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종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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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은 [[912년]] [[나주]] 흥룡동(興龍洞)에서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의 아들로 태어났다.<ref name="noju">{{웹 인용 |url=http://www.najuculture.or.kr/docu/html/menu300/sub03_1.asp# |제목=태조 왕건의 뒤를 이은 혜종(912~945) |확인날짜=2011-10-16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4005838/http://www.najuculture.or.kr/docu/html/menu300/sub03_1.asp# |보존날짜=2013-12-14 |url-status=dead }}</ref> 왕건은 아들의 이름을 무(武)라 정하였다. 왕건과 오씨가 만났다는 나주 완사천(浣紗泉) 연못은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고, 혜종이 태어난 마을은 후대에 가서 임금이 태어난 마을로 전하다가 왕을 상징하는 '용'(龍) 자를 써서 지명이 흥룡동(興龍洞)이 되었다.
왕건은 [[궁예]] 휘하에서 [[나주]]를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른 후 태자가 7세 때, 왕건은 그가 보위에 오를 덕이 있음을 알았으나 신하들의 반대가 있을 것을 걱정하여 상자에 자황포를 담아 [[장화왕후]]에게 보냈다. 왕후가 이를 대광 [[박술희]]에게 보여<ref name="noju"/>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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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년]] 광평시랑 [[한현규 (고려)|한현규]]와 예빈경 [[김염 (고려)|김염]]을 진(晋)나라에 보내어 왕위를 계승한 것을 알리고 [[거란족]]을 쳐부순 것을 하례하였다.
이복 동생 [[고려 정종 (3대)|왕요]]와 [[왕소]]가 왕위에 도전하고 있음을 눈치챈 [[왕규 (함규)|왕규]]는 945년(혜종 2) 이 사실을 알렸으나 혜종은 둘의 반발이
[[945년]] 후진에서 광록경 범광정과 태자선마 장계응을 파견, 그에게 지절 현도주도독 상주국충 태의군사 고려국왕(持節玄度主都督上柱國充太義軍使高麗國王)으로 책봉하는 교서를 내렸다. 그러나 그해 혜종을 지지하던 [[고려 태조|태조]]의 최측근 [[박술희]]가 왕요 일파에 의해 역모의 누명을 쓰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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