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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로 ‘이(伊)’를 들었다.<ref>훈몽자회 [[훈민정음:s:훈몽자회/諺文字母|정음언문자모 편]]》(1446)에서</ref> 목구멍을이것이 본따서글자의 만든이름으로 글자로굳어졌는데, 처음17세기에 등장했다.ㆁ이 쓰이지 않게 되면서 기본이름이 모양으로‘이응’이 하여되었다. 또한 훈몽자회에서는 ㅅ 다음 순서에 [[]](옛이응) ·있었는데, [[ㆆ]](여린히읗)ㆁ의 ·자리를 [[ㅎ]]ㅇ이 등의차지하면서 모양을 만들었으며,다음에 [[ㅸ]] 등의ㅇ이 합자에도오게 쓰였다되었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파일:Hunmin jeong-eum.jpg|섬네일|왼쪽|100px|[[훈민정음 언해]].]]
 
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파일:Hunmin jeong-eum.jpg|섬네일|왼쪽|100px|[[훈민정음 언해]].]]
 
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파일:Hunmin jeong-eum.jpg|섬네일|왼쪽|100px|[[훈민정음 언해]].]]
 
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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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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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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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이(伊)’를 들었다.<ref>훈몽자회 [[:s:훈몽자회/諺文字母|언문자모 편]]</ref> 이것이 글자의 이름으로 굳어졌는데, 17세기에 ㆁ이 쓰이지 않게 되면서 ㅇ의 이름이 ‘이응’이 되었다. 또한 훈몽자회에서는 ㅅ 다음 순서에 ㆁ이 있었는데, ㆁ의 자리를 ㅇ이 차지하면서 ㅅ 다음에 ㅇ이 오게 되었다.
 
== 코드값 ==
줄 92 ⟶ 44:
* [[ㆁ]]
 
== 각주ㅈㄷㄱㅍㅈㄱㅍㅈㄷㅍㄱㄷㅈ ==
<references/>
[[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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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ㅈㄱㄷㅍㅈㅍㅈㄱㄷㅍㅈ<references/>[[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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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파일:Hunmin jeong-eum.jpg|섬네일|왼쪽|100px|[[훈민정음 언해]].]]
 
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파일:Hunmin jeong-eum.jpg|섬네일|왼쪽|100px|[[훈민정음 언해]].]]
 
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훈민정음|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후음|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로 봤을 때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IPA|[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ref name="표준중세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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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첫가끝|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첫가끝|/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첫가끝|/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IPA|/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첫가끝|ᅌᅵᄋ&#4467;ᇰ}}(異凝)’을, ㅇ의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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