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대한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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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죽자 한성부에서는 7일장을 했으나, 고종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종은 그의 장례식 참석을 거부했고, [[흥친왕]] 이재면은 혹시나 자신도 죽임당할까봐 대원군의 부음을 알리는 것을 머뭇거리면서 주저했다. 그러나 상여가 노제를 한 뒤 서문(西門)으로 나갈 때 고종은 마루에 서서 담넘어로 바라보며 오랫동안 대성통곡을 하였다.<ref name="sasang">나각순, 승상배, 이창훈, 《운현궁과 흥선대원군》 (종로문화원, 2000) 207페이지</ref> 그 통곡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한다.<ref name="sasang"/> 상여가 [[공덕리]]로 가는 것을 보고 [[서대문]] 밖까지도 쫓아갔다고도 한다.<ref name="sso"/>
 
===== 시해 미수 사건 =====
[[1898년]] [[8월 2일]] 고종에게 앙심을 품은 러시아 담당 역관 [[김홍륙]]이 고종이 [[커피]] 애호가라는 점을 이용해 커피에 독극물([[아편]])을 타서 대접했다. 고종은 김홍륙이 대접한 커피를 한모금 입에 넣었는데 엄청나게 이상하다고 판단해서 바로 뱉은 뒤 남은 커피를 땅에 부었다. 하지만 이 커피를 마신 고종의 아들 [[대한제국 순종|순종]]은 치아가 모두 결손되어 어린 나이에 [[틀니]]를 착용하게 되는 등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종은 [[김홍륙]]을 [[교수형|교수]]했으며 김홍륙의 구족을 멸하고 그 일당들을 거의 토벌 수준으로 처리했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국의 [[국왕]]을 시해하려고 한 죄는 한 나라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이기 때문이다.
 
===== 이준용의 쿠데타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