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2세 (나폴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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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생애 ==
나폴리에서 [[페르디난도 1세 디 나폴리|페르디난도 1세]]와 그의 첫째부인 [[이사벨라 디 타란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알폰소의 어머니는 [[코페르티노]] 백작 [[트리스탕 드 클레르몽]]과 [[카테리나 디 타란토|카테리나 델 발초 오르시니]]의 딸이다. 알폰소는 [[아라곤 연합왕국]]의 왕이자 통일 [[에스파냐 왕국]]의 첫 공동 통치자인 [[페르난도 2세 (아라곤)|페르난도 2세]]의 친척이기도 하다. 그의 교사는 왕위 후계자가 되기 위한 적절한 미덕과 삶의 태도를 묘사한 ''De splendore''를 쓴 [[조반니 폰타노]]이다.
 
인문주의자였던 [[조반니 폰타노]]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폰타노는 1495년에 알폰소 2세가 퇴위할때 까지 개인 비서로 일했다.<ref>Webb, Nicholas (1997). "Giovanni Pontano". In Kraye, Jill (ed.). Cambridge Translations of Renaissance Philosophical Texts. 2.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69-87.</ref>
어머니가 사망하자(1465년), 예루살렘 왕국에 대한 [[브리엔 백국|브리엔 백작]]의 소유권을 포함한 어머니의 영지 권리를 계승하였다. 알폰소가 15세인 1463년에 그의 종조부 [[타란토 후국|타란토 후작]] [[조반니 안토니오 델 발초 오르시니]]가 사망하였고, 그는 계승권을 통해 약간의 영지를 획득했다. 알폰소는 아버지를 도와 남작들의 반란(1485년) 진압과 [[교황청]]을 상대로 한 나폴리 왕국의 수호등을 통해 군인으로서 능숙함과 단호함을 보여줬다. [[콘도티에로]](용병대장)로서 [[파치 음모사건|파치 음모 사건]](1478년) 이후 벌어진 피렌체와의 전쟁과 [[페라라 전쟁]](1482년–1484년)에 참여하였다.
 
어머니가 사망하자(1465년), 예루살렘 왕국에 대한 [[브리엔 백국|브리엔 백작]]의 소유권을 포함한 어머니의 영지 권리를 계승하였다. 알폰소가 15세인 1463년에 그의 종조부 [[타란토 후국|타란토 후작]] [[조반니 안토니오 델 발초 오르시니]]가 사망하였고, 그는 계승권을 통해 약간의 영지를 획득했다. 알폰소는 아버지를 도와 남작들의 반란(1485년) 진압과 [[교황청]]을 상대로 한 나폴리 왕국의 수호등을 통해 군인으로서 능숙함과 단호함을 보여줬다. [[콘도티에로]](용병대장)로서 [[파치 음모사건|파치 음모 사건]](1478년) 이후 벌어진 피렌체와의 전쟁과 [[페라라 전쟁]](1482년–1484년)에 참여하였다.
 
알폰소는 아버지를 도와 남작들의 반란(1485년) 진압과 [[교황청]]을 상대로 한 나폴리 왕국의 수호등을 통해 군인으로서 능숙함과 단호함을 보여줬다. [[콘도티에로]](용병대장)로서 [[파치 음모사건|파치 음모 사건]](1478년) 이후 벌어진 피렌체와의 전쟁과 [[페라라 전쟁]](1482년–1484년)에 참여하였다.
 
== 통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