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R. 하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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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미 군정청 링크를 한반도에 행정구역으로 재연결하여 보완함.
→‎기타: 누가 미군 군정청장의 관점을 잘못이라고 지적했는지 각주가 빠진 부분에 출처 필요 표시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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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는 [[조선총독부]]를 인정하였다. 그는 남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좌익 폭동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다고 보고, 이것을 막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려면 당분간 [[조선총독부]]의 기관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기도 하였던 것이다.<ref name=autogenerated1 />
* 그는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을 승인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역시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공 내각]]의 배제를 위해 고의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정부 명칭을 쓰는 것을 묵과하였다. 한편 하지는 도착 직후 한 연설에서 "일본 주둔 미군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 째는 다이어-리아(설사), 두 번째는 고오너-리아(임질), 그리고 마지막은 코-리아(한국)이다"라고 발언했다.<ref>강준만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 (인물과사상사, 2006) 76페이지</ref> 그는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들쥐나 고양이 같다, [[일본]]인과 비슷하다는 주변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 하지는 1945년 10월 2일 상오 10시 군정청 출입기자와 가진 정례회견에서 임시정부의 환국에 대한 군정청의 견해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그들에 대한 태도는 연합군측의 협의결정에 의해 결정되리라고 생각한다. 해외에 있는 임시정부가 돌아올 시기라든지 그에 대한 태도는 나자신 알 수 없으며 역시 연합국정부의 결정에 의할 뿐이다."<ref>[[매일신보]] 1945년 10월 2일자</ref> 하지의 이 같은 막연한 대답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의 점령정책의 빈곤이 근본원인이기는 하지만 하지로서도 임시정부환국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하지는 임시정부 자체에 대해 몹시 나쁜 편견을 갖고 있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12000329204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1-20&officeId=00032&pageNo=4&printNo=9020&publishType=00020|제목=秘錄 韓國外交<4> : 건국前夜③ |출판사= [[경향신문]] | 날짜 = 1975-01-20 |쪽=5}}</ref> {{출처|날짜=2020-12-13|그는 임시정부의 항일투사들의 일본인에 대한 테러행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교섭을 벌이던 [[이승만]]은 측근들에게 "하지가 임정을 불한당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ref>윤석오의 증언.</ref>
* 미군정 사령장관 재직 시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하여 [[이승만]], [[김구]], [[박헌영]] 등과 수시로 갈등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미 5군단장으로 있다 미3군사령관으로 재직했으며
* 하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반 이승만이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몰아세우자(1947년 1월 25일)굿펠로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승만을 "그 늙은 개자식(the old S.O.B)"으로 묘사하였다.<ref>정병준, 《우남 이승만 연구》 (역사비평사, 2005) 649페이지</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