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치 음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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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치 음모'''(Congiura dei Pazzi)는 [[파치 가문]]이 주도하여 피렌체의 통치가문으로 군림하던 [[메디치 가문]]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기 위해 벌인 사건이다. 파치가 외에도 살비아티 가문, 리아리오 가문, 교황 식스토 4세가 가담하였다. 1478년 4월 26일 피렌체 대성당에서 일요일 미사를 들이고 있는 메디치 가문의 형제 2명에 대한 살해를 감행하였다. 형 [[로렌초 데 메디치|로렌초]]는 부상을 입었지만 탈출에 성공하여 살아남았으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줄리아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암살과 동시에 살비아티 가문이 페루자에서 데려온 용병들을 이용해 시뇨리아궁을 장악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 개요 ==
파치가문이 일으킨 정권 탈취를 위한 쿠테타는 실패로 끝났고 공모자들의 대부분은 곧 체포되어 성난 군중에 의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파치(Pazzi) 가문 일족들은 피렌체에서 추방당했고, 그들의 재산은 모두 몰수당하였다. 파치 가문의 명칭과 문장들은 영구적으로 사용금지 조치를 당했으며 가문 이름이 공공장소에서 지워졌고, 모든 건물들과 길거리에서도 사라졌다. 쿠테타의 실패는 메디치 가문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었다.
 
메디치 가문과 원수관계에 있던 교황 식스토 4세(재위 1471~84)는 이번 반란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주모자 중에 한 사람인 프란체스코 살비아티 추기경(피사 대주교)이 효수당하자 교황은 이에 격노하였고 피렌체 전체를 파문하고 피렌체와 1478년에서 1480년까지 2년간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ref>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교황들> 155 페이지</ref> 전투에서 연패하며 피렌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로렌초 데 메디치는 실로 목숨을 건 필사적인 외교전을 펼침으로써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켰으며 피렌체를 구한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교황과도 표면적이기는 했지만 화해를 하며 사건을 잘 마무리 지었다.<ref>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교황들> 156 페이지</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