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부원부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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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 임언(林彦)
|모친 = ?
|전임자 = [[숙목부인]](肅穆夫人)
|후임자 = [[흥복원부인]](興福院夫人)
|묘호 = 없음
|종교 = [[불교]](佛敎)
|가문 = [[경주 임씨|경주]](慶州)
|왕조 = [[고려]](高麗)
|연호 = 없음
|목록 = [[고려의 역대 왕후|고려국 11대 후궁]]
 
== 생애 ==
[[경상도]] [[경주시|경주]] 출신이며, 경주 임씨 임언의 딸이다. 임언은 강주(康州,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으로, 태수를 지냈으며 927년(태조 10년) 2번에 걸쳐 [[후당]]에 사신으로 다녀온 적이 있는 인물이다<ref name="cheonan">{{웹 인용 |url=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5COa_A9999_2_0013411 |제목=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 〈천안부원부인〉항목 |확인날짜=2012-06-0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1013223719/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5COa_A9999_2_0013411 |보존날짜=2016-10-13 |url-status=dead }}</ref>. 《[[고려사]]》〈열전〉에는 이러한 그녀의 출신과, [[효성태자]]와 [[효지태자]]를 낳았다는 내용만을 기록하고 있다<ref> 《고려사》〈열전〉- 천안부원부인 임씨</ref>.
 
한편 그녀가 경주 출신임에도 천안부원부인(天安府院夫人)이라는 [[호 (이름)|호]]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해, [[고려대학교]]의 이정란은 논문 《태조비 천안부원부인과 천안부》을 통해 “태조 왕건이 당시 지역 토착 세력이 없던 [[천안시|천안]] 지역을 왕실의 주요 지역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에서, 천안부원부인 소생의 자녀들에게 천안을 본거지로 삼게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ref> {{뉴스 인용
| 제목 = "천안은 8개지역 총괄하던 지방행정 중심지"
|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127888
}} </ref>. 실제로 그녀의 아들들은 “천안낭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ref name="cheonan"/>. 한편 또다른 일부 학자들은 천안부원부인의 아버지인 임언이 천안 지역의 태수를 지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ref name="cheonan" />.
 
남편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효성태자, 효지태자)를 낳았다. 장남 효성태자는 [[고려 정종 (3대)|정종]]의 딸과 결혼<ref> 《고려사》〈열전〉- 공주 (정종의 딸) </ref>하였으나 후사가 없었고<ref> 《고려사》〈열전〉- 효성태자 </ref>, [[고려 경종|경종]] 때 실시된 [[복수법]]의 여파로 살해당했다<ref> {{뉴스 인용
| 제목 = 《한겨레 21》 칼럼 - 황제국가 고려를 위하여
| url =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47000/2008/01/021147000200801170694060.html
| 날짜 = 2008-01-17
| 확인날짜 = 2012-06-04
}} </ref>. 차남 효지태자는 사서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으며, 역시 후사가 없었다<ref> 《고려사》〈열전〉- 효지태자 </ref>.
 
호는 '''천안부원부인'''(天安府院夫人)이며, 생몰년이나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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