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무 (관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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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巡撫)는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의 관직이다. 순무는 "천하를 순행하며 군민을 위로하고 다스린다(巡行天下, 撫治軍民)"는 의미이다. 처음에 명 태조 [[주원장]]이 1391년, 의문 태자(태자 주표)를 파견하여 섬서를 순무하게 한 것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영락제]] 시기인 1421년 조정의 신하 26명을 파견하여 지방을 순시하게 했는데 이때부터 순무 제도가 생겨났다. [[선덕제]] 시기, 1430년에 각 성에 순무를 두고 상주하게 하자 점차 제도로 정착하였다. 명나라 시기 순무는 6부의 시랑 직을 겸하였으며 1453년 이후부터는 도찰원의 정관 직함을 겸하기 시작하였다.<ref> Charles Hucker, ''A Dictionary of Official Titles in Imperial China'', Stanford Univ Press, 1985, p.255 </ref>
 
명대 말기에는 1성(省) 혹은 그 일부를 관할하는 지방관으로서 20명을 넘었다. 명나라의 순무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로, 본질적으로 중앙관리이다. 목적은 문신으로서 지방에 주둔한 무신을 견제하여 각 성과 각 군진 및 성 내 삼사 사이의 관계를 조화시키고 직권을 통일시켜서 서로 예속하지 못하도록 하고 수평관계의 삼사 사이에 운영이 원활하지 못한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청나라]] 때는 명나라때의 제도를 답습하였으나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먼저 명나라 시기와는 달리 청나라의 순무는 중앙관리가 아니라 [[총독 (중국사)|총독]]을 보좌하는 지방장관직이 되었다. 순무는 포정사, 안찰사, 도지휘사의 상위 관직이 되었으며 대부분 1개 성(省)에 해당하는 지역을 총괄하게 되었다. 명나라 시기에는 순무의 총괄 범위가 1개 성을 넘어서거나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ref> 徐连达,《中国官制大辞典》, 上海大学出版社, 1992, 748-749쪽 </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