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 반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부정적 평가: 장태완 사령관의 하나회에 관련한 평가 내용을 하나회 페이지로 옮김.
→‎부정적 평가: 미리 치밀하게 계획된 반란군 측의 군사 행동이라는 평가를 추가함.
258번째 줄:
=== 부정적 평가 ===
* [[신현확]] 전 부총리는 조사를 목적으로 부하가 상관을 체포하는 것은 순수하게 그 사건 조사를 목적으로 그랬다고 하기보다는 군 내부의 의견이 틀린 계통이 있는 것을 제거하고, 전군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렇게 했다고 누구든지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의심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ref name="펜앤드마이크총리"/> 그래서 신 부총리는 군의 움직임을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기 전과는 다르게 지켜보았고, 중앙정보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 체제, 제도상 총리가 관여를 못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헌법과 법률을 대학에서 가르치던 법학교수이기도 하였던 신 부총리가 중앙정보부장 임명에 관여하는 일까지도 생긴다.<ref name="펜앤드마이크총리"/>
 
* 13일 서빙고 보안사로 갔던 [[장태완]] 사령관은 1980년 2월 5일 면담실에 전두환 장군을 만나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 사건과 관련이 있으나 조사에 불응하므로 육군참조총장 직함을 내려놓고 집에서 6개월 정도 쉬면 대사나 장관 이상에 자리를 보장해 줄려고 했으나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장태완 수방사 사령관도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ref name="월간조선안부">{{웹 인용 |url=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001100058|제목=[어떻게 지내십니까?] 張泰玩 전 수도경비사령관|날짜=2010-01|출판사=월간조선}}</ref> 장태완 장군은 그때 “이 친구들이 쿠데타 계획을 치밀하게 짰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ref name="월간조선안부"/>
 
* 수도경비사령부가 군사 행동을 중지하고 반군 사령부로 그 결정을 통보하고 반시간은 경과하였고, 반란군에 우호적인 육군참모총장이 새로 임명된 상황이었음에도 사령관실의 합동참모본부 근무 인원들에게 총격을 가하며 접근하여 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이 총상을 입는다. 이 진압군 측을 연행하려는 10여명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라고 총격 현장에서는 설명을 하였는데, 당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이것은 군기 문란죄로 판단하였다.<ref name="시사저널수기">{{뉴스 인용 |url=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159|제목=12·12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장군 육필 수기(진압 실패 10시간)|날짜=2006-05-16|출판사=시사저널}}</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