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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길 ===
기원전 10세기부터 문명 교류의 주통로로 사용되었던 길이며, [[유라시아]] 북방 [[초원]]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다.
서쪽의 끝인 [[카스피해]] 연안 혹은 [[발트해]] 남단으로부터 [[흑해]]의 동북편과 [[러시아|남러시아]]의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을 지나 [[카자흐스탄]]과 [[알타이 산맥]] 이남의 준가리아 분지를 지나 몽골 [[고비 사막]]의 북단 오르혼 강 연안으로 이어진다. 이후 동남향으로 바꾸어 중국의 화북지방에 그리고 이길을 연장하여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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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아시스길 ===
오아시스길이란 중앙아시아의 건조지대([[사막]])과 반사막에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동서로 뻗은 길을 일컫는다. 사막을 비롯한 건조 지대의 군데군데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고여서, 수목이 자라고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오아시스다곳이다. 오아시스는 사막인들의 생활의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상업|교역]]의 중심지로서 거기에서 문물이 집산되고 [[교통]]이 발달되어 왔다. 비단길 중에서 가장 심장부에 위치한 오아시스길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역사시대]] 전에는 초원로가 많이 이용되었으나 이후에는 오아시스길이 동서교류의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서아시아 지대에는 이미 상당히 발단된 교통로가 만들어졌으나, [[파미르 고원]]이 장애가 되어 완성되고 있지 못했다.
 
비단길 중에서 가장 심장부에 위치한 오아시스길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역사시대]] 전에는 초원로가 많이 이용되었으나 이후에는 오아시스길이 동서교류의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서아시아 지대에는 이미 상당히 발단된 교통로가 만들어졌으나, [[파미르 고원]]이 장애가 되어 완성되고 있지 못했다. 기원전 138~126년 [[전한]]의 [[장건]](張騫,~BC 114)이 사절단으로 파견됐을 때 [[파미르 고원]]을 지나 대월지에 이르는 오아시스길을 이용했다고 말한다. 또한 남, 북 두 길의 노정을 밝히고 그 길위에 있는 주요 국가들의 중심지와 [[장안]]과 안서도호부(간쑤성 둔황시) 그리고 인근 국가들 간의 방위와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남, 북 두 길의 노정을 밝히고 그 길위에 있는 주요 국가들의 중심지와 [[장안]]과 안서도호부(간쑤성 둔황시) 그리고 인근 국가들 간의 방위와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 바닷길 ===
전성기에 접어든 로마제국이 남해로를 통한 도서 교역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이들은 기마 민족인 스키타이의 해외 정복을 이용하여 세력을 넓혔다.

로마의 시장에는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각지의 명산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1세기 중엽에 로마의 항해사였던 히파루스(Hipalus)가 아라비아인들로부터 인도양 계절풍의 비밀을 알아낸 후, 아테네로부터 홍해를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는 직항로를 개척함으로써 로마의 동방 원거리 무역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비로소 중국에서 인도로 반출된 비단이 인도 서해안으로부터 해로로 로마에 운송되기 시작하였다.

3세기 중엽에는 로마의 배가 인도차이나나 광동성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카티가라(Kattigara)까지 항해하는 상선도 나타났다.
 
== 5대 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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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로 ===
북방의 발트 해에서 시작해 모스크바와 키예프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접지인 콘스탄티노플과 에페수스(에베소, Ephesus)를 지나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남하하는 길이다. 이 길은 페니키아 시대부터 중요한 호박의 무역로였다.
 
이 길은 페니키아 시대부터 중요한 호박의 무역로였다.
 
== 비단길을 소재로 한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