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중국인 학살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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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만력31년), 루손섬에 중국인 23,000여명이 학살되고 300명의 중국상인만이 살아남은 사건이다. 1571년, 스페인인들이 마닐라에 식민정청을 수립하면서 필리핀 내 스페인 식민정부가 처음 수립되었다. 이후 스페인 식민정부는 1575년 명(明)과 공동으로 마닐라 인근을 점거한 중국 해적 임봉(林鳳) 등을 협공하면서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다.
 
이후 스페인인들은 250명의 중국인에게 강제로 노젓는 노역을 부여하여 [[몰루카 제도]](Molucca Islands, 일명 향료제도, 香料諸島, Spice Islands)를 침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인들은 중국인들이 노젓는 것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채찍으로 때려 죽였다. 이에 중국인 반화오(潘和五) 등은 선상반란을 일으켜서, 마닐라총독 [[고메스 페레스 다스마리냐스]](Gómez Pérez Dasmariñas y Ribadeneira, 1519.1.1 - 1593.10.25) 등을 살해하였다. 이후 스페인들은 모든 중국상인과 중국인을 추방하였으나, 중국인들은 도시 밖에서 모여 살았다.
 
당시 대량의 은이 루손섬과 일본을 거쳐 명나라로 유입되면서, 명말 통화 가치 하락 위기를 불러왔다. 이른바 '[[만력삼대정]](萬曆三大征, 동쪽 조선 [[임진왜란]], 서북쪽 영하(寧夏) 지역 몽고 [[발배의 난]], 서남쪽 묘족 [[양응룡의 난]])'을 거치면서 명조는 재정 적자에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