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촉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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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와는 큰일을 이룰 수 없다고 답답해 했으며 [[양백 (후한)|양백]] 등 장로의 장수들은 그런 마초를 싫어하였다. [[유비]]가 [[성도]]의 [[유장 (후한)|유장]]을 포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유비에게 밀서를 보내 [[망명]]을 청하고 [[무도군]]을 통해 [[촉나라]]로 들어갔다.<ref name='마초맨' /> 유비의 환영을 받으며 성도 아래에 주둔하니 성은 두려움에 떨었고 얼마 안 가 항복하였다. 평서장군(平西―)에 임명되고 [[남군 (중국)|남군]] 임저현(臨沮縣)을 수비했으며 [[작위]]는 도정후를 유지하였다.
 
[[217년]] [[장비 (삼국지)|장비]], [[오란 (후한)|오란]], [[뇌동]]<ref name='유통수'>《삼국지》32권 촉서 제2 선주 유비</ref> 과 같이 무도군 하변현(下辯縣)으로 전진했다가 [[218년]], [[조홍 (삼국지)|조홍]]에게 깨지고 유비의 한중 전선에 합류하였다. [[219년]]([[건안]] 24년)<ref name='유통수' /> 유비가 한중왕에 올랐다. 마초는 [[좌장군]]에 가절(假節)을 받아 [[관우]], 장비, [[황충]]과 나란히 [[사방장군]]이 되었다. [[221년]]([[장무 (촉한)|장무]] 원년) [[표기장군]]으로 승진하고 양[[자사 (관직)|주목]]을 겸했으며 태향후(斄鄕侯)로 진봉되었다. [[222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유비에게 ‘가문의 [[제사]]가 끊기지 않도록 [[마대 (삼국지)|마대]] 등 얼마 남지 않은 일족을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260년]]([[경요]] 3년) 관우, 장비, [[방통]], 황충과 함께 [[시호]]를 받아<ref>《삼국지》33권 촉서 제3 후주 [[유선 (공사)|유선]] 경요 3년</ref> 위후(威侯)라 하였다.
 
== 동관 전투 패배 후 재차 거병한 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