거가 없으므로 예비후보에도 제외되었다.<ref name=":50" /> 최종출판물에서 제외된 케이스가 아닌 예비 후보에서부터 제외된 케이스다. 대한민국 정부의 보고서와 전문연구자 150여명이 참여한 조사와 진상규명결과에 의해의하면 옥성빈 친일파설이나 밀정설은 객관적 증거가 없고 기준에 부합하지 않음라않으며 결론이친일파로 나왔다분류되지 않는다.
 
==== 임시정부 이동시기 (1932~19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