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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
픽트인과 관련한 기록은 매우 적은 편이다. 6세기 [[베다 베네라빌리스]]가 남긴 《[[잉글랜드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오랫동안 픽트인은 그 생활상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스런 부족으로 남아 있었다. 최근 [[유럽]] 각지의 [[유럽의 고대 후기|고대 말]]과 [[유럽의 중세 초기|중세 초]]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픽트인에 대해 보다 자세한 이해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 내 픽트인의 거주지는 대체로 [[포스 강]]과 [[클라이드 강 (스코틀랜드)|클라이드 강]] 이북 지역이었으며, 로마 시대 역사가들과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언급된 바 현재 스코틀랜드 지역의 켈트계 칼레도니아인들의 후손으로 추정되는데, 브리튼 켈트인들과는 적대하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브리튼인들이 앵글족과 색슨족에 원병을 청한 이유도 픽트인과 스코트인의 브리튼 원주민 압박의 배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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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트인은 [[철기 시대]]부터 영국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고대 말기에 픽트인이 몇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픽트인은 [[로마 제국]]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으며 그들의 주요 거점은 현재 스코트랜드 [[칼레도니아]]였다.<ref>Geary, Patrick J., Before France and Germany: The creat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Merovingian World. Oxford U.P., Oxford, 1988. 0-19-504457-6</ref> 픽트인의 역사의 시작 점이 정확히 어떤 시대인지 역사가들은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구분과 명칭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변형되어 정확한 판단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고대 후기]] 이전에는 픽트랜드 지역에 여러 픽트족 소국가들이 [[달 리아타]] 등 연합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암흑 시대]]라 불리던 [[유럽의 [[중세 초기]]에 이르러 픽트인에 대한 본격적인 기록이 이루어졌다. 이는 그 이전의 시기와 달리 스코틀랜드 북부에 강력한 권력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서부의 [[달 리아타]] 왕국은 7세기 경 [[앵글족]]의 왕국이었던 [[베르니시아]]의 속국이 되었는데, 베르니시아는 후일 [[노섬브리아 왕국]]으로 성장하여 당시 [[브리튼 섬]]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 된다.<ref>Higham, N. J., The Kingdom of Northumbria AD 350–1100. Sutton, Stroud, 1993. {{ISBN|0-86299-730-5}}</ref> 9세기에 [[바이킹]]의 침공으로 달 리아타는 멸망하였고, 바이킹의 왕 [[케틸 플레이트노우즈]]는 [[맨 섬]], [[아이슬란드]]와 더불어 달 리아타를 자신의 영토로 삼으며 [[아이슬의 군주]] 칭호를 사용하였다.
 
840년대 무렵 [[케네스 맥알핀]]이 바이킹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키고 후일 [[알바 왕국]]을 건립한다. 알바 왕국은 10세기경부터 주변의 픽트인 왕국을 정복하였으며 11세기 무렵 스코틀랜드 전역을 자신의 영토로 하게 되었다. 이로써 픽트인이라는 명칭은 바이킹이 영국에 들어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었고, 북부 픽트인은 스코트족에, 중부 픽트인은 앵글족에 완전히 동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