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브라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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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ouisBraille.png|섬네일|left|[[점자]]로 적힌 Louis Braille]]
==== 성장 ====
루이 브라유는 [[프랑스]] [[파리 시|파리]]에서 동쪽으로 58 km 떨어진 [[센에마른주]] 쿠브레이({{llang|fr|Coupvray}})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시몽-르네 브라이({{llang|fr|Simon-René Braille}})는 [[마구]]와 안장을 제작하는 분이었으며,형제로는 누나가 있었다.
=====사고=====
브라유가 3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송곳으로 가죽에 구멍을 내다가, 송곳이 미끄러지면서 왼쪽 눈을 다쳤다. 이 사고로 왼쪽 눈이 멀었고, 오른쪽 눈도 감염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다. 흐리던 눈이 4살이 되었을 때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다. 부모는 루이에게 직업교육과 학교교육을 하도록 했다. 그 이유는 루이가 살던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사회권이 매우 낮았다. 시각장애인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며, 어른이 된 후에도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미국의 동화작가 마가렛 데이비슨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의 노동인권에 대해 곧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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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 신부의 교육=====
루이는 자끄 빠뤼라는 로마 가톨릭 신부와 공부를 했다. 자끄 신부가 교우들을 심방했는데, 루이가 영리하다는 것을 알고는 일주일에 3-4일동안 역사, 과학, 성서를 가르쳐주었다. 루이의 지적호기심이 자라자 마을 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했는데, 점자책이 없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 [[왕립시각장애학교]] ====
10살 때 브라유는 파리의 왕립시각장애학교(Institution Royale des Jeunes Aveugles)의 [[장학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 장학금은 그에게 다른 시각장애인들처럼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삶을 벗어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그러나 학교에서의 삶은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빵]]과 [[물]]로 연명해야 했으며, 학생 신분으로 구타와 구금의 체벌을 당해야 했다. 브라유는 능숙한 [[첼로]]와 [[오르간]] 연주자가 되어 프랑스 전역에서 [[오르간]] 연주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