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섬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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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석잠누에 한국 실크는 매미 날개처럼 아주 얇고 가벼우며 부드러운 비단으로 고구려의 벽화에 나오는 것처럼 바람에 아름답게 날리는 실크이며 우리가 앞서서 생산했고, 실크의 종류도 더 많았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의 비단이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발전한 기술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상명대 교수이자 한복 복식 연구가인 박선희 교수는 브레이크뉴스와 자신의 저서를 통해 "고조선 시대부터 줄곧 많은 생산량을 가지며 복식재료로 즐겨 쓰여 졌던 실크의 경우 색상과 문양이 화려한 상태로 출토되어진다출토된다. 평양 낙랑구역 무덤들에서는 해방 이전과 이후 고조선과 최씨 낙랑국이 생산한 많은 양의 다양한 종류의 사직물이 출토되었다. 이 천들은 모두 염색한 것이었고, 바탕색과 다른 색으로 문양을 직조하여 넣은 것도 있으며, 일부러 색상을 내기위해 탈색 한 것도 있었다. 따라서 고조선에서 이처럼 염색과 탈색기술이 발달한 것으로 본다면 부여에서 겉옷을 만들었던 천들은 염색을 통해 문양이 두드러지지 않게 단아한 색감을 냈을 것이다. 실크는 정련공정에서 약간의 세리신을 남겨두는 것이 탄성을 부여하는데 더 좋으며, 세리신이 섬유표면에 0.5퍼센트 남아있는 경우에 완전히 정련된 경우에 비하여 염색이 최고 1.6배나 진하게 된다. 특기할 것은 평양 낙랑구역에서 출토된 천들이 성분분석 결과 이 같은 과학적인 염색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는 점이다. 평양 낙랑유적에서 출토된 고조선의 실크들은 모두 염색을 거친 직물로서 주로 밤색과 자주색을 띠며 문양이 없는 것과 문양이 있는 것, 또는 넝쿨문양을 수놓은 것, 붓으로 문양을 그려 넣은 것 등 다양한 기법을 표현한 염색직물이다.
 
신석기시대부터 발달되어진발달된 천연염료의 생산과 발달은 고조선시대에 오면 복식에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의복에 문양을 그려 넣거나 실이나 천을 염색하여 문양을 직조하여 그 위에 색실로 수를 더하는 등 고유한 기법으로 화려한 복식문화의 갖춤새를 정형화시킨다. 고조선을 이은 고구려 복식에도 고분벽화 등에는 다양한 색상과 화려한 문양이 있는 의복이 대부분이다. 특히 고구려는 금(錦)으로 상징될 만큼 금(錦)을 즐겨 입었다.
 
금(錦)은 누에 실을 여러 색으로 물들이고 이를 섞어 화려한 문양으로 짠 것이다. 고조선 후기 유적인 길림성 후석산 유적에서는 방직기로 짠 마포가 출토되었다. 방직기 사용은 고조선의 상당히 높은 직조 수준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