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영토 확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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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영토확장'''은 러시아 영토의 변화 양상을 다룬다. 주로 남쪽방향을 향했기 때문에 [[남하정책]](南下政策)으로 부르기도 한다.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은 일본 관점에서의 명칭이고 한국 입장에서도 러시아는 남하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 러시아의 남하 정책 ==
 
=== 부동항과 남하정책 ===
러시아 남하정책의 주요 목적중 하나는 추위와 무관하게 얼지않는 부동항의 획득이었다.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나 대부분의 국토가 북부에 있어 [[흑해]], [[동해]] 연안과 무르만스크 지역, [[칼리닌그라드]] 외엔 겨울에 항구가 얼어버린다. 따라서 군사행동에 제약이 많았으므로 누차에 걸쳐 부동항을 확보하기위해 남하정책을 폈다.
 
러시아는 겨울이 길고 고위도여서 농업생산량이 낮기때문에 따듯한 땅을 찾아 남하하는 경향이 있었다.<ref name="kimura11">[[南下政策#木村|木村(1993)pp.11-39]]</ref> 또 러시아인은 중앙권력의 통제를 전통적으로 싫어했고 [[아나키즘]] 경향도 있어 팽창지향적이기도 했다. 권력은 이를 이용해 척박한 토지가 개발되기를 기다렸다가 나중에 접수하곤 했다. 이런 행동은 외부에서 보기엔 다분히 우려스러운 영토확장 경향으로 보일 수 있다.
 
러시아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서유럽의 대응은 19세기 유럽 역사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은 [[발칸반도]], [[중앙아시아]](그레이트 게임), 중국과 동아시아의 세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러시아는 [[동방 정교회]]의 수장을 자처했고 [[범슬라브주의]]라는 민족주의까지 겹쳐 주변국가와 마찰을 일으켰고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대립했다.
 
[[러시아 혁명]] 후 [[소련]]은 [[제국주의]]적인 팽창정책을 포기했지만 사회의주의 기지로 혁명을 수출하려 했기 때문에 여전히 서구의 경계대상이었다.
 
=== 남하정책의 양상 ===
 
* 신성동맹에 참가하여 [[오스만 제국]]과 대립했다. 1700년 [[카를로비츠 조약]]에서 [[아조프해]] 해상권을 확보했다.
* [[오스만 제국]] 지배하의 [[크림반도]]를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예카테리나 2세]] 치하에서 [[캅카스]]까지 획득했다.
* 1853년 [[크림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압도했으나 [[강대국]]이 오스만 편을 들어서 큰 이득을 얻지 못했다. [[파리 조약 (1856년)]]에서 일부 전리품이 있었다.<ref group="注釈">パリ条約では黒海沿岸の基地の撤去と非武装化が決められ、これは、ロシア南下政策にとっては大きな挫折の第一歩を意味していた。また、クリミア戦争の敗北によってロシアの後進性が明らかになったことから、新帝[[アレクサンドル2世]]は大改革に乗り出し、[[1861年]]に[[農奴解放令]]を発布している。</ref>
* 1854년 [[쿠릴 열도]] 전체와 [[사할린섬]], [[캄차카반도]]까지 표시한 지도(「改正蝦夷全図」)를 작성했다.
* 1855년 [[에도 막부]]와 러시아가 [[러일 화친 조약]]을 체결.
* 1858년 [[태평천국의 난]]과 [[제2차 아편 전쟁]]의 혼란속에서 청나라는 [[아무르강]] 북쪽과 [[외만주]]를 일부 내어주는 [[아이훈 조약]] 을 체결. 결국 [[베이징 조약]]을 거쳐 러시아는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 를 획득.
*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1875년)]]을 체결하여 사할린 전체가 러시아령이 되었음.
* 1877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1877년-1878년)]]에서 승리하여 [[산스테파노 조약]]을 맺고 [[발칸반도]]의 맹주가 되었음. 여전히 [[범슬라브주의]]가 발칸의 문제였으며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음.
* 청나라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일찌감치 국경 획정.
* 1890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 착공.
* 1895년 [[삼국 간섭]]을 통해 [[뤼순커우구|뤼순]]을 [[조차지]]로 획득.
* 러시아의 해양 진출을 두려워한 영국과 일본이 [[영일 동맹]]체결.
* 1904년 [[러일 전쟁]] 발발.
* 1922년 [[러시아 혁명]]으로 [[소련]]이 성립하고 남하정책 중단.
*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소련은 동유럽을 [[위성국]]화 했다.([[철의 장막]])
* 1945년에 [[소련-일본 전쟁]]으로 [[쿠릴 열도]]까지 점령
* 1970년대에도 [[남예멘]]의 [[아덴만]], [[베트남]]의 캄란만, [[시리아]]의 [[타르투스]], [[이라크]]의 [[움카스르]] 등 꾸준히 부동항을 확보
 
== 각주 ==
 
=== 내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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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주 ===
{{각주}}
 
== 관련 항목 ==
 
* [[러시아의 역사]]
* [[범슬라브주의|범 슬라브주의]]
* [[동방문제|동방 문제]]
* [[식민지]]
* [[그레이트 게임]]
* [[불평등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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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커, 윌리엄 헨리. ''러시아의 역사적 지리학'' (University of London Press, 1968)
* Shaw, Denis JB ''Russia in the modern world : A new geography'' (Blackwell, 1998)
-->
 
 
'''러시아의 영토확장'''은 러시아 영토의 변화 양상을 다룬다. 주로 남쪽방향을 향했기 때문에 [[남하정책]](南下政策)으로 부르기도 한다.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은 일본 관점에서의 명칭이고 한국 입장에서도 러시아는 남하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 러시아의 남하 정책 ==
 
=== 부동항과 남하정책 ===
러시아 남하정책의 주요 목적중 하나는 추위와 무관하게 얼지않는 부동항의 획득이었다.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나 대부분의 국토가 북부에 있어 [[흑해]], [[동해]] 연안과 무르만스크 지역, [[칼리닌그라드]] 외엔 겨울에 항구가 얼어버린다. 따라서 군사행동에 제약이 많았으므로 누차에 걸쳐 부동항을 확보하기위해 남하정책을 폈다.
 
러시아는 겨울이 길고 고위도여서 농업생산량이 낮기때문에 따듯한 땅을 찾아 남하하는 경향이 있었다.<ref name="kimura11">[[南下政策#木村|木村(1993)pp.11-39]]</ref> 또 러시아인은 중앙권력의 통제를 전통적으로 싫어했고 [[아나키즘]] 경향도 있어 팽창지향적이기도 했다. 권력은 이를 이용해 척박한 토지가 개발되기를 기다렸다가 나중에 접수하곤 했다. 이런 행동은 외부에서 보기엔 다분히 우려스러운 영토확장 경향으로 보일 수 있다.
 
러시아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서유럽의 대응은 19세기 유럽 역사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은 [[발칸반도]], [[중앙아시아]](그레이트 게임), 중국과 동아시아의 세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러시아는 [[동방 정교회]]의 수장을 자처했고 [[범슬라브주의]]라는 민족주의까지 겹쳐 주변국가와 마찰을 일으켰고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대립했다.
 
[[러시아 혁명]] 후 [[소련]]은 [[제국주의]]적인 팽창정책을 포기했지만 사회의주의 기지로 혁명을 수출하려 했기 때문에 여전히 서구의 경계대상이었다.
 
=== 남하정책의 양상 ===
 
* 신성동맹에 참가하여 [[오스만 제국]]과 대립했다. 1700년 [[카를로비츠 조약]]에서 [[아조프해]] 해상권을 확보했다.
* [[오스만 제국]] 지배하의 [[크림반도]]를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예카테리나 2세]] 치하에서 [[캅카스]]까지 획득했다.
* 1853년 [[크림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압도했으나 [[강대국]]이 오스만 편을 들어서 큰 이득을 얻지 못했다. [[파리 조약 (1856년)]]에서 일부 전리품이 있었다.<ref group="注釈">パリ条約では黒海沿岸の基地の撤去と非武装化が決められ、これは、ロシア南下政策にとっては大きな挫折の第一歩を意味していた。また、クリミア戦争の敗北によってロシアの後進性が明らかになったことから、新帝[[アレクサンドル2世]]は大改革に乗り出し、[[1861年]]に[[農奴解放令]]を発布している。</ref>
* 1854년 [[쿠릴 열도]] 전체와 [[사할린섬]], [[캄차카반도]]까지 표시한 지도(「改正蝦夷全図」)를 작성했다.
* 1855년 [[에도 막부]]와 러시아가 [[러일 화친 조약]]을 체결.
* 1858년 [[태평천국의 난]]과 [[제2차 아편 전쟁]]의 혼란속에서 청나라는 [[아무르강]] 북쪽과 [[외만주]]를 일부 내어주는 [[아이훈 조약]] 을 체결. 결국 [[베이징 조약]]을 거쳐 러시아는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 를 획득.
*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1875년)]]을 체결하여 사할린 전체가 러시아령이 되었음.
* 1877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1877년-1878년)]]에서 승리하여 [[산스테파노 조약]]을 맺고 [[발칸반도]]의 맹주가 되었음. 여전히 [[범슬라브주의]]가 발칸의 문제였으며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음.
* 청나라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일찌감치 국경 획정.
* 1890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 착공.
* 1895년 [[삼국 간섭]]을 통해 [[뤼순커우구|뤼순]]을 [[조차지]]로 획득.
* 러시아의 해양 진출을 두려워한 영국과 일본이 [[영일 동맹]]체결.
* 1904년 [[러일 전쟁]] 발발.
* 1922년 [[러시아 혁명]]으로 [[소련]]이 성립하고 남하정책 중단.
*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소련은 동유럽을 [[위성국]]화 했다.([[철의 장막]])
* 1945년에 [[소련-일본 전쟁]]으로 [[쿠릴 열도]]까지 점령
* 1970년대에도 [[남예멘]]의 [[아덴만]], [[베트남]]의 캄란만, [[시리아]]의 [[타르투스]], [[이라크]]의 [[움카스르]] 등 꾸준히 부동항을 확보
 
== 각주 ==
 
=== 내용주 ===
{{각주|group=注釈}}
 
=== 출처주 ===
{{각주}}
 
== 관련 항목 ==
 
* [[러시아의 역사]]
* [[범슬라브주의|범 슬라브주의]]
* [[동방문제|동방 문제]]
* [[식민지]]
* [[그레이트 게임]]
* [[불평등 조약]]
[[분류:러시아 제국]]
[[분류:제국주의]]
[[분류:러시아의 지리사]]
[[분류:식민주의사]]
[[분류:번역이 검토되지 않은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