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토 후아레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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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부터 [[1852년]] 고향인 [[오아하카주]]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1855년 혁명 때는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를 타도하고 [[후안 알바레스]]가 이끄는 자유당(liberales)의 임시내각 의 법무장관이 되었다. 1857∼1861년 임시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제정하여 가톨릭 교회와의 정교 분리, 가톨릭 [[교회]] 재산의 몰수, [[토지개혁]]을 하려 하였으나 대지주·가톨릭 [[성직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3년 간 [[내란]]을 겪었다.
 
다행히 이를 진압하였으나, 1864년부터 1867년 사이에 보수파는 [[프랑스]]의 원조를 청하여 [[나폴레옹 3세]]의 무력 간섭, 황제 [[막시밀리아노 1세|막시밀리아노]]의 옹립 사태에 이르렀다. 이는 당대의 멕시코가 '''대통령과 황제가 공존하는 나라'''라는 아주 황당한 호칭을 얻게 했다. 그는 미국과의 국경 지대에 버티면서 항전을 계속하였으며, 1867년 5월 막시밀리아노를 [[케레타로]]에서 사로잡아 [[군사재판]]에 붙여 6월에 총살하였다. [[1872년]] 혁명전쟁 중 사망하였으나 "공화국의 구제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는 멕시코의 [[올리버 크롬웰]]이라는 찬탄을 받았다.
 
== 개혁 정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