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2017-2018년 북핵 위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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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밥풀떼기}} 조금 더 조사를 해 보았는데, 17년 핵개발과 차후의 정상회담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이전 5번의 실험과는 달리, 17년에는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거든요. 그래서 중국에서도 의전상으로는 동등하게 북한을 대했고요. 더군다나 18년 폼페이오에게도 김정은이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6&aid=0001724751 전쟁 준비를 천명했다거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4&aid=0004504121 친서 교환 중에도 핵개발에 매진했더가나] 하는 징후로 봐선, 두 연도를 따로 떼서 보긴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곁다리로는 [[2018년 하와이 미사일 경보]] 같은 해프닝도 있었고요.
::::::이전에도 북한이 핵으로 으름장 놓은 건 사실인데, 17년은 북한에 수소폭탄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각국 정상들이 회담에 나섰으니 조금 다르게 봐야겠죠. [[사:Reiro|Reiro]] ([[사토:Reiro|토론]]) 2021년 2월 1일 (월) 12:04 (KST)
:::::::{{핑|Reiro기Reiro}} 놓쳤던 정보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위키백과 문서를 서술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2018년도의 사건들이 불가분의 관계로 아무렴 문서 내에 서술할 수는 있어도, 표제어에까지 무조건 반영해야 하는가 싶은 의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데탕트 국면 속에서도 수면아래 이어져갔던 전쟁 준비와 핵개발 문제는 17년도의 파국상태가 외교해법으로 완결되지 않은 가운데서 벌어진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며, '위기를 풀으려는 협상국면 속에서 이런 긴장 분위기를 이어갔다'고 소개할 수 있어도 '이런 긴장을 이어갔으므로 위기는 계속됐다'고 밝히는 것은 그에 앞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고려하면 자칫 어긋난 해석과 구성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하와이 경보 사건의 경우에도 17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과 강도높은 위협으로 빚어진 긴장상태의 영향력이 해를 넘겨 발생한 것으로, 이미 곁다리라고 언급하신 바와 같이 연도를 표제어로 제공할 정도의 충분한 중심사건은 못 된다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영어판의 구성방식처럼) 18년도 이후의 협상과정은 제하여 독립문서화시키고, 그와 대비되는 차원에서 본 문서의 표제어는 17년도의 군사적 위기사태를 역설하여역설해 반영하자는 저의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span style="font-family:맑은 고딕">'''"[[사용자:밥풀떼기|<span style="color:#63B8FF">밥풀</span>]][[사용자토론:밥풀떼기|<span style="color:#104E8B">떼기</span>]]"'''</span> 2021년 2월 3일 (수) 22:38 (KST)
 
{{유지}} 위에 김정은 2018년 신년사부터 소강 상태를 보였다고 주장하셨는데, 이 기사에도 나오듯이,<ref>{{뉴스 인용 |제목=트럼프 트윗 전수 분석…트위터로 흥하고 트위터로 망했다 |url=https://news.joins.com/article/23970644 |날짜=2021-01-14 |뉴스=중앙일보}}</ref>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고 하자, 트럼프가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고 맞받아쳐 북미 간 핵공격 위협이 절정에 달했던 게 팩트입니다. 사실을 왜곡하지 맙시다. 2018년에도 한동안 군사적 위기가 지속됐으므로 2018년도 포함하는 게 맞습니다. --[[사:Sphinx222|Sphinx222]] ([[사토:Sphinx222|토론]]) 2021년 1월 31일 (일) 02:5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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