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랄 웃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30번째 줄:
[[1219년]]에 [[몽골 제국]]에 의해 [[화레즘 샤 왕조|화레즘 제국]]이 멸망했고 다음 해에 아버지인 [[알라 웃딘 무함마드|무함마드]]가 도피처인 [[카스피 해]]에서 병사하면서, [[1221년]]에 호라즘 지방의 수도 [[우르겐치]]로 돌아와 술탄으로 즉위했다.
 
잘랄 웃딘은 곧바로 본거지인 [[가즈니|가즈나]]로 돌아와 재기를 도모하여, 현지의 유력자를 규합하고 군사를 모았다. 동년에는 [[카불]] 근교의 파르바로 [[시키 쿠투크]]가 인솔하는 몽골군의 선봉 부대를 물리쳐 몽골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칭기즈 칸]]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남하하였다. 잘랄 웃딘의 병력은 각지에서 흩어지고 줄어들었고, [[인더스 강]]까지 남하했다. [[인더스 강]] 하류의 [[딘코트]]에서 행해진 결전에서 잘랄 웃딘은 패배했지만, [[인더스 강]]의 탁류를 이용해서 말을 타고 건너 살아 남은 소수의 부하와 함께 인도로 도주했다. 칭기즈 칸은 그런 잘랄 웃딘을 보며 "저런 용맹한 아들을 둔 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라며 감탄했다고감탄하며 더 이상 그를 추격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라시드 웃딘 《집사》).
 
잘랄 웃딘은 인도에서 [[맘루크 왕조]]의 술탄 [[일투트미시]]의 도움을 받아 몽골군과의 싸움을 계속하려 했지만, 거절당하여 [[1224년]] 인도에서 화레즘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이란 지역에서 군대를 이용하여 돌아와 몽골군의 주력이 몽골 고원으로 귀환한 틈을 타서 이란 고원 중부의 주요 도시 [[이스파한]]에 들어갔다. 그러나, 호라산(이란 북동부 지방)에 주둔하여 [[중앙 아시아]]와 이란을 방어하고 있던 몽골군에게 공격받아 [[아제르바이잔]] 방면으로 도피했다. [[타브리즈]]를 본거지로 한 잘랄 웃딘은 조지아의 [[트빌리시]]를 정복하는 등, 남 카프카스로부터 동부 아나톨리아, 시리아 방면의 모든 세력과 싸우고 세력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