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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사죄와 화해 ===
[[파일:Operations at Narita International Airport (NRT-RJAA).jpg|280px|섬네일|처리 능력이 한정된 나리타 공항은 한번에 많은 승객을 실어나를 수 있는 보잉 747기의 비율이 절반을 넘으며 이는 세계의 공항 가운데서도 드물다.<ref>{{Cite web인용|url=https://www.env.go.jp/air/report/h16-14/|title=平成16年度 環境省請負業務結果報告書 航空機騒音に関する評価方法検討業務「3.成田国際航空の概況」|accessdate=2018-03-25|date=2005-06-29|publisher=環境省}}</ref>]]
 
다수의 반대동맹원이 기소되었던 1986년 도호 사거리 재판에서 이례적인 온정 판결이 나오며 [[헤이세이 시대]]의 도래와 [[냉전]]의 종결과 함께 B활주로를 포함한 2기 지구 건설을 추진하고 싶던 일본 정부와 반대 운동의 쇠락을 염려하던 반대동맹 열전파 사이 대화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했다.<ref name=":42">[[三里塚闘争#福田克彦|福田克彦(2001)]]349-446頁。</ref><ref name=":37" /><ref name=":38">{{Cite서적 book인용|title=千葉県の歴史一〇〇話|year=2006|publisher=国書刊行会|pages=312-315|editor=川名登}}</ref>
 
1990년 처음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사과한 운수대신 [[에토 다카미]]가 나리타 현지에서 아쓰타파와 대화한 것을 계기로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합의 형성의 장인 [[나리타 공항 문제 심포지엄]]과 [[나리타 공항 문제 원탁회의]]가 개최되었다.<ref name=":42" /> 정부와 주민 간 협의회의가 열린 가운데 정부 측과 반대파 측의 계속된 엇갈림의 이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운수성에서는 "공항 위치를 결정하기 전에 현지의 의견이 충분히 모아지도록 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노력부족이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으며 공항공단에서는 "공항 건설을 서두른 결과 지역사회에 혼란과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지역 의견 조성은 20여년 전에 진작에 했어야 했다"라고 각각 사과하였다.<ref name=":37">[[#石毛博道|朝日新聞成田支局(1998)]]286-287頁。</ref><ref name=":38" /><ref>[[#大和田|大和田武士 鹿野幹夫(2010年)]]113-117頁。</ref><ref>[[#伊藤睦|伊藤睦(2017)]]116-117・252-264頁。</ref><ref>[[#隅谷三喜男|隅谷三喜男(1996)]]78・111・118頁。</ref><ref>[[#原口和久2|原口和久(2002年)]]156-185頁。</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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