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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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경기도 진위군은 중종 원년(1506년)~고종 때까지 충청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충청도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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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사후 [[불천위]]로 지정되고<ref name="jongg33"/>, 고향인 진위현 도일리에 사당이 세워졌다. 한편 원균의 사후 그의 집안은 가난을 면치 못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원균과 아들이아들인 [[원사웅]]이 함께 전사했고, 당시 남은 핏덩이 손자로 대를 이었으며<ref name="jongg33"/> 96세에 졸한 원균의 부인이 국가에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여 상신한 바 있다.<ref name="jongg33"/> 그러나 그의아들 [[원사웅]] 아들이 1597년 6월 19일 칠천량 해전에서 아버지 원균을 보호하다가 전사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때 전사하지 않았고 정확한 년도는 불명이지만 공신회맹록에 사망등의 이유로 논의되는 승계가 1646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f>[공신회맹록,1740 갑신보].</ref> 부인 파평윤씨는 [[1642년]] [[6월]] [[홍성군]] 홍주에서 사망했으나 시신을 거둘 이 없었는데, 그해 [[7월]] 호노(戶奴)인 백종(白從)이 왕에게 상소를 올려 예장하였다.
 
원균의 묘소 뒤에는 [[조선 선조|선조]]가 하사한 말의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